개뿔, 쇳대박물관이 뭐지?
개뿔, 쇳대박물관이 뭐지?
  • 양우일 객원기자
  • 승인 2022.06.05 1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쓸모없어 잊혀진 물건에 새 생명 불어넣어
이화동 낙산서 보는 서울 야경에 마음 힐링
계단 위주 사설박물관 이동약자 불편 아쉬움
금동 자물통
금동 용두형 자물통

단어는 세상과 소통하며 더불어 산다. 단어는 사람의 세상살이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단어의 수명은 사람들의 삶의 가치, 삶의 도구, 시대상에 따라 흥하고 멸한다. 10대·20대가 사용하는 줄임말이나 일부 단어는 50대·60대에게는 통역이 붙어야 할 정도다. ‘쇳대’는 잊혀 가는 단어 중 하나다.

쇳대는 일상에서 잊혀진 단어다
쇳대는 일상에서 잊혀진 단어다. 쉽게 열기 어렵게 만든 다양한 모양의 쇳대

‘쇳대’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젊은이는 대부분 모르고 중년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열쇠가 뭐냐?”라 물으면 대부분 다 알고 있다.

‘쇳대’는 열쇠의 방언이다. 쇠로 만든 쇳대는 자물쇠와 한 세트다. 자물쇠와 쇳대로 구성된 것을 자물통이라 한다. 쇳대는 자물쇠를 잠그거나 여는 데 사용하는 물건이다. 쇳대는 시대가 변하면서 비밀번호, 스마트키, 생체인식 등 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쇳대는 소유와 지배의 경계를 구분한다
쇳대는 소유와 지배의 경계를 구분한다

자물통은 내 것에 대한 소유와 지배의 경계를 구분한다. 부자일수록 가진 것을 감추고 잠그려고 한다. 과거에는 쇳대가 없으면 자물쇠로 잠겨진 보물창고의 금은보화도 내 것이 아니었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노력에 자물쇠는 견고해지고 쇳대는 정교하고 화려해졌다.

조명이 들어오기 전 쇳대박물관 입구
조명이 들어오기 전 쇳대박물관 입구
조명이 들어 온 쇳대박물관 입구
조명이 들어 온 쇳대박물관 입구

단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쇳대박물관이 서울에 있다니!

쇳대박물관은 서울 종로구 이화동 낙산 정상 부근에 있다. 서울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려 서울성곽을 따라 낙산공원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승용차로는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창신동 골목길을 따라 가면 된다.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파란하늘의 구름은 이무기가 하늘을 오르는 느낌이다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파란하늘의 구름은 이무기가 하늘을 오르는 느낌이다

​​​​​​​낙산공원에 오르니 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관악산을 넘은 바람이 한강에 머물다 와서 그런 모양이다. 5월 하순인데도 추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곳에 오르면 성곽 안 마을과 바깥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에는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겁고 커다란 쇳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빗장을 열고 들어가기가 고단했을 것이다. 현재의 서울은 부도심이 발달하면서 문화·경제적 혜택이 고루 펼쳐져 있다. 4대문을 향한 동경은 조선시대만큼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있는 경외심은 여전하게 살아 있다.

쇳대박물관 글씨는 힘있고 현재적 필체로 친근감이 간다
쇳대박물관 글씨는 힘있고 현재적 필체로 친근감이 간다

쇳대박물관은 카페 개뿔과 같이 있다. 문패인 ‘쇳대’글씨는 기개를 느낄 정도로 힘이 있다. 글씨는 현대적 감각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박물관은 입장료가 7천원 선불이다. 음료 값이 포함된 가격이다. 음료 값으로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울 도심 뷰(view) 및 박물관 관람을 하고 나니 오히려 싼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쇳대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쇳대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음료를 먼저 주문하지 않고 쇳대박물관부터 갔다. 삭고 녹슨 자물쇠와 쇳대가 철망 안에 전시돼 있다. 과거에는 소중한 물건을 지키며 쓸모를 다했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버려도 아깝지 않는 쓸모없는 고철덩어리였다.

쇳재박물관 내부 전경 일부
쇳재박물관 내부 전경 일부

쓸모없음에 생명을 불어넣어 박물관을 운영하는 박물관장이자 카페 주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한 일이 취미가 되었고 취미가 박물관으로 성장했다.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선순환이다.

자물쇠와 쇳대가 전시되어 있다
자물쇠와 쇳대가 전시되어 있다

​​​​​​​​​​​​​​규모가 작지만 알찬 박물관에는 ㄷ자형·원통형·물상형·붙박이형·함박형 자물쇠와 쇳대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이어 근대까지 사용된 자물통이 전시되어 있었다.

외국의 자물통과 빗장도 전시되어 있었다. 세월에 삭아 훼손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물쇠 문양은 정교하고 예술성도 담겼다.

현재 열쇠고리 기능을 했던 열쇄패
현재 열쇠고리 기능을 했던 열쇄패

열쇠패·빗장 등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요즘 열쇠고리인 옛날 열쇠패 장식은 예쁘고 아름다웠다.

박물관장이 소개한 와인 오프너 전시관 입구
박물관장이 소개한 와인 오프너 전시관 입구

박물관장이 건너편 건물을 가리키며 와인오프너 전시관이 있다고 했다. 음료는 나중에 시키기로 하고 또 그 곳으로 갔다. 다양한 디자인의 오프너가 전시되어 있었고 해학적인 오프너, 기능적인 것도 있다.

다양한 디자인의 와인 오프너가 전시되어 있다
다양한 디자인의 와인 오프너가 전시되어 있다

오프너 역시 그윽한 향을 담은 와인을 마시기 위해 병 입구를 단단히 막은 코르크를 빼야 하는 도구로 쇳대라고 할 수 있다. 묘하게 재미있는 동양과 서양 쇳대의 만남이어서 더 흥미로웠다.

해학적인 모습의 와인 오프너
해학적인 모습의 와인 오프너

몇 평 되지 않는 박물관이었지만 어지간한 규모의 박물관처럼 유익하고 즐거움이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서야 파스타와 커피를 주문했다.

작은 주전자로 구성된 커다란 창문
작은 도자기로 구성된 커다란 창문

박물관 관람하랴, 카페 앉을 자리를 찾으랴 뱅뱅 돌아다녔다. 창문과 벽에 미니 주전자, 도자기로 장식해 놓았다. 내부구조는 막힌 듯 확 뚫려 있다. 어린 시절 동네를 돌아다니다 개구쟁이 친구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골목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페에 앉으면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카페에 앉으면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폐쇄와 개방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카페 구조에 흠뻑 빠졌다. 젊은 세대에겐 카페 인테리어에 그칠 뿐이겠지만 중장년인 나에게는 추억이 솟아나 감칠맛 나는 양념이다. 드디어 카페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 아늑하면서도 서울 시내 뷰를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투명 자물쇠로 채워 버렸다. 투명 쇳대는 내 마음 속에 보관했다. 그렇게 내가 차지한 영역에 경계를 만들었고 즐겼다.

작은 주전자로 인테리어한 창문
작은 주전자로 인테리어한 창문

‘개뿔’은 기대했던 만큼 만족이나 충족하지 못하지 못하고 별 볼 일 없이 하찮은 것을 경멸하는 태도로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누구도 알고 어디서도 늘 쓰는 단어다.

창은 통해 석양이 드리우며 도자기에 반사되고 있다
창은 통해 석양이 드리우며 도자기에 반사되고 있다. ⓒ소셜포커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적으로 쇳대는 없고 관념적으로 개뿔은 관념 속에 있다. 한 단어는 죽고 또 한 단어는 펄떡펄떡 살아 숨 쉬고 있다. 쇳대박물관은 개뿔도 없을 줄 알았는데 소뿔이었다.

서울하늘에 석양이 지고 있다.
서울하늘에 석양이 지고 있다. ⓒ소셜포커스

​​​​​​​물질적 쓸모가 없어진 물건에 숨결을 넣어 쓸모가 있는 문화적 가치로 살아나 다시 숨 쉬고 있다. 쇳대박물관과 개뿔 카페는 즐겁고 기쁜 마음을 가득 채워 주었다. 쓸모는 사람이 정해 놓은 것일 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게 찾아야 하듯, 모든 물건의 쓸모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되는 것이다.

늑대의 시간은 진청색의 아름다운 하늘을 즐길 수 있다.
늑대의 시간은 진청색의 아름다운 하늘을 즐길 수 있다. ⓒ소셜포커스

늦은 ​​​​​​​오후 시간이 지나가고 늑대의 시간이 찾아왔다. 카페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서서히 푸르스름해지면서 진청색으로 변하고 있다. 화강암 성벽은 조명을 받아 백색 건강미를 뽐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해서 사진 찍기 좋은 날씨다.

쇳대박물관 입구(내부는 계단이 많이 이동약자는 관람이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쇳대박물관 입구(내부는 계단이 많이 이동약자는 관람이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소셜포커스

​​​​​​​쇳대박물관은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곳은 공공박물관이 아니라 사설박물관이다. 위치가 이화동 오래된 건물이어서 내부도 좁고 계단이 대부분이다. 이동약자가 이용하고 관람하기에는 제한이 많다. 우리 사회는 구성하고 있는 사회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의 문화적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직접 가 볼 수는 없더라도 이 글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개인의 취미가 꿈을 지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킬 것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많은 자물쇠로 채워 놓았나?
지킬 것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많은 자물쇠로 채워 놓았나? ⓒ소셜포커스

쇳대박물관 전시물 중에 한 사람이 무거운 자물쇠에 묶여 있는 작품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지킬 것이 얼마나 많기에 그렇게 묶였을까? 작품 속 주인공의 쇳대는 어디에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