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12도로 피서지 제격, 이동약자 편의도 호평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기운을 담은 바람이 볼을 스친다. 계절은 여름의 끝자락이지만 한낮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로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름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다가오는 가을을 시기하며 오기와 몽니를 부린다. 이런 때는 언제나 시원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런 장소 중 하나가 동굴이다.
동굴은 대부분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자연동굴이다. 동굴은 사람들의 생활권에서 먼 곳에 떨어져 있다. 동굴 중에 사람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동굴은 삼척에 있는 천곡동굴이다. 동굴을 관람할 때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대부분 헬멧과 안전 장구를 착용한다.
개인 안전 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가벼운 샌들 정도만 신어도 즐길 동굴이 있다. 바로 수도권인 광명시 구름산 중턱에 있다. 2021~2022년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된 광명동굴이다. 이동 약자를 위해 휠체어도 잘 준비되어 있다. 구름산은 동굴을 테마파크로 조성하여 가족 단위로 찾기 좋은 곳이다.
광명동굴은 자연 발생동굴이 아니라 탄광을 폐쇄하면서 테마파크로 조성된 관광지다. 일제시대에는 광물을 수탈하는 광산으로 시작하여 산업화시대에 지하자원 공급처로 현대엔 수명을 다하여 새우젓 보관소로 변한 폐광이 되었다.
이런 폐광은 선견지명이 있는 리더에 의해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동굴테마파크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동굴테마파크는 광명동굴을 포함하여 보물체험, VR체험 등 볼거리, 놀거리가 다양하다. 산 정상에 있는 먹거리 광장은 남녀노소, 가족 단위로 즐기기에 공간도 넉넉하다.
광명동굴은 총연장 7.8㎞의 폐광산으로, 이중 갱도 2㎞는 개발이 완료되어 시민들에게 돌아왔고 나머지 구간은 개발과 새로운 테마 조성을 위해 여전히 업그레이드 중이었다.
동굴로 가는 길은 빠른 길과 무장애 데크로드가 있다. 빠른 길에는 동굴개발역사를 전시해 놓았다. 허세를 뽐내며 자랑하는 과시용이 아닌 실용적인 안내도였다. 진보진영 양기대 시장의 추진력과 보수진영 김문수 도지사의 지원 하에 공무원과 공사관계자들의 힘이 더해져 재탄생된 곳이었다. 국민을 섬기고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는 따로국밥이 아니라 하나임을 알게 한다.
무장애 데크로드는 장애인을 포함한 보행 약자를 위해 완만한 경사와 푹신한 산책로로 조성해 놓아 느림의 아름다움을 체감할 수 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었다. 성인 6천원이다. 광명시민은 50% 할인된다. 장애인과 동행 보호자, 다자녀 가정 등은 입장료가 면제된다.
동굴은 이동 동선을 따라 안내원이 배치되었다. 동선은 일방통행로로 조성되어 관람객이 겹치거나 중복되지 않도록 하여 관람에 효율적이다. 광명동굴은 동굴은 평지이며 블록이 깔려있어 이동 약자도 편안히 관람할 수 있다. 단, 동굴지하 세계는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기 때문에 휠체어 장애인은 이동이 제한된다. 때맞춰 이동에 제한이 없는 발달장애인 단체관람객이 인솔자를 따라 동굴탐험을 즐기며 이 곳을 통과하고 있다. 그만큼 광명동굴은 이동 약자가 이용하기에 좋은 관광지다.
동굴인구에서 입장권을 체크하고 바람길도 들어갔다. 깜깜한 어둠을 통해 불어오는 영상 12도 시원한 동굴 바람이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상상만으로도 시원하지 않는가?
광명동굴 관람은 매표소→동굴 입구→웜홀(동굴 사거리)→빛터널→빛의 공간→예술의 전당→홀로그램 상영→동굴 아쿠아월드→황금길→황금패 소원의 벽→부조(풍요의 여신)→황금 폭포→황금 궁전→황금의 방→동굴지하 세계→하수 전망대→동굴 광부 샘물→새우젓 발효창고→불로문 →LED 광부와 광차→근대전시관→와인 동굴→와인 시음장→와인 셀러→ 인 레스토랑(현재 폐쇄)→웜홀→출구→매표소로 나오는 코스다.
눈길을 끈 곳은 황금길 소망의 벽이다. 이곳에 운영 주체의 상술과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기대와 바라는 내용을 써 놓았다. 하나하나가 소박한 기대가 적혀 있다. 위트와 재치 만점의 소망을 적은 패들도 많았다.
"엄마가 장난감 사 줄 수 있게 가게 잘 되게 해 주세요.", "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꼭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해 주세요." “계약 건 많이 생기게 해 주세요.", “로또당첨, 더 큰 집을 이사 모두 행복하게 해 주세요." 등이 시선을 끌었다.
광명동굴은 와인 동굴로도 유명하다. 와인의 종류와 역사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다. 외국 브랜드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생산되는 와인도 종류가 아주 많았고 가격도 저렴했다. 코로나19 시국이지만 시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온 기념으로 국산 와인 두 병을 샀다.
수도권에서 아주 가까운 여름 동굴탐험이 끝났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입구로 다다르니 밝은 빛이 동굴로 비췄다. 역광에 비친 어린 손자와 할머니는 동굴탐험을 마치고 나가고 있다. 반대 방향에서 젊은 연인이 팔짱을 끼고 들어 오고 있다. 짧은 순간, 짧은 공간이지만 어린아이와 할머니, 젊은 부부가 한 장면에 잡히며 인간의 일생을 묘하게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동굴을 나오며 햇볕이 차가워진 몸에 닿자 피부는 습도로 눅눅해졌다. 때마침 산정상으로 불어오는 서풍이 시원하게 몸을 식혀 주니 인생의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며 소·확·행을 만끽하였다. 먹거리 장터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구름산에서 하루는 짧은 시간에, 작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