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숨쉬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시대와 숨쉬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 양우일 객원기자
  • 승인 2023.01.12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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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국내 봉제산업 발전사 한 눈에
남녀노소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 다채

[소셜포커스 양우일 객원기자] = 차량 두 대가 마주하며 통행하기 어려운 중심 도로, 사람 두 명이 편안하게 통과하기 어려운 골목, 창신동 길은 70년대 추억을 기억하고 연상할 수 있는 장소다. 중심 도로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한다. 골목길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 밖으로 빠져나온 연통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연기는 차가운 겨울 하늘로 흩어진다. 밖으로 들리는 재봉틀 기계음은 연기를 따라 빠르게 사라진다.

창신동은 크고 작은 오르 내리막 도로가 얽혀 있다
창신동은 크고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 도로가 얽혀 있다. ⓒ소셜포커스

작은 이륜차들이 일렬로 골목에 서 있다. 짐받이에는 자기 체중의 서너 배나 되는 원단을 싣고 골목을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사람들은 소량의 원단을 어깨에 메고 나와서 길 건너 다른 집으로 급하게 뛰어간다. 길은 좁고 경사가 높아 차량도 이륜차도 사람도 헐떡인다.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심장인 창신동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며 펄떡이는 모습이다.

봉제작업공정 순환도
봉제작업공정 순환도. ⓒ소셜포커스

창신동은 옷을 만들기 위해 패턴, 재단, 재봉, 미싱, 단추달기, 다림질, 완제품 포장 등 가내 수공업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는 봉제산업의 메카다. 창신동은 일제 강점기에 동네 이름이 만들어졌다. 한양도성의 낙산 바깥쪽과 돌산 안쪽 골짜기에 형성되었다. 돌산은 일제 강점기에 채석장이었다. 지금은 산마루놀이터라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평화시장에서 봉제작업을 하는 자료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평화시장에서 봉제작업을 하는 자료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우리나라 봉제산업은 70년대에 평화시장 건물에서 시작됐다. 건물 2~3층은 의류 제조를 맡고 1층에서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도매 또는 소매 판매 등 유통을 담당했다. 한 건물에서 제조와 유통이 모두 소화됐던 섬유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열악한 조업환경에 놓여 있었다.

당시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한 개층에 다락방을 만들었다. 서서 작업하는 재단과 앉아서 미싱작업을 하는 생산구조였다. 미싱작업 공간의 높이는 160㎝정도로 미싱사는 하루 종일 작업을 하면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지금의 근로환경 잣대로는 생각할 수 없는 작업구조였고 말도 안 되는 근로환경이었다.

본에
창신동은 거리 자체가 봉제역사 박물관이다. ⓒ소셜포커스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경공업인 섬유산업이 발전했다. 섬유는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산업이었다. 지방과 농촌의 어린 여성들이 돈을 벌려고 공장으로 대이동을 했다. 당당하게 대접 받아야 할 일꾼이 공순이라고 불리며 사회적 냉대와 하대를 받던 시절이었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열악한 작업 환경과 노동자를 기계처럼 대하던 상황이었다. 그 때 섬유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작업 환경이 바뀌었다. 평화시장에서 생산이 분리되어 유통만 남았다. 생산기지는 평화시장과 가까운 창신동으로 이동했다. 당연히 의류제조 업체가 밀집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약 1천 여개의 봉제공장이 가동되며 동대문 패션 산업의 배후 생산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해설사는 이것이 지금 창신동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동대문역에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도보이동 경로(네이버지도 캡쳐)
동대문역에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도보이동 경로. ⓒ네이버지도 캡쳐

1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를 나와 우측으로 들어선다. 꼬불거리는 길을 따라 6분정도 걸으면 막다른 골목에 우리나라 봉제산업 역사를 한 곳에 모아 놓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있다. 봉제산업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는 도심 속 문화역사 공간이다. 동대문역에서 나오면 완만한 경사를 올라야 하지만 걷기에 그다지 힘들거나 버겁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봉제박물관인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봉제박물관인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전경. ⓒ소셜포커스

박물관 이름에서 ‘이음’은 실과 바늘이 천을 이어 옷을 만들 듯 사람 사이를 잇겠다는 뜻이다. ‘피움’ 역시 꽃이 피듯 소통과 공감을 피우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이다. 구도심답게 주차장은 장애인 주차면적을 포함해 딱 4면에 불과하다. 매주 월요일과 법정 공휴일은 휴관한다.

2층 상설전시관
2층 상설전시관. ⓒ소셜포커스
3층 기획전시실
3층 기획전시실. ⓒ소셜포커스

1층은 카페 갤러리다. 천으로 만나는 일월오봉도가 특별 전시 중이다. 2층은 상설전시실로 대한민국 봉제산업의 역사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매 시간마다 해설사가 동행하여 설명한다. 3층은 봉제산업 장인들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조성된 기획전시실이다. 오는 5월까지는 창신양복점을 테마로 김관식님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주 테마는 재봉틀이다.

재봉틀은 여성을 바느질에서 해방시키며 삶의 질을 바꾼 혁신이었다. 수동식 재봉틀, 페달식 재봉틀, 모터 재봉틀을 전시하고 있다. 휴대용 재봉틀도 있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친밀한 규중칠우(閨中七友)도 전시되어 있다. 칠우는 바느질에 필요한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다리미, 인두를 말한다. 4층은 사무실과 테라스다. 창신동 봉제 마을과 한양도성이 이어지는 낙산을 조망할 수 있다.

봉제체험실에서 체험에 열중하고 있는 관람객들
봉제체험실에서 체험에 열중하고 있는 관람객들. ⓒ소셜포커스
봉제체험실에서 체험을 통해 완성한 봉제품
봉제체험실에서 체험을 통해 완성한 작품. ⓒ소셜포커스

봉제역사관의 작은 전시공간이 주는 밋밋한 맛을 달래줄 테마는 지하 1층에 있다. 이곳 지하 1층은 봉제 체험실이다. 관람만 하려고 했는데 유료체험뿐 아니라 무료체험도 있어 기꺼이 참여했다. 젊은 연인 한 쌍,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중년 부부 등 모두 세 팀이 체험에 몰두하고 있다. 캐릭터 만들기, 싸개 단추 만들기, 컴퓨터자수 이니셜 새기기 등 다양한 체험이다. 간단한 체험이지만 몰입도가 엄청 높아 생각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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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으로 만든 일월오봉도에서 무료커피를 마실 수 있다. ⓒ소셜포커스

다시 1층으로 올라갔다. 천으로 만든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커피 내리는 기계도 있다. 커피는 무료였으나 종이컵을 비치하고 있지 않아 3천원짜리 텀블러를 구입했다. 봉제역사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텀블러를 미리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

작은 오토바이 짐칸에 가득 실은 봉제원단
작은 오토바이 짐칸에 가득 실은 봉제원단. ⓒ소셜포커스

봉제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창신동 골목길을 다시 걷는다.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에 치열하게 살았던 봉제산업 근로자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원단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와 드르륵거리며 빠르게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 하얀 김을 내뿜은 스팀다리미가 살아 숨쉬듯 움직이고 있다. 50년 전 창신동 모습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한국패션산업의 배후기지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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