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접근성 망치는 ‘장애친화 산부인과’
장애인 접근성 망치는 ‘장애친화 산부인과’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3.03.08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정병원 10곳 대부분 수도권 등지에 집중
분만 100건 이상 등 조건에 사업참여 저조
서울시내 한 산부인과병원 신생아실.
서울시내 한 산부인과병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소셜포커스 김은희 기자] = 장애인들의 임신·출산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장애친화 산부인과’ 지정 사업이 취약한 지역 필수의료 인프라로 확대는커녕 개소조차 애를 먹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이를 타개할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 17개 시·도에 운영되고 있는 장애친화 산부인과 수는 모두 10군데다.

복지부가 임신·출산 과정에서 위험이 큰 장애인에게 안전한 의료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전문 병원을 지정해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2021년부터 공모를 통해 선정된 민간 의료기관들엔 휠체어 접근이 쉽도록 입원실·분만실·수유실 등 인프라 개보수·장비비 등으로만 기관당 3억5천만원씩 지원됐다. 인건비 같은 운영비로도 1곳당 1억5천만원이상씩 지원한다.

하지만, 지역별로 지정 기관 수는 편중됐다. 의료 인프라가 풍부한 서울에만 3곳이 몰린 반면 부산·광주·울산·경기·충북·전북·경북 등 7개 지자체엔 각각 1곳씩 지정됐다. 나머지 대구·인천·대전·세종과 강원·충남·전남·경남·제주 등 9개 시·도엔 한 곳도 없다. 이곳에 사는 15~49세의 여성장애인 5만4천349명은 거주지를 벗어나야 장애친화 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 전체 가임인구 수 15만5천344명 가운데 35%가량이다.

갈수록 취약해지는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인프라 탓이다.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 수는 481곳으로, 10년 전 기관 수 777곳에 비해 38% 감소했다. 전국에 산부인과가 없거나 분만실이 없는 시·군·구는 모두 63곳이고 수도권 내에는 인천 강화·옹진군의 도서들과 경기 의왕·과천시, 가평군 등 5곳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분만실 인프라를 갖춘 의료기관 자체가 한정돼있는 셈인데, 복지부는 ‘연간 분만 건수 100건 이상’이라는 지정 조건까지 내건 상태다. 사실상 출산과 영유아 보육까지 전문으로 수행하는 ‘여성병원’이거나 규모가 큰 종합병원급일 때만 가능한 셈이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지원 의지가 있는 지자체조차 해당 사업을 포기한 이유다. 대표적으로 강진의료원을 비롯해 4군데 여성장애인 친화병원을 자체 지정해 운영하던 전남의 경우 조건에 맞지 않아 공모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마저 이렇게 엄선된 10개 기관 가운데 정식으로 문을 열어 운영 중인 곳은 1곳뿐이다. 전북 전주의 예수병원만이 지난해 11월 복지부에서 제시한 장애인 친화형 인프라 구축 조건을 충족해 국내 1호 ‘장애친화 산부인과’ 이름을 단 상태고, 나머지 9곳은 현재 시설 보강 공사와 장애친화(BF) 시설 인증 절차 등을 밟고 있다.

이에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증장애여성의 성 재생산 영역에서 차별 경험과 인권증진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공공에서 새롭게 장애친화병원을 설치하기보단 기존 의료기관을 지정함으로써 생긴 문제”라며 “의료 접근권은 장애인의 건강권은 물론 인권에도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사실 모든 의료기관에서 접근권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원칙에 맞을 것”이라고 짚었다.

또 산부인과 전문의인 박슬기 언니들의병원놀이 활동가는 “적어도 병원이라면 장애 여부와 관련 없이 유모차, 휠체어, 전동스쿠터 등이 모두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의료접근성을 갖춰야만 할 것”이라며 “특히 장애친화 기관이라고 한다면 (물리적인 접근성 외에도)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진 감수성 교육도 중요하다. 장애 유형에 따라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지원책과 함께 모니터링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복지부 장애인건강과 관계자는 “열악한 필수의료 인프라에 대해선 정부에서도 인지하고 있으나 공모 조건을 완화하기엔 안전성 등의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며 “최대한 지자체 협조를 받아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장애친화 제도 개편 방안을 고심 중이다. 지난달 국회에서 강선우(민주·서울강서갑)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사업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하반기 시행을 앞두고 지침 등 세부 내용도 구체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