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서비스 받을 권리는 언제?
고품격 서비스 받을 권리는 언제?
  • 염민호 편집장
  • 승인 2023.05.30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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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 이익보다 기본 원칙부터 지켜야

며칠 전에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음식점에서 가족모임을 했다. 창 밖으로 넓은 호수가 보이는 등 주변 풍경이 좋은 곳이었다. 다소 특별한 의미를 나누기 위한 자리였기에 보다 품격을 갖춘 시간을 보내기 원했다. 무엇보다 가족의 건강한 삶을 기원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축하하려는 마음으로 장소를 정했다.

그러나 음식점 테이블 위에 미리 세팅해 놓은 그릇이 그리 깨끗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둘째 아이가 접시에 고춧가루가 붙어 있다며 교환을 요청했다. 공교롭게도 다른 그릇에도 똑같은 빨간 점 하나가 붙어 있었다. 또 다시 교환해달라고 했지만 오히려 민망한 쪽은 우리 가족이었다.

첫 인상이 좋지 않았기에 일행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소한 일로 문제를 삼거나 장소를 옮길 상황도 아니었다. 거듭 접시를 교환했던 까닭이었는지 우리 테이블 서빙을 맡은 직원의 굳어진 얼굴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음식 담은 그릇이 테이블에 놓일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워낙 유명한 음식점이라 빈 테이블 하나 없이 손님으로 가득했다. 음식점 직원들은 여기저기 바쁘게 음식을 나르느라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모처럼 가족이 조용히 대화하며 즐겁게 식사하려는 의도는 이렇게 어그러졌다.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코스요리였다. 큰 그릇에 담긴 음식을 테이블 중앙에 올려놓으면 각자 앞에 놓인 접시에 옮겨 담은 후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음식을 모두 먹지 않았는데도 다음 요리가 나왔다. 서빙하는 분이 남은 음식을 각자의 접시에 나눠 주고 빈 그릇을 치웠다. 친절한 서비스라기보다는 음식 밀어내기에 가깝다. 서둘러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그렇게 쫓기듯 식사를 했다.

건너편 다른 손님의 식탁에서도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나이 많은 부모님을 동반한 손님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께서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시간이 다소 흘렀다. 그 사이에 음식그릇 놓을 자리가 없도록 다음 요리가 계속 이어졌다.

예약하지 않아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손님들이 보였다.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음식 가격도 비싸다. 식사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던 탓인지 서비스를 제대로 받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풍경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까닭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음식을 맛보며 즐기기보다는 서둘러 자리를 내주고 나온 터라 푸대접 받았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둘째 아이가 한마디 보탰다. “그릇은 그래도 고급스럽게 보였는데 맨 나중에 나온 매실차를 1회용 종이컵에 담아 온 거를 보고 어이없었어요.”

그저 배고픈 속 채우려고 했다면 굳이 이런 비싼 음식점을 예약할 이유는 없었다. 음식만 먹으려고 비싼 값을 치르진 않는다. 좋은 음식과 함께 넉넉한 시간도 함께 갖기 원했다. 이런 의도가 있었기에 기꺼이 큰 비용을 지불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도 이런 손님의 의도에 맞춰야 한다. 음식점이 제공하는 일방적 서비스를 경험한 고객은 좋은 인상을 갖기 어렵다. 단골 고객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 모르고 찾아온 손님이나 상대하게 될 것이다. 비록 작은 기업이라도 한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힘들다. 언젠가는 외면 받기 십상이다. 때문에 눈 앞 이익보다 비록 더딘 걸음이라 할지라도 원칙을 지키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성장하는 많은 기업도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고객의 필요를 미리 채워주는데 관심을 둔다. 기업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게 영업이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려고 고객심리를 미리 파악하는 등 고도의 서비스 전략을 구사한다. 이렇듯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과정에서만 질 좋은 서비스가 필요한 게 아니다. 공공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서비스는 어떨까? 한마디로 우리 국민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가장 후진 정치서비스를 받는다. 날마다 식탁에 오르는 정치메뉴는 탁한 구정물이다. 너무 일방적인 그들만의 세계다. 날선 험담과 비난일색이다. 거짓 행위가 드러나도 뻔뻔하다. 천박하기까지 한 말싸움이 지나치다. 패싸움이나 다름없는 정치집단의 대립으로 인해 객관적 가치기준조차 실종되고 말았다. 이렇듯 기본이 무너진 정치로 인해 사회가 혼탁하고 어지럽다. 정치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없으니 국민에겐 고역이다. 값싼 서비스와 후진 정치가 판치는 이유는 너무 쉽게 기본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지도층의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고사하고 그저 기본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한 때는 청빈(淸貧)한 삶을 존중하고 이를 모토로 삼으려는 정신문화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청부(淸富)의 삶 역시 이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참 부자는 주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한 삶을 살아간다.

다른 나라의 큰 정치인이나 부자들 가운데는 도덕적인 삶을 실천하며 존경받는 사람들이 많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삶의 태도다. 우리사회에도 이런 정신을 실천하는 존경받는 지도자와 큰 부자가 많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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