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제쳐두고 확대에 혈안인 생존수영
기초 제쳐두고 확대에 혈안인 생존수영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3.06.14 1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특집: ④생존수영 의무수업 ‘헛구호‘
ⓒ경기도교육청
올해 경기도교육청 유치원 생존수영 시범사업에 참여한 만 5세 아동들의 모습. 현재 부산,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경기, 충북, 경북, 경남 등 10개 지자체에서 사업을 실시 중이다. ⓒ경기도교육청

[소셜포커스 김은희 기자] = “초등 수영교육은 10여 년 동안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이겨내고 만족도 높은 많은 성과를 남겼습니다.”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안민석(민주·경기오산) 국회의원이 내놓은 ‘2022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수영편’에 담긴 생존수영 수업의 평가다. 여기에 올해로 9년 차를 맞은 생존수영 수업을 이제 유치원생까지 확대·의무화하자는 제안도 포함했다.

안 의원은 지난해 10월 서울·인천·경기 등 3개 시·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정감사에서도 생존수영 수업 확대를 촉구했다. 그는 “(현재) 초등학교 (저학년인) 3학년 대상으로 생존수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유아기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수영을 배우면 사실 초등학교에는 굳이 또 할 필요도 없다”며 “2018년과 2019년에도 시범적으로 (유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무지개수영 사업을 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주춤했다. 내년에 각 시·도에서 확대할 방안을 제출하라”고 말했다.

이같은 방향성은 교육부가 지난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제3차 유아교육발전기본계획’으로도 이어진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초등학교 입학 이전인 만 5세 유아를 대상으로 생존수영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지역별로 확대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올해 전국 10개 시·도 교육청 등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교육청마다 차이는 있으나 예산 규모는 평균 3천만원가량. 생존수영 프로그램 운영을 원하는 일부 유치원·어린이집에 해당 예산을 나눠 지급한다. 즉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곳은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앞서 2018년 교육부 시범 사업 과정에서도 “초등학생 전 학년 실시도 어려운 상황에서 유치원까지 확대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인프라 차이로 갈리는 생존수영, ‘부익부 빈익빈’

세월호 참사 이후 해상안전사고 대응을 위한 생존수영 관련 국가계획은 지속해서 강조해 왔으나 정작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생존수영 관련 인프라 확충은 현실화하지 못했다.

교육부는 2018년 공식화한 ‘제2차 학교체육진흥기본계획’으로 초등학생 전 학년과 유아동 등까지 생존수영 실기교육을 확대 실시한다고 밝혔고, 그에 앞선 2017년 행정안전부는 25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1차 국민 안전교육 기본계획’을 통해 생존수영 활성화와 함께 장애인·외국인·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교육프로그램 개발·보급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의무화 대상으로 명시된 초등학교만 해도, 지난해 기준 전국 학교 6천350곳 가운데 수영장을 보유한 곳은 90곳으로 1.4%에 불과하다. 생존수영이 본격화되기 직전 자료인 2012년 체육통계상 전국 초등학교 수영장 수 80곳과 유사한 수치다. 전국 특수학교 192곳 가운데서도 자체 수영장을 갖춘 곳은 12곳(6.3%)이다.

그나마 생존수영 수업을 하기 용이한 국·공립 수영장 시설 수는 2013년 323곳에서 지난해 기준 492곳으로 늘었다. 10년새 1.5배 증가한 정도다. 다만 지역별로 보면 차이가 있다. 제주의 경우 여전히 시설 수가 2곳에 불과해 하나당 인구 33만명을 맡아야 하고, 충남도 9곳으로 한 곳당 인구수는 23만명이다. 광주와 대구도 시설 1곳당 인구수는 14만명가량인 반면,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엔 8개 시설이 소재해 1곳당 인구수는 4만명에 불과했다.

어디에 거주하는지에 따라 해상 안전사고에 대응 교육을 받을 권리도 달라지는 셈이다. 결국 정부는 해상안전과 관련한 별도 시설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실제 상황과 유사하게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해양수산부의 해양체험교육시설 건립 사업이 있다.

전국 최초로 2021년 경기 안산 대부도에 개소한 경기해양안전체험관은 현재 열악한 지역 생존수영 인프라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만 19개 지역 65개교 학생 7천500여명이 이곳을 찾아 생존수영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수영 수업이 가능한 수영장 외에도 침수선박에서 탈출하거나 이안류, 선박운항, 해양생존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연간 운영비로 국비 20억원을 비롯해 34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시설로, 지난해에만 3만여명이 체험관을 방문했다.

하지만, 함께 추진된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 국민해양안전관 건립은 예산 분담을 문제로 공사가 늦어졌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해당 시설 운영비를 두고 진도군이 국비 추가 지원을 요청하며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결국, 매년 발생하는 운영비 25억원 가운데 진도군이 40%인 10억원을 분담하기로 하면서 공사가 재개됐고, 올 10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8월 전남 여수시 해양경찰교육원에서 초등교원 생존수영 역량을 키우는 직무연수 교육이 진행됐다. 사진은 바다 조류를 구현한 환경에서 단체 생존수영 대응법을 배우는 모습이다.
지난해 8월 전남 여수시 해양경찰교육원에서 초등교원 생존수영 역량을 키우는 직무연수 교육이 진행됐다. 사진은 바다 조류를 구현한 환경에서 단체 생존수영 대응법을 배우는 모습. ⓒ해양경찰교육원

해상안전 전문 시설에도 ‘장애인’은 없다

문제는 이같은 시설에조차 장애인들을 위한 별도 지침이 없다는 점이다. 도 산하 경기평택항만공사가 위탁운영 중인 경기체험관은 누리집을 통해 장애인의 경우 체험이 제한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특히, 해양생존체험 등을 위해 물에 직접 들어가려면 “장애인 1명당 보호자 1명씩이 동행할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돼 있다.

체험관 내에서 생존수영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결국, 다시 현장의 장애 관련 전문인력 부재 문제로 이어진다. 물 속에서 장애인 개개인 맞춤형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 당사자에 안전성 보강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기준을 내놔야 하는 교육부는 장애인 생존수영과 관련해선 뒷짐만 지고 있다.

현재 교육부는 부족한 생존수영 수업 인력을 확충할 대책으로 기존 초등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상태다. 방학 중 전국에서 모인 초등학교 교사 등에 수영 연수를 진행하는데 매년 4억원씩 투입한다. 교육을 수료한 이들은 각 지역에서 생존중심 수영실기 지도를 맡는 이른바 ‘생존수영 교육 핵심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지난해에도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배정된 교사·교육전문직 등 280여명이 해양경찰청 산하 해양경찰교육원을 통해 사흘간 생존수영 수업을 받았다. 주요 내용은 ‘누워뜨기’, ‘주변 사물을 활용한 구조 활동’, ‘저체온증 예방 방법’ 등이다. 교육원이 갖추고 있는 전남 여수 해양구조·모의선박 실습장 등을 활용해 10시간 실습, 5시간 이론 교육 등이 이뤄진다.

하지만, 교육원에서도 정작 장애인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교육원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내려준 별다른 지침이 없다”는 설명이다. 앞서 올 3월 해경청·교육부·학교체육진흥회 등이 함께 내놓은 ‘생존기능 중심 수영교육 매뉴얼’을 봐도, 장애인의 생존수영을 위한 내용은 없다. 현장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는 교사 연수 과정조차 ‘장애’는 다뤄지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존수영 수업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식’이라고 지적한다. 장애인들이 배제되지 않는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교육부를 중심으로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육현철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아직은 장애인 생활체육은 물론 아동·청소년들이 생존수영을 배울 공간이나 전문인력 확보조차 여건상 어려움이 크다”며 “장기적으로는 독일·일본 사례처럼 장애인을 비롯한 누구든 집 가까운 곳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교육부 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생존수영이 학교 현장에 쉽게 접목되도록 수영 전문 교사 확충 등 별도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유창완 인천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는 “장애아동들이 동일한 교과 과정 속에서 생존수영 수업을 듣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여름방학 등을 활용해 별도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학교 현장과 달리 장애 맞춤형 수영 교육 인력이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도 내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