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광경을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 경찰이 불러 온 승합차에 경사로를 깔고 휠체어에 앉은 박 대표를 태웠다. 차량에 설치한 경사로를 오르려고 시도하는 순간 박 대표 휠체어가 뒤로 넘어졌다.
경찰이 승합차량에 임시 경사로를 설치하고 박 대표를 태운 것이 문제였다. 박 대표 스스로 급경사를 오를 수 없다는 사실도 분명했다. 활동 보조인으로 보이는 남자 역시 휠체어 뒤에 서 있었을 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직 박 대표 힘으로 차량 탑승을 시도하면서 곧바로 몸이 뒤로 넘어갔다. 뒤에 있던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박 대표를 감싸 안았다. 이 모든 과정은 전장연 기관지격인 ‘비마이너’ 기자가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로 송출했다.
이 광경을 직접 지켜 본 사람들이 우발적 사고라기 보단 박 대표의 쇼맨십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의 안위보다는 쓴웃음부터 나왔다고 했다. 심지어 박 대표의 피해자 코스프레 의도에 오히려 경찰이 당했다는 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경찰이 박경석 대표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날 벌어진 사건은 박 대표가 다양한 방법으로 경찰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미 비마이너가 이를 여러 꼭지로 나누어 편집해 보도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비마이너 보도를 보면 박 대표는 15일 오전 0시 30분경 건강 악화로 치료를 위해 남대문경찰서에서 서울시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전장연의 최근 투쟁은 지하철에서 노선버스로 옮겨왔다. 전장연 회원이 여기저기서 서울시내 버스 앞을 가로막는다. 전장연은 이를 장애인은 탈 수 없는 ‘차별버스’라고 부른다. 시내버스를 가로막는 행위를 ‘버스행동’이라 칭하고 있다. 출근길 전철운행을 지연시키는 방법에서 시내버스 지연운행을 노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장연은 그들의 표현대로 ‘지하철행동’ 또는 ‘버스행동’을 비폭력 저항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주장대로 과연 비폭력 장애인운동일까? 이들이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폭력 아닌 것으로 바뀔까? 전장연은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심각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전장연의 상시화 된 투쟁이 바로 폭력투쟁이다. 전철운행이 지연되고 버스운행이 가로막히면서 시민의 일상생활에 큰 불편과 지장을 초래한다. 전장연의 대중교통 방해로 인해 특정할 수 없는 많은 시민이 직접 피해를 겪는다. 이는 감출 수 없는 실제적인 폭력성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비폭력 투쟁이라고 애써 합리화하면 할수록 시민사회가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벌인 비폭력 불복종 투쟁은 무엇이었을까? 예를 들면 정부의 지문등록 정책에 호응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가 거리를 막고 투쟁했다는 기록은 없다. 간디는 국민이 직접 생계를 꾸리고 자립하도록 본인도 물레를 잡고 실을 뽑았다는 일화가 있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지난 달 어느 매체에 나와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도 전과 30범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박 대표 본인의 누적된 전과기록을 합리화 하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박 대표가 자신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동등시 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망언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벌인 ‘버스 보이콧 운동’ 역시 버스운행을 가로막는 방식이 아니었다.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해야 한다는 규정에 불복종했을 뿐이다. 버스에 오른 백인이 앉을 좌석이 없으면 앉아 있는 흑인이 양보하라는 법규가 시행중이었다. 그러나 이 규정에 응하지 않는 좌석양보 거부, 이게 불복종 투쟁의 전부였다.
그러나 전장연이나 박경석 대표는 공공시설 무단점거, 대중교통 방해, 시내 주요도로 점거 통행 방해, 공공시설 훼손 등 과격 투쟁을 일삼았다. 실제적인 피해가 속출한 공공질서 문란행위가 지금까지 보여준 전장연의 투쟁이다. 이를 비폭력 투쟁이라고 강변하는 행위가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전장연 구호 중 좋은 표현을 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거창하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용을 보면 억측과 모순이 가득하다. 마치 “내가 옳다면 옳은 거야” 강변하는 모양새다.
전장연이 내세운 구호 가운데 “전장연과 함께 소통하는 달보기 운동 함께 합시다!”라는 내용이 있다. 비난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자는 부제가 달렸다. 장애인 문제에 대한 본질을 바로 보자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박경석 대표의 손가락 끝은 본질을 호도하는 쪽을 가리키기에 바쁘다.
또 “기획재정부의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춰라!”라는 구호는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예산을 빌미로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기획재정부의 논리는 1939년 장애인을 대량 학살했던 T4작전과 다르지 않습니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 문제를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정권이 벌인 T4작전에 비유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비약이다. 전장연의 주장은 이렇게 논리구조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억지가 대부분이다. 장애인운동을 빌미삼아 억지논리로 끼워 맞춘 ‘지하철행동’이나 ‘버스행동’이 시민사회를 설득하고 제도를 바꾸는 가장 합리적인 투쟁 수단일까?
그러나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전장연 지도부는 현재 20년 넘는 세월을 극단적 투쟁방법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어쩌면 전장연은 이 조직을 만들고 주도해 온 지도부 몇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전장연조직은 이들, 특히 박경석 대표의 삶을 지탱해온 수단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전장연 투쟁에 참여하는 애꿎은 장애인들이 정확한 실상도 모른 채 이용당하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