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교통약자 정책에서 발 빼나
정부, 교통약자 정책에서 발 빼나
  • 윤현민 기자
  • 승인 2023.09.07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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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저상버스 보조금·연구개발비 일제 삭감
“민간투자 위축돼 관련사업 흐지부지될 판” 지적
국토교통부. ⓒ연합뉴스
국토교통부. ⓒ연합뉴스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교통약자에 대한 정부 관심과 의지가 퇴색돼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내년도 예산에서 저상버스 보조금과 연구개발비를 대폭 깎았다. 무장애 환경(Barrier Free) 인증 사업 관련 예산도 거의 반토막 냈다. 결국, 민간의 저상버스 투자만 위축시켜 연구개발도 흐지부지될 판이다. 국정과제로 내건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사회 구현’마저 무색할 지경이다. 반면, 관계당국은 버스업체 파산 등 경제요인을 탓하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5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보면, 내년도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은 1천674억9천500만원으로 책정됐다. 올해 1천895억1천900만원보다 11.6% 줄었다. 전년대비 2배 가까이 늘린 올 예산과 영 딴 판이다. 당시 986억원에서 92%(909억1천900만원) 증액했다.

저상버스 1대당 지원규모는 9천200만원 정도다. 모두 시내·마을버스, 농어촌버스의 저상버스 전환에 쓰인다. 올해 1월부터 적용된 '교통약자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낡은 시내·마을버스와 농어촌버스를 새 차로 바꿀 때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 한게 골자다.

이는 저상버스 생산량 감소 탓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 관계자는 “올해 에디슨모터스, 자일대우버스 등 버스 생산업체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저상버스 주문물량을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하면서 관련 예산 집행도 저조해 내년 예산 삭감이 불가피해졌다”며 “이런 영향으로 내년 저상버스 신규 도입 대수는 올해 4천299대보다 11.6% 줄어든 3천800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앞서 에디슨모터스는 지난 1월 창원지법으로부터 기업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현재 인수·합병(M&A) 절차를 밟고 있으며,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가 최종 인수예정자로 선정된 상태다. 자일대우버스도 지난해 7월 폐업 및 국내 법인 청산에 돌입하면서 생산을 멈췄다.

하지만, 저상버스 증가세 둔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3년(2019~2021년) 연평균 7.6%씩 꾸준히 줄고 있다. 국토부의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22~2026년)에 따르면, 시내 저상버스의 대차 및 신규 대수는 2019년 1천619대,  2020년 1천558대, 2021년 1천378대 등으로 집계됐다.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 가능 저상버스 표준모델’ 연구개발 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당초 내년 계획된 예산의 85.6%가 잘려 나갔다. 총 사업비는 376억6천400만원(국비 250억원)이며, 연구기간은 4년이다. 올해 40억원을 집행했으며, 2024년 61억5천만원, 2025년 114억원, 2026년 34억5천만원씩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내년 정부 지원금 61억5천만원 중 52억6천400만원이 깎였다.

이밖에 여객터미널 BF 인증사업 예산도 절반 가까이 깎였다. 올해 4억5천만원에서 내년 2억6천만원으로 42.2% 줄었다.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사업 예산 역시 올해 5억원에서 내년 3억5천만원으로 30% 감액됐다.

현 정부 출범 때 약속한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사회’는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과제에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을 통한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사회 구현’을 포함시켰다. 세부 이행과제로 ▲휠체어 탑승버스 및 장애인 택시 확대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 가능 저상버스 표준모델 개발 ▲역, 터미널 등 교통시설 BF 인증 재정지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

그러자, 일각에선 퇴행적인 교통약자 정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책추진 의지가 시들해져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장애인인권센터 관계자는 “정부 긴축재정으로 연구사업이 부실하게 지원되면 민간투자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수십년간 기다려온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또 다시 예산문제로 거부당하고 나면 장애인 권리보장도 요원해지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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