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강렬했던 추억 ‘꽃무릇 축제’
화려하고 강렬했던 추억 ‘꽃무릇 축제’
  • 양우일 객원기자
  • 승인 2023.09.2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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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절정…전국 곳곳 상사화 물들여
저가 버스단체여행 등 활성화 계기 기대

견디기 힘들었던 고온다습한 여름도 이제 기운이 빠지는 중이다. 낮에는 그 위용이 여전해 보이지만, 아침저녁으로는 견딜만하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에어컨 소음도 점차 잦아든다.

여행은 추억을 남기고 추억은 삶을 행복하게 한다. ⓒ소셜포커스

여행은 추억을 남기고 그 추억을 떠올리면 삶에 좋은 기운을 돋운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19로 인해 버스를 타고 떠나던 단체여행이 사라진 점은 진한 아쉬움 중 하나다. 관광버스는 저렴한 비용으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알아가며 즐길 수 있는 당일 여행이 가능했다.

문득 버스 여행이 남겨준 진한 추억이 떠올랐다. 지난 2017년 9월 23일이었다. 당시 어느 여행사가 2만3천900원으로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관광버스 여행을 제공했다. 이날 오전 7시에 잠실역 롯데마트 앞에서 관광버스가 출발했다.

새벽에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여 7분 전에 도착해 예약한 버스에 올랐다. 그렇지만 버스는 늦게 오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출발이 늦어졌다. 10여 분 늦게 도착한 젊은 연인과 은회색 머릿결의 노년 부부가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는 서로 달랐다. 젊은 커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미안하고 죄송한 표정의 노년 부부에게서는 ‘염치’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염치’는 예절을 아는 사람에게서나 풍겨 나오는 것일까?

꽃무릇은 은은하지만 화려하고 강렬한 붉음이 살아 있다. ⓒ소셜포커스

늦은 출발로 약간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잠시 후 여행 안내자의 설명이 시작됐다. 당일치기 투어의 특징이랄까, 가이드 따로 승객 따로였다. 그렇지만 애써 노력하는 가이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수도권의 뿌연 하늘과 옅은 안개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옅어졌다. 차창 밖 들녘은 꽉 채워져 가을걷이를 앞둔 풍요로움이 펼쳐졌다.

남쪽으로 갈수록 황금 들녘이 가을을 재촉한다. ⓒ소셜포커스

이동 중에 한 여행객의 갑작스러운 생리작용으로 휴게소 두 곳을 들러야 했다. 휴게소 한 곳에서 쉬어가려 했으나 두 번으로 늘어나면서 늦은 출발에 더하여 이동 시간을 또 잡아먹었다. 오늘 목적지는 영광 불갑사다. 목적지에 계획보다 40여 분 늦게 도착했다.

주차장은 먼저 온 승용차와 관광버스로 빼곡히 차 있다. 이미 늘어선 관광버스에서 울긋불긋 단장한 등산객과 여행객을 연신 토해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영광 불갑사에 펼쳐진 꽃무릇을 보려면 1.8㎞정도 걸어야 한다. 점심으로 보리 비빔밥에 막걸리 한 병을 아내와 함께 마신 후 붉은 꽃을 즐길 준비를 마쳤다.

먹거리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소셜포커스

길가에는 온통 피어난 꽃무릇이 가로수를 대신한다. 가슴은 어느새 붉게 물들었고 붉음에 취하듯 즐기면서 걷는다. 지나는 곳 중간에는 축제답게 먹을거리와 볼거리, 놀거리가 즐비하다. 그 가운데 압권은 스님의 노래 탁발이다. 공양으로 적은 금액을 시주했다. 발걸음은 어느덧 불갑사 일주문을 지났다. 일주문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온통 붉은빛 카펫을 깔아놓은 듯 꽃무릇 향연이 펼쳐진다.

불갑사로 향하는 길. ⓒ소셜포커스

상사화로도 혼용되는 꽃무릇이다. 이 꽃에는 아버지의 병 때문에, 절에 불공드리러 온 딸을 연모하다 죽은 스님의 무덤 주변에서 홑 꽃이 되어 피었다는 전설이 담겼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늦게나마 알았다. 꽃무릇을 다시 들여다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과 생각이 들어 더욱 유심히 관찰한다.

꽃무릇은 은은하지만 화려하고 강렬한 붉음이 살아 있다. ⓒ소셜포커스

수많은 사람이 불갑사 입구부터 펼쳐진 붉은 배경을 추억으로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꽃무릇은 들어선 절 경내 구석구석을 예쁘게 잘 꾸미고 있다. 보통 절집 누각은 늘씬한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들어간다. 그런데 이곳 만세루는 애완견 웰시코기처럼 짧은 다리를 갖고 있다. 절을 찾은 여행객이 좌우로 우회하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 산신각 등 전각을 돌아보며 꽃무릇 전설을 다시 떠올렸다.

꽃무릇은 은은하지만 화려하고 강렬한 붉음이 살아 있다. ⓒ소셜포커스

버스 출발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보게 된다. 내려오면서 붉은 꽃무릇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이 촉박하다. 아침에 늦게 온 사람을 생각하며 버스가 대기하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영광은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최초도래지다. ⓒ소셜포커스

영광은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최초도래지다. “어라!” 그곳은 늘 봐 왔던 사찰의 모습과 너무 달라 조금 당황했다. 천여 년 전의 불교 도래지는 만다라 양식으로 새로 꾸며지는 불사가 진행 중이다. 영광은 우리나라 4대 종교의 성지가 모여 있다. 불교 최초도래지를 비롯해 천주교는 영광성당, 원불교는 영산성지, 기독교는 염산교회가 그 면면이다. 특산품 ‘영광굴비’만 기억했는데 이 지역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다.

모싯잎 떡과 영광굴비로 마음을 채워 귀경길에 오른다. 도중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의 냄새 나는 화장실 입구에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글귀가 있다. 손에는 지난달 말부터 읽기 시작해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완독한 달라이 라마의 책 ‘용서’가 들려있다. 묘한 인문학적 질문을 화장실과 버스 안에서 만났다.

꽃무릇은 은은하지만 화려하고 강렬한 붉음이 살아 있다. ⓒ소셜포커스

상사화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9월 중순부터 10월까지가 절정이다. 이 시기에 지역에서는 꽃무릇(상사화) 축제를 벌인다. 꽃무릇과 상사화는 같은 듯 다르다. 두 식물은 수선화과 식물이다. 잎과 꽃이 같이 만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때문일까. 두 식물의 꽃말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상사화와 꽃무릇이 서로 다른 점은 꽃 모양이다. 꽃무릇은 5~10개의 왕관형으로 핀다. 상사화는 4~6개의 원추리 모양이다. 꽃무릇은 꽃이 진 뒤 잎이 돋는다. 그렇지만 상사화는 그 반대로 잎이 진 뒤 꽃이 핀다. 두 꽃은 모두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끝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상사화다.

잠자리가 나뭇가지 끝에서 날개를 쉬고 있다. ⓒ소셜포커스

꽃무릇 붉은 꽃이 필 때면 불이 붙은 듯 색감이 화려하고 강렬하다.

알아보니 지금 버스 여행은 2017년 그때보다 2.5배 정도 비싸다. 저렴한 비용으로 즐겼던 추억은 6년 전이다. 그래도 붉은빛 따스한 감정이 흘렀던 꽃무릇과 첫 만남의 느낌은 생생하기만 하다. 하루 짧은 여행이었지만 깊고 진한 행복이 추억으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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