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당사자 주의’ 도미노 붕괴
‘장애인 당사자 주의’ 도미노 붕괴
  • 윤현민 기자
  • 승인 2023.12.05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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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훈령 2차례 고쳐 개방직 범위 축소
장애인고용과장 등 3개 직위 내부인사 전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공직사회에서 ‘장애인 당사자 주의’가 판판이 깨지고 있다. 복지부에 이어 노동부까지 차별·편향 인사에 가세하면서다. 급기야 하위법령을 고쳐 장애인 공직진출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새 허울뿐이지만 명맥을 유지해 온 장애인 개방직도 사라졌다. 특히, 훈령 개정을 쪼개가며 개방직 수를 줄이는 꼼수까지 동원됐다. 그러자 장애계는 이들의 저열한 장애인 인식을 강하게 성토했다. 반면, 관계당국은 상위법 개정 후속조치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달 30일자로 훈령인 인사혁신규정을 고쳤다. 개방형 직위 지정 범위를 줄이는 게 골자다. 이 때 기존 4급 개방직 2개 자리를 없앴다. 장애인고용과장과 경북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직위를 뺐다.

인사혁신규정 개정은 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첫 개정은 지난 8월30일 있었다.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다. 이제 시행규칙이 아닌 훈령이나 예규에 개방직위를 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시행규칙의 개방직 특례 조항을 인사혁신규정에 넣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노동부의 개방직위는 손 대지 않았다. 고위공무원단(2·3급)과 4급을 합친 14개 개방직 그대로였다. 개방형 2·3급은 ▲감사관 ▲산업안전보건정책관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회 ▲경남지방위원회 위원장 등 5개다. 4급은 ▲양성평등정책담당관 ▲장애인고용과장 ▲화학사고예방과장 ▲고양지청장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경남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경북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사무국장 등 9개다.

그러다 한 달도 채 안돼 또 뜯어고쳤다. 9월29일 개정을 통해 화학사고예방과장을 개방직에서 제외했다. 이후 앞선 세 번째 개정에서 장애인고용과장과 경북지노위 사무국장까지 뺐다. 3개월간 2차례로 나눠 4급 개방직 9개 중 3개를 없앴다는 얘기다.

결국 2017년 9월 개방직 전환 후 7년 만에 내부인사로 회귀했다. 사회 각계 전문가의 정책참여라는 당초 도입취지와는 영 딴 판이다. 전문성을 갖춘 장애인 당사자의 사회참여를 배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유명무실해진 장애인고용과장 사례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자리는 장애인개방직 도입 후 내부 공모로만 인사가 이뤄졌다. 2018년 3월18일 A 전 대전고용플러스센터 소장, 2019년 11월20일 B 전 일자리위원회 고용사회팀장, 2022년 2월4일 C 전 공정채용기반과장이 장애인고용과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모두 노동부 및 산하 조직 공무원들이다. 장애인 당사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장애인 개방직 흔적마저 지웠다. 노동정책 분야에서 장애인 공직사회 진출을 원천봉쇄한 꼴이다.

지난 3월 복지부 개방직위 파문 사태를 재현한 모양새다. 당시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 D씨는 임용 7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3월13일 부임해 같은 달 20일 스스로 물러났다. 장애계 등으로부터 쏟아진 직무 부적격 지적 탓이다. 주로 정치 편향과 장애인 당사자 원칙 파괴에 크게 반발했다.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 자리는 2004년 개방형 직위로 바뀌었다. 이후 줄곧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에 임용됐다. 장애 감수성과 이해로 정책 이행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취지다. 그러다 특정 정치성향의 비장애인 D씨가 갑자기 내정됐다.

당시 그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 이력이 논란이었다. D씨는 전장연 연대기구에서 8년 일했다. 2010~2017년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정책실장 등을 지냈다. 이 기간 전장연 시위·집회에 동참하며 같은 행보를 보였다. 주로 장애인등급제 폐지 등 탈시설 정책 수립에 공동전선을 폈다. 2년째 지하철 시위로 논란의 중심에 선 전장연 주장이기도 하다.

이에 장애계는 장애인 당사자 원칙 파괴라며 크게 반발했다. 5일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에 고용노동부가 훈령을 고쳐 개방형 직위였던 장애인고용과장 직위를 없앤 것은 개선이 아닌 퇴보로 270만 전체 장애인의 고용확대 염원을 무참히 짓밟는 조치”라며 “장애인고용과장 직위를 개방직으로 원상회복시키지 않을 경우 전체 장애인 역량이 동원된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관계자도 “그간 노동부 내부 공모를 통해 장애인 개방직을 무력화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 그 흔적마저 지워 장애인의 공직진출 자체를 틀어막았다. 이 과정에서 관계 훈령을 여러 번 고쳐 개방직 수를 줄이는 꼼수까지 동원하는 저열한 장애인 인식 수준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반면, 정부는 하위법령 정비 차원이라며 직접 언급을 피했다. 노동부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이번 인사혁신규정 개정은 고용노동부 소속기관 직제 및 개방직위 운영규정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라며 “앞으로 개방형 직위 도입취지가 불필요하게 훼손되지 않도록 사회 각계 민간 전문가 참여 확대를 통해 조직운영의 유연성을 높이는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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