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로마로 떠나는 짧은 여행’
‘고대 그리스-로마로 떠나는 짧은 여행’
  • 양우일 객원기자
  • 승인 2023.12.2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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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6월부터 그리스·로마역사 신설
“두 문화가 하나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상설 전시는 무료 관람, 문화강국 자긍심 느껴
남성 조각상
남성 조각상 ⓒ소셜포커스

동양을 알려면 중국 역사를 알아야 하고, 서양을 제대로 보려면 로마역사를 살펴야 한다. 동양은 중국을 중심으로 정치와 문화 교류가 이뤄졌고, 서양은 로마역사를 바닥에 깔고 있다. 세계적인 위상과 영향력은 서로 다르다. 중국은 지금도 그 명칭을 유지하고 있고, 반면 로마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중국은 중화 이념에 매몰되어 패권주의가 지배하고, 사라진 로마의 문화와 실용적 가치는 서양뿐만 아니라 글로벌 속에 녹아 있다.

몇 년 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완독했다. 소설을 통해 로마 역사 2천 년을 맛봤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6월부터 그리스ㆍ로마실을 신설하고 전시를 시작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에 관람을 했다.

전시실 부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실 부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리스ㆍ로마는 신화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와 달리 학창 시절에 그리스·로마 신화는 정말 재미있고 흥미를 자아냈다. 그리스ㆍ로마 시대 그때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 시대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신들에게 이입하고 대입하여 신화를 만들어냈다.

전시를 관람하기 전,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안다는 것은 관람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눈과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관에 새겨진 그림
관에 새겨진 조각 ⓒ소셜포커스

고대 그리스는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은 지형 특성 때문에 각 지역 간 교류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적ㆍ사회적으로 독립된 도시 국가인 폴리스(Polis)가 고대 그리스 곳곳에서 독자적인 정치 형태로 발전했다.

그리스는 제우스가 일으킨 홍수에서 살아남은 프로메테우스의 손자, 헬렌을 조상이라고 여겨 자신들의 나라를 ‘헬라스(엘라스)’, 그리스인을 ‘헬레네스(엘리네스)’로 부른다.

도시 국가 폴리스에 있는 높은 언덕을 가리키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높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크로(akros)’에서 유래됐다. 대부분 폴리스 중심에 있던 아크로폴리스에는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다. 신전은 신앙의 중심지이자 때로 전쟁이 벌어지면 군사적 요충지로도 사용했다.

신화가 그려진 도자기
신화가 그려진 도자기 ⓒ소셜포커스

그리스의 대표적 폴리스인 아테네는 그리스 정치ㆍ종교ㆍ문화의 중심지였다. 모든 시민이 모인 집회에서 평등을 기초로 나랏일을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시초다. 유네스코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세계 문화유산 1호로 지정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신전이자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기원전 448년부터 기원전 432년까지 당대 최고를 자부하는 조각가와 건축가의 설계로 16년에 걸쳐 완성됐다.

그리스 로마 인물조각상
그리스 로마 인물조각상 ⓒ소셜포커스

로마는 B.C 8세기경 작은 도시 국가로 창건됐다. 기원전 6세기경(B.C 510년) 공화정을 이룸으로써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 연안을 평정하게 된다.

B.C 1세기경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의 삼두정치가 시작됐다. 이후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B.C 31년경 로마는 명실상부한 ‘로마의 평화’ 시대를 열어젖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이 이때 구현됐다. 로마의 문화, 예술, 건축 등 황금시대를 가져왔다. 해상과 육상을 통해 로마로 유입되는 온갖 물품은 당시 로마의 권세와 영화가 얼마나 크고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로마는 데오도시우스 황제 시기를 거친 후(395년경) 동과 서로 분열된다. 서로마 제국은 A.D 476년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지만, 동로마 제국은 천 년을 더 지속했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 ⓒ소셜포커스

지난 2000년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그리스와 로마 관련 전시는 대부분 그리스나 로마 중 한쪽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그리스와 로마 두 문화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두 나라의 신화와 문화를 살펴보려 한다는 점에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고대 그리스ㆍ로마실로 들어가 보자. 역사적으로 당연히 그리스문화가 선행하고 로마문화가 그 뒤를 잇는다. 로마는 그리스문화를 수용하며 하나로 녹여냈다.

아기 조각상
아기 조각상 ⓒ소셜포커스

고대 그리스ㆍ로마실은 국립중앙박물관 3층 세계문화관 안에 자리를 잡았다. 상설전시관으로 출품작 126건을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으로 꾸몄다. 명칭도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다. 각 특징을 존중하면서 하나의 문화로 용해된 전시임을 알 수 있다. 전시는 세 개의 테마로 구성했다. 제1부는 신화의 세계, 제2부는 인간의 세상, 제3부는 그림자 제국이다. 전시는 2023년 6월 15일부터 2027년 5월 30일까지 이어진다.

1부 ‘신화의 세계’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래 된 신화를 다루었다. 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리스 도기와 토제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이다. 그리스의 제우스 신은 로마에 이르러 유피테르라 불린다. 로마인들이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며 그들의 언어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번개를 관장하는 최고의 신 제우스(로마 유피테르)를 포함하여 스핑크스상,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도자기에 새겨진 헤라클레스가 관람객을 맞는다. 방금 욕조에서 나오는 순간을 표현한 아프로디테(로마 베누스)는 비록 몸통만 남은 모습이지만, 이 전시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 전시물은 고대인들에게 신화가 왜 필요했는지를 설명해준다.

안내된 설명문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관람객
안내된 설명문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관람객 ⓒ소셜포커스

2부 ‘인간의 세상’은 그리스와 로마의 독자적인 발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초상 미술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서로를 도운 두 문화의 관계에 집중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로마에 점령된 그리스의 신화와 철학, 문학, 조형 예술은 로마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아마도 로마에게 그리스는 지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문화’가 아니었을까? 전시된 작품의 인물들은 세밀하게 표현된 내용이 많았다. 당시 로마에서는 그리스 작품을 수집해서 복제품을 만들어 개인이 소장했다고 한다. 이런 열풍은 그리스 최초 원본 작품이 대부분 없어진 지금에도 다시 (그리스 문화를) 구성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한다.

율리우스 카이자르 상
율리우스 카이자르 상 ⓒ소셜포커스

3부는 ‘그림자의 제국’이다. 이 테마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후관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을 전시했다. 하데스로 가는 문, 계단 3개를 오르면 아름다운 장식을 한 문 앞에 도착한다. 이 문이 열리면 지하 세계인 하데스로 들어간다.

그리스ㆍ로마인들은 죽음으로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형태로 이행하거나 전환된다고 생각했다. 산 자가 계속 기억해 준다면 망자는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무덤의 위치를 길에서 가깝게 하고, 오가는 사람의 시선을 끌도록 호화롭게 꾸몄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부리의 독수리상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부리의 독수리상ⓒ소셜포커스

전시의 개괄적 안내에서 설명하듯 인류 역사에 고대 그리스ㆍ로마가 남긴 유산은 어마어마하다.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언어와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 컴퓨터 게임, 영화, 브랜드 네이밍 등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특히 로마는 서양 세계 프레임의 토대를 만들고,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로마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인 제도나 가치는 지금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쓴 책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 2천년 역사를 지탱해 준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철학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도 로마에서 시작됐다.

목욕하고 나온 아프로디테
목욕하고 나온 아프로디테상 ⓒ소셜포커스

그리스ㆍ로마에 집중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다른 관람실은 모두 포기했다. 공간이 그리 크지 않은 전시실이다. 그렇지만 설명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지나간 두 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로마는 그리스라는 자양분을 토대로 예술은 물론 철학과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다. 그리스는 로마 덕분에 잊히지 않는 영원한 고대의 문화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전시의 부제가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는 무료 관람이다. 이런 관람이 무료라는 사실이 각별하다. 달리 문화강국 국민이 아니라는 자긍심이 솟구쳤다. 전시실 바로 옆 찻집에 들러 차 한 잔을 맛보았다. 서울에서 멀리 그리스ㆍ로마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 희열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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