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 붙은 '장애인 콜택시' 정책
다시 불 붙은 '장애인 콜택시' 정책
  • 윤현민 기자
  • 승인 2024.01.10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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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콜 이용기준 '중증 보행장애인' 해석 분분
지자체별 임의 해석해 법정기준 충족 꼼수까지
서울장애인콜택시. ⓒ서울시설공단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정부의 장애인콜택시(장콜) 정책 졸속 논란이 재점화됐다. 최근 사법부가 관계당국 유권해석과 다르게 판단하면서다. 재판부는 이용범위를 현재 보행상 중증장애보다 넓게 봤다. 걷는데 장애가 심하지 않아도 장콜을 탈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자 무분별한 장콜 운영 확대가 또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번에도 이용범위 및 법정 차량대수 산정 기준이 문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민사9부(성지용 백숙종 유동균 부장판사)는 척수장애인 A(49)씨가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을 상대로 낸 장애인 차별중지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뒤집고 “피고는 원고에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으로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20년 11월 서울시설공단에 장콜 이용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이용대상이 아니라며 퇴짜 놨다. 현행법의 장콜 등 특별교통수단 이용기준이 근거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시행규칙 제6조를 보면, 중증 보행장애인으로서 버스, 지하철 등의 이용이 어려운 사람이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시·군은 조례로 이용대상을 따로 정할 수 있다. 시의 경우 앞선 상위법 기준을 따르고 있다. 서울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조례는 특별교통수단 이용대상자를 장애 정도가 심한 보행상 장애인, 교통약자 동반 가족 및 보호자, 그 밖에 특별교통수단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 등으로 규정했다.

‘이 기준에 A씨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공단 판단이다. 이들은 A씨가 보행상 중증장애인이 아닌 점을 들었다. A씨 상지기능은 중증, 하지기능은 경증장애다. 그는 생후 10일께 낙상사고로 경추척수증을 앓게 됐다. 이 때 척수를 다쳐 팔,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관계당국 역시 시 및 공단과 같은 입장이다. 국토부는 시의 장콜 이용대상 유권해석 요청에 ‘보행상 심한 장애인으로 버스, 지하철 등 이용이 어려운 사람’이라고 회신했다.

그러자 A씨는 2022년 2월 시와 공단을 상대로 장콜 이용 허가와 손해배상금 500만원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때 1심은 시와 공단 측 손을 들어줬다. 위법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공단이 (A씨의) 장애인콜택시 이용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면서도 “이같은 제한이 장애인콜택시 배차 간격을 줄이기 위한 정당성도 있기 때문에 피고에게 손해배상 책임까지는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2심은 장콜 이용 기준을 폭넓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장콜 이용 거부를 차별로 보고 시와 공단에 민사책임을 물었다.

2심 재판부는 “어느 부위의 장애이든 그 정도가 심하고 버스나 지하철 이용이 어렵다면 특별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교통약자법 입법 취지에 맞는다”고 했다. 이어 “국토부 유권해석은 법원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며 “보건복지부 고시의 장애인 판정기준을 봐도 ‘심한 보행상 장애’와 ‘심하지 않은 보행상 장애’를 구분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법령상 근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장콜 확대운영 정책도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용범위부터 분명히 해야 정책 실효성이 담보돼서다. 하위법령 개정 당시 일부에서 제기된 지적이기도 하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해 1월  교통약자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시·군별 장콜 이용시간, 운행범위 등 기준을 통일한 게 골자다. 장콜을 24시간 이용할 수 있고, 인근 광역시·도 어디든 갈 수 있게 했다. 이 개정안은 같은 해 5월 30일 공포되고, 7월 19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 때 이용자격 기준은 단순히 ‘중증 보행장애인’으로만 규정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보행상 장애를 경증·중증으로 나눈 기준은 없다. 관련법인 교통약자법은 물론 장애인 판정기준에도 나와 있지 않다. 현행 법령, 고시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기준을 제시한 꼴이다. 별 수 없이 각 지자체들이 임의로 보행장애인의 경·중을 구분한다. 지자체별 해석에 따라 자칫 장콜 법정대수가 왜곡될 수 있는 구조다. 관련기준을 좁게 해석해 이용대상을 줄여 법정대수를 채우는 식이다.

서울시의 경우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 기준을 넘어섰다. 지난달 말 기준 총 667대로 법정기준(576대)을 충족했다. 중증 보행장애인 150명당 1명이 기준이며, 시의 장콜 이용대상은 8만6천446명이다. 서울시 장애인 39만1천859명의 22% 수준이다. 나머지 78%(30만5천413명)는 중증 보행장애인이 아니라고 봤다. 이들 30만여 명은 장콜 신청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애초 모호한 이용기준에 따른 정책 혼선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관계자는 “국토부는 장콜 법정대수를 산정할 때 보행상 중증장애인을 기준으로 해 왔고, 작년 7월 고친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도 중증 보행장애인을 기준으로 규정했다”며 “지자체별로 해석이 제각각이어서 법정대수 의미 자체가 퇴색한 마당에 무턱대고 24시간 이용, 광역이동 카드부터 꺼내들어 정책을 어지럽힌 꼴”이라고 꼬집었다.

한 장애인 시민활동가도 “지금으로선 지자체가 임의로 보행 장애의 경중을 구분해 장콜 이용대상자를 줄여 법정 기준율 100%를 넘기는 꼼수를 부려도 모를 상황이다. 정부는 무분별한 장콜 이용 확대에 앞서 이용기준부터 명확히 하고 현실적인 법정대수 산정과 장콜 운전원 증원 노력을 선행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관계당국은 단계적 개선을 약속하며 말을 아꼈다. 국토부 생활교통복지과 관계자는 “당장 이 달부터 특별교통수단 법정 운행대수 기준이 중증 보행장애인 150명당 1명에서 100명당 1명으로 상향된다”며 “앞으로 지자체 협업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의 특별교통수단 이용에 불편과 혼선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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