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한파 속 태백산 눈꽃 구경하기
북극 한파 속 태백산 눈꽃 구경하기
  • 염민호 편집장
  • 승인 2024.01.25 14: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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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사 주차장에서 장군봉 거쳐 천제단까지
지난 주말에 내린 눈과 상고대가 활짝핀 풍경이다. ⓒ소셜포커스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온통 하얗게 덮인 눈부신 세상이다. 숨 들이쉬면 차갑게 언 공기가 폐부까지 얼리는 느낌이랄까. 볼살을 아프게 스치는 세찬 바람 빼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황홀한 광경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다가 내려오는 사람 붙잡고 길을 물었다. 그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올라가면 아마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거요”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눈동자에 눈 가득… 하얗게 쌓인 장엄한 풍경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마음 구석구석에 가득 채웠다.

 

주목 군락지에서 만난 주목
주목 군락지 주목나무 너머로 함백산이 마주 보이는 풍경 ⓒ소셜포커스

북극 한파다. 이제는 이 말이 익숙하다. 이 땅은 북극에 붙어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어떻게 북극 한파가 여기까지 몰려온단 말일까?

지구 중위도 상공에는 편서풍이란 바람이 늘 강하게 분다. 이 편서풍은 극지방 차가운 기온을 가두는 역할을 맡는다.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 등 기상이변으로 편서풍이 자주 약해진다고 했다. 편서풍이 약해질 때 북극 한파가 한반도까지 쏟아져 내려오는 현상이라고 했다.

하필 날 잡아놓고 기다리는 동안 ‘북극 한파’ 예보가 나왔다. 둘째 날엔 더 춥다고 했다. 일기예보 화면에 “산 정상을 뒤덮은 패딩 무리” 자막도 지나간다. 주말에 눈 내리는 산에 올라간 인파가 많았단 소식이다. “아! 오늘 갔더라면…”하는 생각이 스친다. 이미 날 받아놓은 휴가 일정이다. 엄청나게 춥다고 하니 그나마 덜 추운 날로 하루 앞당기기로 했다.

막내동서 시골집이 강원도 영월에 있다. 평소 이 집은 비어있다. 지난 몇 년 해마다 한두 번씩 묵었던 경험이 있어 이곳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바지런한 동서는 이 집을 꾸준히 관리한다. 추운 계절에도 집이 얼지 않도록 해 놓았다.

늘 비어있지만, 보일러 온도를 높이자 바로 온기가 채워진다. 인적 드문 동네라서 짙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하릴없이 TV를 보다가 뜨끈한 방바닥에 눕자 바로 잠에 빠져든다.

이튿날 이른 새벽, 밖은 아직도 어둡다. 잠시 후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약 30분가량 세찬 바람 속에 제법 많은 눈이 쌓였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어젯밤 일기예보처럼 밤사이 북극 한파가 뒤덮은 날씨다.

이번 겨울은 주말에 유난히 많은 눈비가 내렸다. 마을 앞 공터에 제설제를 담아놓은 초대형 부대를 가득 쌓아놓았다. 이번 겨울에 얼마나 많은 제설제를 뿌렸을까? 포장도로 본연의 색이 사라지고 염화칼슘 가루로 보이는 희뿌연 색상이다. 눈 녹아 질펀해진 물을 뒤집어쓴 차는 금세 두터운 먼지 때로 얼룩이 진다.

 

장군봉 오르는 길은 눈꽃 터널이 장관을 보인다. ⓒ소셜포커스

지난 주말에 많은 눈이 내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해발고도가 높은 산마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 하얗게 얼어붙은 상고대로 장관을 이루었다. 두 시간 가까이 차를 몰아 태백산 등산코스 중 하나인 ‘유일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곳은 고갯마루에 가까운 곳이라 추운 바람이 정말 거칠게 분다. 주차장에 쌓인 눈도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 스패츠와 아이젠을 구입했다. 이 제품은 며칠 전 시내 대형 마트를 다 뒤졌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그냥 포기하고 비싸더라도 현지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앞서 산에 올랐던 수많은 경험자가 남긴 후기가 인터넷 공간에 넘친다. 겨울 등산용품을 현지에서 구했단 글도 여럿 읽었다.

패딩 점퍼에 달린 모자로는 안 될 듯싶었다. 털실로 짠 ‘빵모자’도 샀다. 그런데 산에서 상상을 벗어난 추위를 겪고서는 구매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추웠는지…. 등산을 마치고 다시 차에 돌아왔을 때, 종아리를 감싼 스패츠 안쪽 면이 하얗게 얼었음을 보았다.

태백산 주목 나무 설경  ⓒ소셜포커스

한겨울에 태백산을 오를 때 유일사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손쉽다고 했다. 이곳 해발고도는 약 900미터, 태백산 정상은 해발 1천567미터다. 유일사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비교적 완만한 코스를 오르게 된다. 해발고도 차이는 약 700미터에 불과하다.

출발하는 장소에서 태백산에서 제일 높다는 장군봉을 거쳐 천제단이 있는 봉우리까지 4km다. 왕복 산행 8km는 짧은 구간이다. 다만 눈이 얼어붙은 등산로라서 아이젠을 착용해야 안전하다. 왕복 4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눈꽃 구경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을 더 넉넉하게 잡는 게 좋다.

등산로 초입을 벗어나자 나뭇가지에 매달린 상고대 눈꽃이 올라갈수록 화려하게 빛난다. 유일사는 등산로 중간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눈이 가득 쌓여 얼어붙은 길은 그나마 넓어서 걷기 편하다. 아이젠은 지금까지 살면서 좀처럼 착용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눈길 걸을 때 이처럼 유용한 도구가 따로 있을까. 쉼없이 걷고 또 걸으면서 온통 눈꽃 세상으로 빠져든다.

제법 높이 올라가 가파른 구간에 접어들었을 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를 데리고 산에 오르는 여성을 보게 됐다. 더 어린 여자아이가 힘들어했다.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올라가는 중에 여자아이가 주저앉아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다. 잠시 쉴 겸 숨을 돌리며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정상에서도, 내려오는 길에서도 이 가족을 다시 보지 못했다. 8부 능선쯤으로 여겨지는 구간이었다.

내려오는 어떤 남자에게 어느 정도 더 가야 하는지 길을 물었다. 정상에서 15분가량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엉뚱한 말을 덧붙인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구경을 하게 될 거란다. 가보면 알게 될 거라고.

장군봉에서 천제단이 자리한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 길 풍경 ⓒ소셜포커스

사전 조사 과정에서 익혀둔 주목 군락지가 나타나고 하늘이 훤하게 트였다. 건너편 함백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산자락에 늘어선 풍력발전기도 손끝에 잡혔다. 카메라를 패딩 입은 품속에 넣고 갔다. 틈틈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지만 생각하며 구도를 잡지 못한다. 잠시나마 장갑을 벗으면 손가락 끝이 아릴 정도로 차갑기 때문이다.

태양은 이미 중천을 지나 서쪽 하늘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시간이다. 태백산에서 제일 높은 장군봉 표지석을 뒤로하고 천제단을 향한다. 맑고 푸른 하늘에 수많은 구름 덩어리가 쉴 새 없이 빠르게 밀려간다. 푹신한 눈꽃으로 덮인 세상을 밝은 햇살이 비추다가 구름 그늘이 덮었다가 하면서 반짝거린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산맥을 따라 물결치는 듯 줄지어 섰다. 발아래 펼쳐지는 하얀 세상은 장쾌한 풍경이다. 높은 산꼭대기라서 천상 세계에 가깝기 때문일까. 맑고 밝은 천국의 빛깔이 서린 듯 황홀하다.

하얀 눈꽃을 쓴 백두대간 영봉이 늘어섰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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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 2024-01-25 15:09:57
설경이 너무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