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펄펄 끓는 아들안고 전전긍긍... “수어통역 없이는 진료도 어려워요”
열 펄펄 끓는 아들안고 전전긍긍... “수어통역 없이는 진료도 어려워요”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4.02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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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ㆍ선별진료소 등 긴급상황시 청각장애인 수어통역 시스템 전무
아파도 참을 수밖에... 일반 진료 보러가도 수어통역사 없다며 돌려보내
지역 수어통역센터도 방문 제한... “수어통역사 구하기 어려워”
국가재난브리핑, 129영상수화상담 등 개선사항 있지만 통역지원 많지않아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과 장애 단체들이 4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코로나19 및 병원 진료 상황에서 청각장애인이 받는 차별에 대한 진정을 호소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과 장애 단체들이 4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코로나19 및 병원 진료 상황에서 청각장애인이 받는 차별에 대한 진정을 호소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과 장애 단체들이 4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청각장애인이 받는 차별에 대한 진정을 호소했다. 코로나19 또는 병원 진료 상황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진료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A씨에게는 5살과 3살짜리 두 아들이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달 중순 두 아들이 갑자기 열이 펄펄 끓고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A씨는 두 아들을 안고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보건소는 수어용 영상전화기가 없고 질병관리본부(1339)로 전화를 해도 영상통화가 불가해서 도움받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자마자 수어통역센터에 전화하려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웠다. 최근 수어통역단체에서 “기관 방문 제한”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문자에는 코로나19 심각 단계 격상에 따라 방문을 제한하고 응급실, 경찰서, 교통사고 등 긴급상황 시에만 출장통역에 나가겠다고 적혀있었다.

결국 두 아들을 차에 태워 병원에 갔지만 의사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웠다. 일반인의 경우 5분이면 끝나는 진료를 30여분간 받아야했다. 두려움에 떨던 A씨는 단순 감기라는 의사의 말에 그제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A씨는 “진찰을 받던 30여 분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도 두 아들이 감기가 다 낫지 않아 병원에 가지만 갈 때마다 수어통역이 없어 너무 답답해요”라며 악몽같았던 시간을 기억했다.

현재 지역 수어통역센터도 통역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을 닫고 있어 수어통역사를 대동해 병원을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건복지상담센터(129)의 경우 일부 수어통역을 지원하지만 이마저도 야간에는 불가하다.

손말이음센터도 중간다리 역할로 수어통역만 도와주는 곳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국가 재난 사태 시 청각장애인이 병원에서 통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지적이 따랐다. 손말이음센터에서 전화를 걸어도 스팸 전화로 착각해 받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발언자들이 청각장애인이 받는 차별 사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차례로 김주현대표, 김철환활동가, 3번째 사례의 실제 주인공 최순옥씨.
청각장애인이 받는 차별 사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차례로 김주현 대표, 김철환 활동가, 3번째 사례의 실제 주인공 최순옥씨. ⓒ소셜포커스 

이같은 어려움은 코로나사태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반 진료에서도 청각장애인은 차별받는다.

청각중증장애인 B씨는 3월 19일 팔을 다쳐 병원에 갔지만 진료를 거부당했다. 수어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영상통화를 해도 된다고 설명했지만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이유로 병원측에서 진료를 거부했다.

중복장애인의 경우는 더 심하다. 시각ㆍ청각 중복장애를 앓고 있는 70대 여성 최순옥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일반 진료를 받을 때 글씨를 적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면 사회적 거리두기라며 접근을 꺼려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저는 눈도 안 보이기 때문에 촉수화(수화를 손으로 만져서 하는 의사소통)를 이용해야하는데 촉수화를 할 수 있는 통역사들도 많지 않고, 감염 위험 때문에 통역사들도 병원 동행을 꺼려하니까 아파도 그냥 참을 때가 많아요”라며 “병원에 가도 입모양을 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알 수도 없고 메모를 써서 도와달라해도 싫어하고 공공기관은 다 문을 닫아서 이용할 곳도 없고 말 그대로 완전히 고립이에요”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2015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메르스와 강원도 대형산불사태와 같은 국가재난사태마다 장애단체들은 보건소와 선별진료소에 수어통역을 제공하라고 문제제기를 했지만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다.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대표는 “수어통역센터가 수어통역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센터나 통역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수어통역사도 코로나19로 안전하지 않으니 통역을 나가기 어려운 것이죠. 병원과 보건소, 선별진료소에 수어통역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정부의 무책임함때문에 발생한 문제인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장애단체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 ▲단기적으로 보건소ㆍ선별진료소에 영상통화 시스템 구축 ▲수어통역 어려울 시 영상상담으로 대체하도록 영상기기설치 기준 제정 ▲수어통역사 동행시 감염 보호 물품 제공 및 안전보장 기준 마련 ▲재난과 감염병에 대비한 전문 수어통역사 양성을 요구했다.

이들은 청각장애인들의 차별 사례가 담긴 진정서를 제출하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응당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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