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상도례' 적용 여전히 타당한가?
'친족상도례' 적용 여전히 타당한가?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1.04.15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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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에게 수억 뜯어내도… "처벌 못 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 '1인가구 시대에 맞지 않는다' 여론 지배적
발달장애인 경제적 착취 비율 74.6%… 동거친족 범죄는 공소 불가능
"장애인 대상 경제범죄에 규정 적용은 위헌" 헌법소원 중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형법 제328조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인해 가족이나 동거친족 금융피해를 입은 장애인의 권리구제가 불가능하다며, 이 규정의 위헌성과 대안을 논하는 토론회를 14일 개최했다. ⓒ소셜포커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형법 제328조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인해 가족이나 동거친족 금융피해를 입은 장애인의 권리구제가 불가능하다며, 이 규정의 위헌성과 대안을 논하는 토론회를 14일 개최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한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이하 피해자)이 201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삼촌과 숙모(이하 가해자)와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그로부터 4년 뒤, 피해자에게 남은 것은 1억 원의 채무 뿐.

상속 재산 2억여 원을 비롯해 급여와 퇴직금 등을 가해자들이 수십차례에 걸쳐 모두 빼앗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매입하고, 그 소유권을 자녀에게 이전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가해자들을 준사기, 횡령 혐의로 고소했으나 부산지방검찰청은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을 적용해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다.

친족상도례 규정은 형법 제328조에 명시되어 있다. 강도죄, 손괴죄 이외의 재산범죄가 발생한 경우 범죄유형, 죄질, 피해자의 특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한다.

이 사건의 피해자를 도와 가해자를 고소한 공공후견인과 대리인단은 이 규정이 피해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고 보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상태이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힘을 싣기 위해 14일 오후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이종성, 최혜영, 김성주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 날 토론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이종성, 최혜영, 김성주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소셜포커스

■ 장애인학대 중 '경제적 착취' 비율 2번째… 장복법 개정안 발의

제328조 제1항은 직계혈족(부모자식간),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하고 있다. 제2항은 제1항에서 규정하는 친족 외의 친족이 제323조의 죄를 범했을 때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으로 인해 친족으로부터 금전 피해를 입은 장애인이 권리구제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이 흔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성주 의원.
ⓒ소셜포커스

이에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은 경제적 착취를 입은 장애인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친족상도례 규정의 폐지 혹은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2019년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학대 유형 중 2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유형은 '경제적 착취'다. 그중에서도 발달장애인 피해자 비율은 74.6%에 달한다.

김성주 의원은 학대 행위자가 친족 관계의 장애인을 상대로 사기·공갈, 횡령·배임 및 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지른 경우,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3월9일 대표발의 했다.

 

■ 친족간 금전범죄, 가정 자치에 맡겨선 안 돼…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해야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시대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2019년 기준 평균 가구원수는 2.4명이다. 6인 이상 가구는 1%에 불과하다. 위계질서에 따라 가정 내 분쟁을 자치적으로 해결하는 가족 형태가 소멸해가는 시대인 만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것이 가족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 됐다는 것이다.

친족상도례 규정은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되기도 이전인 1912년 조선형사령에 의해 쓰인 일본 의용형법 제244조에도 존재했다. 

우리나라 형법은 1953년 제정됐다. 친족상도례를 규정하는 형법 제328조는 제정 이후 제3차와 7차, 단 2차례 개정을 거치며 명맥을 유지했다. 다른 법률의 변동에 따라 규정이 적용되는 인적 범위와 범죄 항목이 수정됐을 뿐이다.

2005년에는 호주제도 폐지에 따라 규정을 적용하는 범위에서 '호주'라는 단어가 삭제됐고, 2016년에는 신설된 특수공갈죄가 적용 범죄 항목으로 추가됐다.

법무법인 태평양 황용현 변호사. ⓒ소셜포커스

법무법인 태평양 황용현 변호사는 "친족의 범행이 처벌할 만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간절히 원하는 경우에도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은 가정 내 불의를 외면하는 것"이라며 친족상도례 규정의 위헌성에 대해 설명했다.

또 친족상도례 규정의 인적적용범위가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및 배우자'로 지나치게 넓은 점도 문제다. 별거 중인 배우자나 절연한 가족 등 사실상 가족이라고 보기 힘든 사람도 해당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규정을 적용받는 범죄의 죄질도 불균형하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거침입죄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처벌이 가능하나, 특수절도죄와 야간주거침입절도죄는 처벌되지 않는다.

10년 동안 인연을 끊었던 자식이 부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경우는 처벌할 수 있지만, 그 자식이 부모의 집에 밤에 침입해 금고를 털어가는 경우는 처벌할 수 없다. 

황용현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만 피해자는 재판절차진술권, 재산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이 침해당했다. 국가는 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보호 책임을 외면하고 가해자를 광범위하게 면책해주고 있다"며 "친족간 금전관련 범죄를 친고죄 내지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친고죄란 검사가 기소를 하기 위해 피해자나 법정대리인 등의 고소를 필요로 하고,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 고소가 없어도 기소 가능하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거나 재판을 종료해야 한다.


■ 장애인의 고소능력, 수사기관이 인정 않는 것도 문제… 친족상도례 적용 안 되는 건도 '무기소' 

수사기관의 장애인 차별도 가해자 처벌에 걸림돌이 된다. 형법 제328조 2항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가 있으면 가해자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의 장애인 차별로 인해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대표적인 장애인 노동·금전착취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은 피해자의 형이다. 형제는 직계혈족이 아니기 때문에 동거하지 않는 상태라면 기소할 수 있었다.

이정민 변호사.
ⓒ소셜포커스

금전착취는 친고죄에 해당한다. 실제로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밝혔으나 담당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심리평가 결과 "의사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결국 무기소처리 됐고, 가해자인 형은 처벌받지 않았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이정민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고소하기까지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어렵게 고소해도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무시되거나 고소능력이 부인되는 상황에 당면한다"며 "충분한 법률지식이나 신뢰관계에 있는 가족이나 종사자 외에 다른 지지체계가 없는 장애인들은 사건을 민사로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과연 민사법원은 고소능력이 부인되는 피해자들의 소송 능력을 인정해줄 것인가"도 의문이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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