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예비살인에 정부·정치권 뒷짐
발달장애 예비살인에 정부·정치권 뒷짐
  • 윤현민 기자
  • 승인 2022.05.24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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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발달장애 모자 극단적 선택 5건
“특정단체 과격시위·탈시설 요구에 들러리”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최근 탈시설 논란과 함께 발달장애 가정의 참극이 잇따른다. 40대 여성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자녀와 함께 투신해 숨졌다. 또, 중증장애인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사망케 한 일도 발생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극단적 선택은 올 들어서만 5 번째다. 탈시설이 이들의 예비살인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다시 새어나온다.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선택을 강요해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얘기다. 반면,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탈시설 정책 추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정 단체의 과격시위와 탈시설 요구에 들러리 섰다는 지적까지 있다.

24일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40분께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6살 배기 발달장애 아들을 둔 한 40대 여성이 자녀와 함께 추락한 채 발견됐다. 경비원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이들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모두 숨졌다.

같은 날 중증장애인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려 한 일도 있었다. 경찰은 30대 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한 혐의로 한 60대 여성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이 여성은 23일 오후 4시 30분께 인천 연수구 아파트에서 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사망케 한 뒤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딸은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으로 최근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달에도 지적장애 자녀가 원룸에서 숨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충남경찰청은 6살 짜리 지적장애 아들을 굶겨 죽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A씨(32)를 구속했다. 국립과학수사원 부검결과, 사망한 A씨 자녀는 음식을 제 때 먹지 못해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A씨는 1년 전 남편과 별거해 충남 아산시 원룸에서 홀로 아들을 키워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혼자 지적장애 아이를 키우느라 경제·심리적으로 힘들어 밖으로 나도는 일이 많았다”며 “지난 달 아들만 남기고 집을 떠난 뒤 20여일 만에 지인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일도 있었다. 지난 2월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40대 미혼모 B씨 집에서 그의 8살 짜리 지적장애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7시께 ‘B씨와 연락이 안 된다’는 B씨 오빠 신고를 받고 집으로 출동해 B씨를 붙잡았다. B씨는 경찰조사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2014년 출산 후 홀로 아이를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같은 날 경기 시흥시에서도 발달장애 자녀 시신이 나왔다. 시흥경찰서는 2월 3일 살인 혐의로 C(54·여) 씨를 긴급 체포했다. 전날 오전 3시께 신천동 자택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20대 딸을 질식해 사망케 한 혐의다. 자신도 뒤따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이튿날 경찰에 자수했다. 집 안엔 ‘다음 생에 좋은 부모를 만나라’는 내용의 C씨 유서가 있었다. 그는 말기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지난해 남편과 이혼 후 딸과 단 둘이 살았다. 기초수급비와 딸의 장애인수당, 간헐적인 알바비가 수입의 전부였다.

모두 극심한 생활고와 양육부담에 몰린 벼랑 끝 선택이다. 장애 정도와 생활형편을 무시한 획일된 정책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정부는 끝내 당사자 의견은 외면하고 탈시설을 고집한다. 2022~2024년 시범사업 후 2040년까지 소규모 시설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43억800만원을 들여 서울, 부산, 대구 등 10곳에서 시설 이용 장애인 총 200명을 자립시킬 예정이다. 매칭사업으로 국비와 지방비 절반씩 부담한다.

정치권도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관련법 처리에 속도를 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위원장(민주·서울 영등포을)은 지난 달 26일 제1차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를 열어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등에 관한 법률안(최혜영 의원 대표발의) 등 3건을 긴급상정했다. 같은 달 7일 관련 공청회가 있은 지 20여일 만이다. 이날 참가자들  사이에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시설이라는 공간 자체가 갖는 본질적 한계가 명확하다. 시설에 머무는 순간부터 사생활, 권리, 평범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살아가고 싶은 꿈도 억압된다”고 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가정과 지역사회서 보호되는 장애인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설에 있는 장애인을 무조건 꺼내자'는 식의 탈시설 정책엔 결코 찬동할 수 없다”라고 했다.

정부의 편향적 시각과 미온적인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찬반 양쪽으로 갈라 놓고 복지부는 그 사이에서 뒷짐만 지고 있는 것 아니냐”며 “장애인 탈시설 요구가 20년간 제기됐는데 그동안 뭘 했는 지 모르겠다. 앞으로 20년간 하겠다며 이제서야 시범예산 24억원을 편성하는 것부터 잘 납득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관계자도 “탈시설 정책 당사자인 시설거주 장애인 의견에 귀를 막은 정부와 관련 국회의원들이 공익신고를 모른 척 해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는 것을 막았다”며 “장애 특성과 다양성을 반영하지 않고 특정 이익집단에 의해 주도된 탈시설정책 때문에 중증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은 사지로 내몰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심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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