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 정원 남아 돌아도 대기자 ‘수두록’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졸속추진 의혹이 확산 양상이다. 이번엔 시설 신규입소를 방해한 정황이 일부 포착됐다. 정부가 시설 평가지표에 이용인원 축소 여부를 새로 포함시켰다. 단계적 추진 약속과 달리 되레 탈시설 속도전에 앞장섰다는 지적이다. 결국 시설 이용자 정원이 남아돌아도 대기자가 속출하는 구조다.
18일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은 모두 580개가 각지에 분포돼 있고, 2만2천273명이 이용 중이다. 이용 인원은 경기도가 4천656명(134곳)으로 가장 많다. 이어 경북 2천2229명(62곳), 서울 2천88명(45곳), 충남 1천572명(34곳), 경남 1천506명(33곳) 등의 순이다.
반면, 이들 시설 입소를 위해 중증장애인 1만여 명이 줄지어 서 있다. 애초 이용자 정원이 다 차서가 아니라 각 시설이 신규입소를 꺼리면서다. 실제,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580곳의 이용자 정원은 총 2만5천291명이다. 현재 이용자 2만2천273명 외에 3천18명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은 신규입소는 커녕 오히려 기존 정원마저 줄이고 있다. 이용자 정원은 2020년 2만6천292명에서 1천1명(3.8%)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정원 501명을 줄여 가장 규모가 컸다. 경기(213명), 전북(79명), 대전(50명), 경북(46명) 등이 뒤를 이었다.
장애인 주간보호센터나 주간활동 서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체 1천184곳의 이용자 수는 발달장애인 전체 중 8%(2만여명) 정도다. 십 수년째 기약없이 시설 입소만 기다리는 대기자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수도권의 한 주간보호센터장은 “현재 대기자가 65명인데, 이들 중 가장 오래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10년을 훌쩍 넘었다”며 “주변에 다른 보호시설도 퇴소자가 없어 2013년 이후 더 이상 이용자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이 신규입소에 소극적인 건 정부 탈시설 정책과 무관치 않다. 기존 평가지표에 없던 시설 소규모화 항목을 새로 끼워넣으면서다. 시설을 평가할 때 정원을 줄인 곳에 더 높은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시설 평가지표를 보면, 프로그램 및 서비스 부문에 이용자 자립지원과 시설 소규모화 실적이 추가됐다. 정부가 탈시설 로드맵을 처음 내놓은 2019년부터 적용해 왔다.
애초 정부가 점진적 추진을 약속한 것과는 딴 판이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장애인 주거결정권 보장 및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권리를 우선 고려해 탈시설 장애인이 독립생활 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라며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매년 740여명의 자립을 지원해 2041년에는 지역사회 전환을 목표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정부가 약속을 어기고 앞장서 탈시설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20대 발달장애 자녀를 둔 A씨는 “현재 시설에선 보건복지부 평가지표에 따라 최증증장애인부터 가려서 내보내기 바쁘다”며 “당장 중증장애인의 시설 밖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나서 사실상 시설 정원 축소를 강요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보건당국은 뒤늦게 각계 의견수렴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는 “정부가 장애인 시설 신규입소를 금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장애인의 사회 자립지원 추진과정에서 제기되는 우려들은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단계적으로 해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