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철도역 장애인 서비스
갈 길 먼 철도역 장애인 서비스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3.03.13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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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장애인 승하차는 최후 순위
장애인 탑승지원 서비스 지침 부재
휠체어 탑승용 리프트는 일반 승객이 모두 승차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다. 여자 승무원 2명과 남자 역무원이 나와 있지만, 그냥 서 있을 뿐 승객을 옆 칸 출입문으로 유도할 생각은 안 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기차를 타는 과정은 좀 복잡하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 고객지원실에 리프트 서비스 신청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출발 5분 전쯤 역무원과 사회복무요원이 플랫폼으로 나와서 휠체어를 탄 고객이 열차 안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리프트 설치를 준비한다.

그리고,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하면 리프트가 기둥 등 주변의 시설물에 장애받지 않고 설치될 수 있도록 역무원은 기관사와 무전을 통해 정차 위치를 조정한다. 정차 위치를 이렇게 조정하다 보면 플랫폼에 표시된 각 호차별 승차 위치가 달라지게 된다. 이와 함께 호차별 지정 위치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던 다른 승객들도 탑승구를 따라 짐을 들고 우왕좌왕 함께 움직이다 보면 대기 줄이 흐트러져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심할 경우 넘어지는 사람도 생기면서 안전사고 우려까지 이어진다.

기차역별로 플랫폼에서 정차 지점을 지정할 때 휠체어 리프트가 주변 시설물에 장애받지 않고 안전하게 설치할 수 있는 위치를 먼저 정하고 그 지점을 기준으로 기관차가 멈추는 지점을 설정해 두었더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모든 열차의 휠체어 탑승 칸은 일정 호차에 고정되어 있기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려울 것도 없다.

언젠가 열차 안에서 승무원에게 이런 내용의 건의를 했더니 기관차 길이가 열차 등급별로 차이가 있어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열차 등급이라 해 봐야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불과 3~4가지뿐이니 열차종류별로 정차 위치를 달리 정해놓으면 될 게 아닌가?

혹자는 1%도 안 되는 휠체어 탑승을 위해 정차 지점을 다시 지정해 두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1%도 안 되는 승객을 기준으로 탑승위치를 다시 정해도 99%에겐 아무런 불편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위치 지정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반승객에 까지 불편을 주고 열차운행을 지연시킨다. 제도개선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리프트 설치 과정에서 문제점은 또 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필자가 기차를 타면서 보통 20번 중 19번은 겪는 일이다.

휠체어 탑승을 돕는 리프트는 항상 모든 승객이 타고 나서 맨 마지막에 설치하다 보니 그만큼 열차출발이 지연되기 일쑤다. 이럴 때 승무원이나 역무원이 대기하는 손님들에게 옆 칸으로 승차하도록 유도하여 탑승자가 분산되면 승객들의 탑승시간도 단축되고 출발시간도 지연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수원역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됐다. 지하철을 타도 되지만 급한 일로 가느라고 30여 분이나 단축할 수 있어서 기차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열차가 도착하면서 휠체어 탑승칸이 있는 객차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또 열지어 대기하던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다.

그날도 리프트 승차를 돕기 위해 휠체어 주변으로 역무원과 2명의 승무원, 사회공익요원 이렇게 4명이 모였다. 그리고 승객이 모두 탑승하고 나서야 사회복무요원이 리프트를 연결했다. 그때까지 3명의 직원들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탑승을 대기하는 승객들에게 혼잡을 피해 옆 칸으로 승차하도록 유도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관계 직원에게 “손님들이 옆칸으로 승차하도록 유도해주면 휠체어가 빨리 탈 수 있을 텐데 좀 그렇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건의라도 하면 귀찮은 듯이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안 가요.”라며 일축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끔은 역무원이 미리 나와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대기하는 승객에게 옆 칸으로 승차하도록 유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승객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이동을 거부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다만 이처럼 서비스를 제대로 하는 승무원이나 역무원이 너무 드물다는 게 문제다.

비행기를 이용하다 보면 휠체어 승객은 항상 가장 먼저 타게 되는데 코레일도 이러한 서비스를 도입할 수는 없는가? 그렇게 하면 탑승대기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생각되는 비장애인 손님은 저절로 옆칸 출입문으로 분산될 것이다.

휠체어 장애인은 열차에서 내릴 때도 문제다.

휠체어 하차가 예정된 역을 앞두고 하차를 준비하는 일반 승객들에게 다른 출구로 내리도록 유도하면 휠체어로 인해 하차가 지연되는 일이 없어지겠지만 필자는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다.

휠체어 장애인이 열차에 탑승하면 승무원이 와서 “나중에 내릴 때 승객들 모두 내리고 맨 마지막에 내려드려도 되겠습니까?”라며 양해를 구하듯 묻는다. 이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급한 일이 없다면 맨 나중에 내린다고 해서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도 예약된 다른 열차로 환승하거나 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맨 나중에 내리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열차 내에서 대기시간도 길어지지만 열차를 내려서 대합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면 이미 먼저 내렸던 비장애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할 수 없이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수십 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환승시간을 놓치는 등 난감한 처지를 당한다.

“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제가 맨 먼저 내리면 안 될까요?” 이렇게 요청하면 “원래 휠체어는 맨 나중에 내리게 되어 있는데...” 하고 난감해 하다가 마지못해 “그럼 그렇게 해보겠습니다.”라며 도와주기도 한다. 그렇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맨 나중이다.

종점인 용산역에 도착했다. 승무원은 휠체어를 탄 필자를 먼저 내리도록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가? 열차가 종착역에 멈추고 내리기 위해 문을 열어보니 출입구 바로 앞에 큰 기둥이 버티고 있었다. 리프트를 연결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할 수 없이 비장애인 손님들을 먼저 내리게 했다. 비장애인 승객들이 다 내릴 때까지 역무원이나 승무원이 기관사에게 연락하는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무심코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열차를 움직여야 할 기관사는 종점이라서 이미 내려서 어디론가 떠나버린 후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플랫폼 기둥과 열차 출입문 사이로 리프트를 끼워넣다시피 간신히 연결하여 매우 위태롭고 어렵게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열차가 도착하고 내리는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내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 역시 기관차의 정차 지점을 휠체어 탑승 칸을 기준으로 미리 정해 놓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세세한 원칙과 사례별 기준을 정비한 「장애인 탑승지원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어서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장애인들에게도 공지하여 이해를 돕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2월 25일 용산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필자가 열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열어보니 출입문 앞에는 기둥이 가로막고 있다. 리프트를 연결하지도 못하고 승무원과 리프트를 이동시킬 사회복무요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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