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디지털정보 접근성 개선 ‘헛 구호’
장애인 디지털정보 접근성 개선 ‘헛 구호’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3.03.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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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설치기준 기존 장비는 적용 제외
정부 지원 없이 민간업자 각자에 책임 전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13일부터 시작한 인공지능 기반 키오스크 서비스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13일부터 시작한 ‘이용 장벽 없는 스마트 전시관‘ 모습.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가 설명과 함께 제공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셜포커스 김은희 기자] = 장애인의 디지털 정보 접근성 개선 정책이 무위로 끝날 판이다. 실제 이용불편 해소와 한참 동떨어진 법령 정비가 이뤄지면서다. 반면, 관계부처는 구체적 지원방안 없이 민간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자 일각에선 정부가 되레 차별을 고착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 28일 키오스크 등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시행령에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이 동등하게 무인단말기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키오스크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등이 갖춰야 할 의무 사항이 담겼다. 앞서 2021년 7월 국회에서 처리된 이후 1년 여만에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후속 조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내놓은 ‘장애인 무인정보단말기 접근 이용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전국 15개 시·도별로 구성한 모니터링단 154명이 지역별 주요 중심지에 설치된 1천2개 기기 현장 점검을 벌인 결과, 휠체어 이용자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된 경우는 123개(12.3%)였다. 기기 아래에 발을 둘 만한 여유 공간이 없는 경우도 52.8%였고, 화면이 아래로 내려오거나 움직일 수 있는 경우는 31개로 3.1%에 불과했다. 또 기기 앞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유도블럭이 없는 경우도 917건으로 91.5%에 달했다.

이번 시행령을 통해 앞으로 키오스크는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도록 발판은 물론 무릎이 들어갈 물리적인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구분이 가능한 재질의 바닥재를 설치해야 하고, 점자블록이나 음성안내장치도 갖춰야 한다. 오류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수어·문자·음성 등 의사소통 기능도 기기에 넣도록 했다.

이를 위해 모든 기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 등에 따라 접근성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휠체어 이용자가 사용하기 좋도록 지면 기준 화면 높이를 규정하거나 화면상 누를 수 있는 선택지 간의 간격 등 세부 기준을 다루고 있다.

또, 이번에 키오스크 관련해 첫 정부 지침이 나왔지만, 당분간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적용 대상이 신규 설치 기기로 제한되며 이미 설치된 기기들이 2026년까지 시한이 미뤄진 까닭이다. 국회에서 법이 처리된 시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5년 가까이 유예된 셈이다.

여기에 신규 기기 적용 대상도 2025년까지 세 차례로 나눠 적용하는데, “준비기간과 현장 적용가능성 등”을 이유로 든다. 일단 내년 1월28일까지 공공·교육·의료·금융기관과 이동·교통시설 등에 우선 적용하는 데 이어 내년 7월28일부터 문화·예술사업자, 복지시설, 상시 100인 이상 사업주 등 민간 범위로 넓히게 된다.

마지막으로 2025년 1월28일엔 관광사업자와 상시 100인 미만 사업주 등까지 적용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사업장 면적이 50㎡(15평 가량) 미만 시설의 경우 예외로 한다. 상시 지원 인력이 있거나 모바일 앱 등을 통해 키오스크를 원격제어할 수 있는 보조수단을 두면 “정당한 편의”로 본다는 것이다. 이어잭·탈부착 키패드 등을 추가해 키오스크를 조정하는 보조수단은 현재 상용화 단계로 시장이 점차 발전하고 있다고 봤다.

사실상 복지부는 유예 기간을 통해 신설된 키오스크 규제 부담을 사업장에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 시행령과 병행할 별도 지원책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관계자는 “지원이 없는 것까지 고려해 소규모 사업장 예외 등 대안적인 수단을 적용한 것”이라며 “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키오스크 보조기기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있는 만큼 이번 시행령은 시장을 선도적으로 이끌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패스트푸드점 등 5개 기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이용 차별 손해배상 청구 소송 중인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선 지난해 12월 입법예고된 해당 법령을 두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당시에도 ”사실상 면죄부”라는 비판이 이어졌으나 유예기간 등과 같은 핵심 내용은 달라진 바가 없다.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갈수록 키오스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나 제도적으로 차별이 허용된 유예기간이 길어지며, 되려 장애인들이 차별받는 기간도 함께 늘어난 셈”이라며 ”이는 차별을 없애는 장차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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