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혁신 기로에 선 정립회관
변화·혁신 기로에 선 정립회관
  • 윤현민 기자
  • 승인 2023.08.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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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횡령, 점거농성 등 파행 잇따라
운영법인 채무 수십억원 산하시설에 전가
28일 서울 광진구 정립회관 정문에 현 법인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는
28일 서울 광진구 정립회관 정문에 현 시설 운영 법인(한국소아마비협회)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국내 최초 장애인 이용시설이 잇따른 파행으로 만신창이다. 최근엔 운영법인 산하시설이 남긴 빚 문제로 내부 불신과 갈등이 팽배하다. 시설 보조금 등이 법인 채무 탕감에 쓰이면서 현 임원진 퇴진 요구가 거세다. 법인설립 취지와 달리 경제 효율만 앞세운 운영방식이란 비판까지 제기된다. 암병원, 요양원 등으로 바꿔 수익사업을 염두에 뒀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반면, 법인은 그간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이제 개혁을 꾀한다는 입장이다.

30일 한국소아마비협회(한소협)와 정립회관 등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 한소협은 1966년 처음 설립됐다. 장애인 재활을 통한 자립적 삶과 지역사회 융화를 돕는 취지다. 법인 산하엔 정립회관(장애인복지관), 정립전자(장애인근로작업장), 정립장애인보호작업장,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주간보호센터), 워커힐 실버타운(노인요양시설) 등 5곳을 두고 운영 중이다. 모두 장애인복지시설로는 국내 최초다.

하지만, 이 중 정립전자가 최근 경영악화로 문을 닫게 됐다. 사업투자 실패로 수십억원대 빚만 남기고 폐업절차를 밟고 있다. 2020년 5월 당시 중국으로부터 마스크 제조기계 3대를 구입했다. 대당 6억4천만원으로 총 19억2천만원어치를 사들였다. 그러나, 정작 기계는 작동 불량으로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그러자, 법인 이사회는 사태 해결을 위해 A 은행으로부터 30억원을 빌리고 B 제약사와도 10억원 규모의 마스크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법인에 남겨진 채무는 총 43억원 정도다. 이후 B 제약사와 손해배상 소송까지 벌였지만 패소했다. 이 재판결과에 따라 지난해 12월부터 압류·추심이 시작됐다. 정립전자 채권자들은 한소협을 상대로 소송을 내 산하시설 계좌를 비롯해 운영자금 23억원을 압류하고 13억원을 추심했다. 현재 각 시설 보조금과 후원금 계좌까지 묶인 상태다.

이런 이유로 시설 프로그램 운영은 대부분 멈춰 있다. 법인의 안이한 대응과 무책임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립회관 관계자는 “법인회계와 시설회계는 엄연히 구분돼 있는데 법인이 진 빚을 시설 보조금과 후원금으로 갚아나가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라며 “현행법상 압류대상도 아닌 보조금이 부채상환에 쓰이고 있어 이를 보다 못한 직원들이 법원에 압류금지채권범위 변경 신청을 위해 대표이사 직인을 요구했지만, 법인이 한사코 가로막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소협은 계좌 성격을 명확히 하지 않은 시설 탓이란 설명이다. 한소협 대표이사 C씨는 “이제와서 잘잘못을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애초 계좌를 개설할 때 보조금 통장이란 걸 명기하지 않고 일반 통장으로 보조금을 받은 게 문제다. 사태 수습을 위해 지난 8일 관할 법원에 보조금 압류 해제를 위한 압류·가압류금지채권 범위 변경을 신청해 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복지시설을 실물경제 논리로만 해석한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걸 사업 수익성으로 바라보고 평가한다는 주장이다.

앞선 정립회관 관계자는 “대표이사가 회관 내 프로그램 이용시간이 끝난 직후에 와선 이용자가 몇 명 없고 한산하니 당장 이 곳을 비워 수익이 될만한 곳으로 활용하라는 지시를 몇 차례 들었다”며 “장애인은 커녕 사회복지에 대한 기본이해도 없이 오로지 돈벌이에만 치중한 몰상식한 접근”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표이사는 지금처럼 보조금 받고 수익을 못 낼 바엔 차라리 보조금을 안 받고 암병원이나 요양원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하는 게 훨씬 낫겠다는 말도 직원들 앞에서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 현재 부동산 전문가 등 실물경제 중심의 비대위와 이사회 구성을 봐도 조속한 법인 부채상환을 핑계로 기본재산을 급매물로 내놔 부동산업자 등과 짬짜미 해 헐값에 팔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C씨는 시대변화에 대응한 운영방식이라고 맞섰다. 그는 “소소하게 사회복지사업만 하고 그냥 보조금만 받아서 하는 건 구시대 발상이다. 지난 내부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무구조를 혁신적으로 개편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인 기본재산 처분 의혹에 대해선 “현 임원진은 시대적 요구인 사회복지시설의 공간 및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데 적합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법인 기본재산을 헐값에 매각해 사적 이익을 채우려 한다는 건 아무 근거없는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한편, 한소협은 설립 이후 점거농성과 횡령사건으로 잡음이 잇따랐다. 1993년 정립회관 초대 관장의 배우자인 D 이사가 시설재산을 가로채 임야 1만6천528㎥를 몰래 사들이는 등 2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때 서울장애인운동청년연합 등은 이들 부부의 동반퇴진을 요구하며 45일간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또, 2015년 정립전자 대표 E씨도 사기 등 혐의로 철창 신세를 졌다. 중증장애인우선구매 납품과정에서 명의를 빌려주고 계약금의 10%를 편취한 혐의다. 당시 유령직원 인건비를 가로채고, 납품계약을 위해 지역구 의원에게 1천500만원을 뇌물로 제공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정립회관 정문에 붙어 있는 대자보가 한소협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소셜포커스
정립회관 정문에 붙어 있는 대자보가 한소협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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