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겐 거소 투표만이 답? 장애인도 알고 찍을 권리가 있다!
장애인에겐 거소 투표만이 답? 장애인도 알고 찍을 권리가 있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4.1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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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에겐 어렵기만한 선거공보물... “후보자도 공약도 잘 모르겠어요”
시각장애인 투표용구에는 달랑 번호만... 당과 후보자 이름도 안 나와있어
사전투표소 10% 장애인 접근 어려워, 법에 강제조항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수어통역사 인원 턱없이 부족... 영상통화해도 현장 소통력 현저히 낮아
장애단체 ”예산 없어 헌법에 나온 기본권 보장 못한다는 건 말 안돼“
장애단체들이 10일 오전 청운효자동사전투표소 앞에서 발달장애인 및 모든 장애인들의 온전한 참정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발달장애인은 선거공보물을 봐도 후보와 공약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기때문에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용지를 제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누구나 자신의 한 표를 의미 있게 던질 수 있는 날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금일 오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단체들이 청운효자동사전투표소 앞에서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오는 15일 치뤄지는 본선거날에는 대다수의 투표소가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작 사전투표소의 장애인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사전 투표는 당일 투표가 어려운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약자들을 배려해 마련된 제도임에도 장애인 편의를 갖춘 투표소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장애인의 사전투표소 접근 비율은 80% 미만을 웃돌았다. 그해 6월 8일 장애단체들은 삼청동 사전투표소에서 문재인대통령을 만나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호소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후 해결된 것은 없었다.

이후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투표소 접근율이 90%까지 올라갔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었다. 공직선거법 조항의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장애인 접근이 어려운 10%의 사전투표소에 대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문윤경 활동가 ⓒ소셜포커스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유형별로 참정권을 침해를 받는 상황은 매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공직선거법 상 발달장애라는 단어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투표 편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단체들은 선관위에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용지 제작을 요구해왔다. 발달장애인은 선거공보물을 봐도 후보와 공약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보접근부터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발달장애인과 지적장애인들의 투표율은 50%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조화영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선거공보물이 책자로 엄청 많이 오는데 글도 많고 문장도 길고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서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투표용지도 그림이 없고 글씨로만 적혀있으니 마찬가지구요. 다른 세계 외국인들은 알기 쉽게 투표용지를 만들었다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는지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했다.

대구지역의 사례를 발표한 문윤경 활동가는 ”발달장애인들이 원하는 후보를 찍어야하는데 부모님이나 시설 교사가 옆에서 관찰을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까 발달장애인들이 찍고 싶은 후보가 아니라 부모님이나 시설교사가 찍어주는 후보를 찍는 경우도 많다“며 ”발달장애인이 찍고 싶은 후보를 찍으려면 쉬운 선거공보물과 투표용지 제작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후보자들이 방송사 대담이나 토론회에 출현해 연설할 때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말을 하고 심지어 일부 후보자들은 장애인 차별 발언도 서슴치 않는 등 선거가 되려 장애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아 화가난다"고 비판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거소투표를 할 때 보조용구에 번호만 쓰여있고 당과 후보자의 이름은 나와있지 않아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시각장애인 곽남희 활동가는 ”거소투표를 집에서 하니까 선거 공보물을 뒤져서 미리 알아놓고 투표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번호를 외우지 않는 이상 어느 당인지 어떤 후보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며 ”사전투표의 경우 타지역에서 투표할 때 점자보조용구에 번호만 나와있어서 당일날 누구를 찍어야할지 알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올해 총선은 감염 예방을 위해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를 하는데 이 또한 시각장애인에게는 문제가 되고 있다. 비닐장갑을 끼면 점자를 읽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관위에 개선 요청을 했지만 실제 투표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지켜봐야한다는 입장이다.

투표소에 배치된 수어통역사 인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올해 정부가 투표소에 수어통역사를 확대한다고 밝혔지만 전체 투표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로 나타났다. 서울지역에는 수어통역사 25명만이 배치됐고 세종시에는 단 한명도 배치되지 않았다. 수어통역사가 없는 곳은 영상통화로 투표를 지원하지만 전달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종운 활동가 ⓒ소셜포커스 

청각장애인 당사자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종운 활동가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의 기억을 되짚었다. ”투표소에 수어통역사가 없어서 문자로 된 안내문을 읽었지만 이해가 어려웠다. 당시 투표를 하고 빨리 가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공무원은 기다리라고만 하고 간신히 다른 지역 수어통역사와 영상통화를 했지만 이마저도 멀리 떨어져있어서 소통이 잘 안됐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투표하기까지 총 20분이나 걸렸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공직선거법상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안내도를 제공하고 청각장애인에게는 자막과 수어통역을 제공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강제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사는 지역구 사전투표소에 편의가 갖춰져있지 않다면 장애인은 참정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된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편의가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이곳 저곳을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선거를 나가는 후보자들의 인식 부족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후보자들이 점자공보물을 만들면 모든 예산을 선관위에서 지원하지만 정작 대다수의 후보자들이 점자공보물을 만들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선거법상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이승헌 활동가는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편의 조항들이 강제성을 띄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조항을 의무화해야하는 것“이라며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에 기본권인 참정권을 선관위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보장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반쪽짜리 참정권만 보장받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 당사자들도 장애인 유권자를 배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어느 당과 어떤 후보를 찍어야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 선택이 나라의 발전을 이루어내는만큼 장애인 유권자의 한 표를 위한 온전한 선거법 개정과 투표소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장애유형별로 선거철마다 겪는 어려움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선거공보물과 투표용지를 이해하기 어렵고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어통역사 인원이 부족해 통역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투표용구에는 번호만 나와있어 당과 후보에 대한 정보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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