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는 농인의 얼” 수어의 날 제정 공청회 열려
“수어는 농인의 얼” 수어의 날 제정 공청회 열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8.10 17: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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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화언어법' 제정 4년... 아직 현장 적용↓ "정부 수어정책 감수성 가져야"
농사회 축소되면서 청인 문화 따라가는... “농인의 자기 부정성 높아진다” 지적
수지 한국어 사용자 증가, 한국 수어 입지는? 언어 차별도 '장차법'에 명시해야...
현장투표에는 ‘한국수화언어법’ 공표날인 2월 3일이 ‘수어의 날’ 선호도 1위로
‘수어의 날’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7일 서울 용산구의 N90센터에서 열렸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농인의 언어인 ‘수어’의 위상을 높이고 ‘수어의 날’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7일 서울 용산구의 N90센터에서 열렸다. 농사회가 처한 현실과 「한국수화언어법」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변승일 회장
변승일 회장 ⓒ소셜포커스 

현재 ‘UN장애인권리협약’(UNCRPD)의 실천으로 9월 23일을 ‘세계 수어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 매해 세계에서는 온오프라인으로 이를 축하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그 과도기에 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공표되고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공식 언어로 인정되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날조차 없는 상황이다.

한국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은 “수어법이 제정됐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국어와 수어가 동등한 위치가 되었지만, 아직도 수어는 국어에 비해 단어수도 부족하고 연구도 활발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에서 수어가 국어보다 부족함 없이 소통될 수 있도록 37만 농아인의 자긍심이 높아질 수 있도록 수어의 날을 제정해야한다”며 재차 강조했다.

 

한국사회에서 농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왼쪽) 변강석 강남대학교 외래교수와 (오른쪽) 이현화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관 주무관이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변강석 강남대학교 외래교수는 먼저 농인 문화와 정체성을 분석한 자료로 발제를 이어갔다. 변 교수는 "농인 문화라는 말은 써도 청인 문화라는 말은 없다. 그만큼 농인 문화는 억압받는 삶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며 "소수의 농인 문화에서 농인은 항상 청인에게 맞춰살아왔다. 때문에 농인이 가진 긍정적인 자질마저 배제시켜버리는 내면에 자기부정이 심한 사람이 많다. 농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청인을 따라가다보니 농인이 청인화되는 난청인이 증가하고 청인도 증가하는 추세가 되고 있다"며 지적했다. 

청인 가정에서 농인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 대부분이 수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농학교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부모들이 농인 자녀를 일반 학교로 보내고 싶어한다. 학창시절에는 또래 농인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사회로 나가면 청인 문화에 섞여살면서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 따랐다.

또한 그는 한국사회가 농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농인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키우기를 꺼려한다고 비판했다. 정작 부모는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수어를 배우려하지않고 인공와우 수술부터 상담받는 등 농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주체성이 결여된 채로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변 교수는 미국 드라마 'ER'의 사례를 소개했다. 농인 자녀를 낳은 흑인 부모가 아이를 농인으로 키울지, 청인으로 키울지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는 아이가 인공와우 수술을 하길 원하지만, 이내 상담을 맡은 농인 당사자인 여의사와 논쟁을 벌이게 된다. 여의사는 부모에게 단순히 아이의 한 쪽 귀의 청력을 복구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농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결정권을 줘야한다고 말한다.

실제 2011년 미국 의사회에 등록된 대학병원 농인 의사는 단 3명뿐이었지만, 학교가 이들을 믿고 맡긴 결과 2016년에는 농인 의사가 17명까지 늘어나게 됐다. 변 교수는 1998년 만들어진 이 드라마를 통해 농인 전문가로서 인정받은 이런 사례가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믿고 끊임없이 상상하며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한국수화언어법」제정 4년... 무엇이 바뀌었나?

(왼쪽) 김철환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 대표와 (오른쪽) 이미혜 서울수어전문교육원 강사가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 공표를 시작으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작동이 안되는 법이라는 불명예도 생겼다. 북한 정상회담을 비롯한 정부공식행사와 평창동계올림픽, 산불재난방송 등 어느 것 하나 수어통역이 제대로 제공되는 것은 없었다. 다행히 오늘(10일)부터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상시 수어통역이 지원되지만, 아직도 청와대만 수용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일부 방송사의 수어통역 미제공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방송공사(KBS)의 경우 오는 9월 3일부터 9시 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SBS와 MBC는 아직 묵묵부답인 상태다. 이번 코로나 사태 초반에도 정부 재난 브리핑에 수어통역이 없어 농인 당사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숱하게 진정을 넣은 뒤에야 수어통역사를 배치하게 됐다.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의 김철환 대표는 위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정부의 수어정책 감수성 부족 △수어에 대한 사회의 인지 부족 △농인 단체의 권리 요구 미흡 △「한국수화언어법」과 공식언어로서의 수어 홍보 미흡 등을 꼽았다. 

김 대표는 해결책으로 수어와 농문화에 대한 연구기관을 별도로 세우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권한을 확대해서 정부가 정책을 세울 때 수어를 고려하는 '수어인지정책'을 확대해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관 이현화 주무관은 실제 정부 정책 수립시 수어인지정책이 어려운 이유를 토로하기도 했다. 

이 주무관은 "수어 정책을 만드는데 정작 회의 참석자 대다수가 청인이고 농인은 1명정도다. 회의를 할 때면 담당 주무관 대다수는 수어를 모르고 농인 자문위원 1~2명은 왔다가 두 시간 앉아있다간다. 과연 이런 회의에 농인의 입장과 관점이 잘 포함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비판했다.  

이어 "청인들은 간단명료하게 표현하지만 농인들은 대다수가 간접적인 표현을 선호하고 예문을 들어서 설명해야될 때도 많다. 농인의 입장에서는 자료 보고 수어 보고 정말 정신이 없다. 게다가 정부 기관 평가가 대게 양적 평가에 치우쳐있는데 수어는 수치로 증명할 양적 자료를 준비하기가 어렵다. 농인 문화나 수어에 대한 지식없이 정부 기관이 어떻게 정책에 농인의 목소리를 녹여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제는 바껴야한다!"「한국수화언어법」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수어의 날'을 언제로 하면 좋을지에 대해 패널을 비롯한 관객석에서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소셜포커스

2018년부터 제1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이 시행되고 아직 진행 중이다. 5년이 지난 2023년에 제2차 계획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미혜 서울수어전문교육원 강사는 2차 계획 시작 전 「한국수화언어법」이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위해 현장에 있는 농아인들의 의견이 담긴 개선안을 제시했다. 

애초에 한국사회의 농인 교육이 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농학교 감소는 그 중 가장 큰 문제로 꼽히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농학생 70%가 농학교를 가지않고 일반 학교에 가서 통합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청인 교사의 수어실력 문제도 거론됐다. 수어실력자를 보내도록 교육법에 명시하고 있으나 이를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심지어 농인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어 실력을 가진 이들이 교원 자격을 취득하는 행위에 분노하는 이들도 많다. 

이 강사는 현재 한국수어능력시험과 교원검정시험이 구분되어있는데 법안 시행령을 개정해서 수어능력시험에서 일정 수준의 점수를 취득한 자, 즉 수어를 잘하고 농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사람이 그 다음 교원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초ㆍ중ㆍ고등학교 과정에서 수어교육을 기본 교과목으로 넣기는 어렵지만 특별활동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권고조항을 넣을 것과 농인 자녀가 있는 청인 가족들이 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자체의 수어 교육 시행ㆍ홍보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교육이 한국 수어가 아닌 수지 한국어(문법 없이 단어 조합으로 설명하는 수어)로 진행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꼽혔다. 애국가 번역조차 수지한국어가 쓰이고 점점 수지한국어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한국 수어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강사는 "독일의 경우 수지 독일어는 독일 수어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수화언어법」에도 한국 수어와 수지한국어를 구분하는 정의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수어의 지향점을 명확하게 할 것을 강조했다.   

이어 「장애인 차별금지법」에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개념을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언어로 인한 차별 행위는 정의되어있지않다며 언어 차별 행위의 해결책도 법적으로 명시해야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촉수어사용자에 대한 언어권 보장과 △농인전문가 양성 △농사회의 운동성 회복 △주무부처(문체부) 및 시행기관(국립국어원)과의 소통 강화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무엇보다 「한국수화언어법」과 농인 사회에 대한 관심은 농인들 스스로가 끌어내야한다는 의견이 가장 강조됐다. 

이날 '수어의 날'을 언제로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현장 투표와 토론회가 이어졌다. 현장 투표 결과 「한국수화언어법」 공표날인 2월 3일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차지했다. ⓒ소셜포커스

한편 이날 '수어의 날'을 언제로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현장 투표와 토론회가 이어졌다. 변강석 교수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의 수형이 숫자 9와 유사하기에 이를 활용해서 9월 9일로 하자고 제안했다.

김철환 대표와 이미혜 주무관은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기념일을 존중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2월 3일을 추천했고, 이현화 강사는 '수어의 날' 때 농아인들이 모여서 행사를 할텐데 2월은 너무 춥고 8월은 너무 더우니 가을인 9월이 좋을 것 같다며 세계수어의 날인 9월 23일을 추천하기도 했다.  

현장 투표 결과 2월 3일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었다. 과연 '수어의 날'이 언제로 정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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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 2020-08-11 16:00:41
어우 미처 생각못했었는데 정말 청인들만을 위한 문화만 주였고 미처 농인들은 고려조차 안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사회가 인지도 못하고 있다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네요ㅇㅁㅇ.. 좋은기사 감사합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