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아닌 ‘혼란‘의 승강기 교통약자존
‘배려‘ 아닌 ‘혼란‘의 승강기 교통약자존
  • 조봉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5.19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입문 코 앞 안내스티커 부착해 안전사고 위험
승·하차 동선 구분 및 대기선 표시 등 개선 시급

요즈음 코레일이 운영하는 일부 광역철도(지하철) 역사 내부의 승강기 앞 바닥에 “교통약자 배려 ZONE”라는 큼지막한 스티커가 붙어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하 ‘승강기공단’)과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가 공동으로 “함께하는 승강기 이용문화 정착”을 위하여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캠페인 사업이다.

지하철 역 엘리베이터에 이용자가 많아 정작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오히려 차별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혼잡 과정에서 전동휠체어가 승강기 출입문과 충돌하여 승강기에 손상을 주거나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장애인이 추락하는 등 안전사고도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2010~2020년 전철역 승강기 등에서 휠체어 장애인의 추락으로 사망한 사건은 무려 8건이나 된다.

이번 캠페인 사업에 관하여 코레일과 승강기공단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이런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장애인이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안전공간을 확보하자는 취지인 것 같다. 취지만 보면 칭찬할 일이지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안전을 저해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기획할 때부터 안전과 편의 등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부터 반영되지 않았다. 필자는 처음에 코레일이 자체적으로 이 사업을 하면서 안전문제를 고려하여 승강기공단을 끌어들인 것으로 알았다. 승강기공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두 기관에 확인해 보니 참으로 황당했다.

승강기공단에서 교통약자를 배려하자는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기획한 일이었다. 여기에 참여를 희망하는 교통기관에 대해서 해당 기관의 로고를 승강기공단 로고와 함께 스티커에 인쇄를 해주고 활용요령을 안내한 것이다. 현재 이 사업에는 코레일과 인천교통공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전교통공사는 4개 역에서 시범운영 중이라고 한다.

문제의 스티커는 각 승강기마다 문이 열리는 바로 앞 가운데에 문짝에 바로 붙여서 또는 문틀과 같은 라인에 부착되어 있다. 당연히 교통약자는 그 공간을 휠체어 대기 공간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기다리고 있다가 승강기 문이 열리면 어떻게 될까? 승강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내려야 하는데 휠체어가 통로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다. 할 수 없이 휠체어는 다시 뒤쪽으로 물러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대기줄은 흐트러지고 휠체어 후진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무거운 전동휠체어 바퀴에 신발이 깔리는 등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다. 인파가 몰리고 극심한 혼란 상태가 수시로 발생하다 보면 사고 우려는 더욱 가중된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만약 전동휠체어가 빠르게 달려오다가 그 스티커 위에서 급히 멈춰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승강기 문과의 간격이 전동휠체어 제동거리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문짝에 충격을 줄 수도 있고, 문짝이 파손되면서 승강탑 안으로 추락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과거에 있었던 지하철역 승강기 장애인 추락사의 끔찍한 사건들도 그렇게 발생한 것이다.

그러한 사고를 예방하자는 차원에서도 실시하는 이번 사업이 오히려 교통약자를 그러한 사고위험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승강기 전문기관에서는 왜 승강기를 타는 사람의 입장만 생각하고 내리는 사람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 아닌가? 그리고 안전문제는 왜 이렇게 무관심했을까? 승강기안전공단이 승강기의 안전을 담당하는 기관이지 지하철 홍보대행사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안전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존재감을 과세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공단의 답변도 가관이다. 교통약자 승강기 배려문제를 홍보하는 곳이 없어서 우리가 공익차원에서 대신 스티커를 만들어주고 홍보한 것인데 뭐가 잘못이냐는 투다. 이번 일에 안전문제에 대해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딱히 답이 없었다.

이번 사업에 아무런 자체검토도 없이 무심코 참여한 코레일이나 인천교통공사의 안전불감증 및 무개념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승강기공단의 제안을 받고 누구나 지적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제점도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시행한 것이다.

코레일의 광역운영처 최고 관계자에게 이런 문제를 제기했더니 곧바로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또 문제였다. 코레일에 대안(이 칼럼의 결론부분 참조)을 제시하고 즉각 시정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러한 의견을 승강기공단에 전달해 보겠다고 했다. 아니 이건 코레일에서 해야 할 문제이지 승강기공단에 넘길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그간 담당기관이 방치했던 사항을 타기관에서 앞장서자 마지못해 따라갔던 코레일이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또 관계없는 기관에 공을 넘기려고 하는가?

그동안 코레일과 도시철도(지하철) 등 철도시설을 운영하는 기관들은 시민들이 승강기를 질서있고 안전하게 이용하고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고민한 적이 있을까? 교통시설의 승강기 운영에 대해서도 이제 경제 대국에 걸맞는 선진화된 시스템과 질서를 갖추어야 한다.

승강기 앞 바닦에 스티커 한 장 붙이는 이러한 단순할 발상은 교통약자 배려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통약자를 배려하자는 스티커는 이미 승강기 문짝에도 붙어 있고 벽면에도 붙어 있다.

실제 현장취재에 의하면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에서 그 교통약자 배려존을 비워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사진 참조) 심지어 휠체어 장애인이 있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에 밀려서 대부분 멘 뒤에 서 있었다.

이제 교통약자 배려 문제가 아니더라도 승강기의 질서있는 이용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냥 아무데서나 줄만 선다고 질서가 잡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적절한 동선과 공간을 선택하여 대기선을 그려두는 등 체계적 개선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미 2021년 5월 31일자 본지의 “전철역 승강기 이동약자 제도적 우선이용 방안”이라는 칼럼을 통해서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그때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대안을 제시해본다. 질서있고 안전한 승강기 문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승강기 문 옆(문짝이 간섭받지 않는 양쪽 문틀 앞)으로 두 개의 대기선을 나란히 그려둔다.(도면 참조) 하나는 교통약자용으로 일반 대기선 보다는 승강기 쪽으로 한 발 더 가까이 표시해둔다. 그리고 승강기 문짝 바로 앞에는 승강기에서 나오는 화살표를 그려둬야 한다. 지하철 승강장에도 각 열차의 출입문 앞에는 들어가는 동선과 나오는 동선이 구분되어 있지 않는가?

일단 전동휠체어의 1차 동선과 대기공간이 승강기 문짝 앞이 아니라 고정된 문틀 앞이 되므로 휠체어가 문짝과 충돌하여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또한 승강기 앞에서 대기하는 공간가 승강기 안에서 나오는 동선이 분리됨으로써 혼잡한 경우에도 질서가 유지된다.

이러한 시스템이 모든 철도역과 지하철역에 하루속히 갖추어졌으면 한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제작하여 각 코레일 전철역에 배포한 교통약자배려존 스티커. ⓒ소셜포커스
교통약자 배려존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곳을 비워두는 사람은 없고 교통약자는 언제나 후순위다. ⓒ소셜포커스
필자의 대안(2): 승강기 앞에 이렇게 타고내리는 동선을 나누고,  교통약자용과 일반용 대기선을 구분하여 설치해두면 어떨까?
필자의 대안2: 승강기 주변의 공간에 따라 대기선을 이렇게 설치할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