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 인권침해... 지자체 "나 몰라라"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 인권침해... 지자체 "나 몰라라"
  • 류기용 기자
  • 승인 2020.03.18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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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16일 금천구청 앞 기자회견 열어
지난 4일 인권위의 거주시설 인권침해 발표에도 지자체 '모르쇠' 일관
"학대 발표에도 피해자 3명은 가해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6일 금천구청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 대한 조속한 시설폐쇄 이행과 거주인 전원의 탈시설지원 약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류기용 기자] =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뾰족한 대책 없이 손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장애인단체의 공분을 사고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서울장차연)은 16일 금천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 대한 조속한 시설폐쇄 이행과 거주인 전원의 탈시설지원 약속을 촉구하며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 수차례 장애인 인권침해와 학대... ‘루디아의 집’ 안에서 무슨일 있었나?

최근 논란이 된 ‘루디아의 집’은 경기 가평군에 소재한 장애인거주시설이다. 총 67명의 장애인이 거주하는 시설로 지속적으로 장애인 인권유린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기관이다. 지난 2014년 보조금 횡령과 이용자 제압복 착용 등으로 행정 경고와 벌금납부 등 처분을 받았다. 2017년에는 이용자 감금 및 무면허 의료행위 등이 발각되어 시설장을 교체해야 했다.

그러나 장애인학대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시설거주 장애인 A씨가 상습적 학대와 가혹행위로 고통받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5일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를 규탄하고 조속한 탈시설 계획마련을 요구했다. ⓒ 소셜포커스
지난 5일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를 규탄하고 조속한 탈시설 계획마련을 요구했다. ⓒ 소셜포커스

이에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0일까지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해당 시설에 대한 직권조사를 통해 충격적인 결과를 CCTV로 확인했다.

‘루디아의 집’ 곳곳에서는 거주 장애인에 대한 상습폭행과 폭언, 가혹행위가 지속됐다. 문제가 발생하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종사자들은 거주 장애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머리와 얼굴 부위를 수차례 구타하고 바닥에 넘어뜨렸다. 시설 이용자 A씨가 같은 방 이용자 B씨의 얼굴을 꼬집으려하자, A씨의 뺨을 때리고 바닥에 밀쳐 넘어뜨리는 폭행 장면이 고스란히 CCTV에 담겨 있었다. 심지어 A씨의 문제행동을 시정하겠다는 이유로 고추냉이 섞은 물을 강제로 먹인 사실도 드러났다.

폭행과 폭언은 이뿐만이 아니다. 목격자와 피해자들은 대소변을 자주 본다는 이유로 뒷통수와 엉덩이를 맞거나 “병x, 바보” 등 핀잔을 주고 욕을 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주먹으로 뺨을 때리고 목에 헤드락(상대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죄는 레슬링 기술 중 하나)을 걸었어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 외에도 식사 지원 과정 중 이용자들에게 “XXX아, 밥 천천히 먹어라"는 등 욕설 섞인 발언을 서슴치 않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위협을 가했다. 심지어 신변 처리가 어렵다며 식사량을 밥 한 두 숟가락로 줄이는 등 가학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4일 ‘루디아의 집’에 대해서 ▲시설폐쇄조치 ▲위탁법인 설립허가 취소 ▲관내 장애인 거주시설을 지도 감독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5일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를 규탄하고 조속한 탈시설 계획마련을 요구했다. ⓒ 소셜포커스

■ 여전히 운영중인 ‘루디아의 집’... 서울시 “욕구조사 먼저" 금천구 “서울시 조치 기다리는 중”

인권위 권고가 발표되고 2주가 지나는 동안 ‘루디아의 집’은 어떻게 됐을까?

아직도 ‘루디아의 집’은 운영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가해자 5명 중 2명이 여전히 시설에 남아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시설에서 학대를 당한 피해자도 11명 중 3명도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하고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시와 금천구는 지난 2월 21일 피해자 11명에 대한 긴급분리 조치를 시행했다. 서울시는 시설 피해자 중 6명을 다른 장애인거주시설로 전원하고, 1명을 장애인 쉼터로, 1명을 자택으로 귀가시켰다.

그러나 본인나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은 3명과 기존 54명은 아직 ‘루디아의 집’에서 가해자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거주장애인들의 욕구조사를 통해 향후 전원조치 등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며, 금천구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6일 금천구청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 대한 조속한 시설폐쇄 이행과 거주인 전원의 탈시설지원 약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소셜포커스

이같은 행정기관의 늦장 대응에 장애인단체 회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되는 시설 장애인 인권침해에 분노하며, 조속한 피해자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금천구가 보다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장차연 서기현 공동대표는 "장애인 관리를 목적으로 죄수 취급하는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의 인권이 지켜지길 바라는가"라고 물으며 "시설에서 인권 침해와 유린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쉬쉬하는 정부와 지자체가 장애인 인권유린의 공범"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서 대표는 “금천시의 역할과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지체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며 “3월 내 시설 폐쇄 조치 이행과 청문회를 진행하고 5월까지 시설폐쇄 완료에 대한 계획을 빠르게 세우고 이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 대한 조속한 시설폐쇄 이행과 거주인 전원의 탈시설지원 약속을 촉구하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의 발언 모습. ⓒ 소셜포커스

장애인 거주시설의 열악한 인권 환경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영은 활동가는 “집단거주시설은 장애인에게 질병의 재난과도 같다”며 “언제 어떻게 시설에서 죽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는 장애인의 인권유린 재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최영은 활동가는 “명확한 학대 문제가 세번이나 반복되었지만 아무런 행정제재도 가하지 않는 지자체를 보면 기가차다”며 "당장 거주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루디아의 집’ 시설 거주인 전원에 대해 장애인 지원 주택이나 자립 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는 탈시설 계획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확인됐다.

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황백남 소장은 “시설 장애인을 다른 시설로 옮기는 것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서울시가 장애인 권리 중심의 지역사회 탈시설 정책을 수립하고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금천구청 유성훈 구청장은 서울장차연 회원들을 만나 요구사항을 청취하고 조속한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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