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쉽게 투표하고 싶다!” 올해 첫 장애인 아고라 열려
“우리도 쉽게 투표하고 싶다!” 올해 첫 장애인 아고라 열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4.15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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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공보물, 쉬운투표용지 등 장애유형에 맞는 편의 제공해야
후보자 토론회 때 통역사 1명이 통역하니 누가 말하는지 알기 어려워
투표소 간이 경사로 허술해 휠체어 이용자 사고 위험도 높아...
시각장애인 지팡이 끌고 이리저리... 선거인력 사전 교육도 필요
올해 첫 장애인 아고라가 열렸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장애인도 쉽게 투표하고 싶다!"는 주제로 진행되어 장애인 당사자가 겪었던 어려움과 개선 방안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들이 이어졌다. 토론회 영상 캡쳐 화면.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21대 총선을 앞두고 “장애인도 쉽게 투표하고 싶다!”는 주제로 올해 첫 장애인 아고라가 열렸다. 장애인 아고라는 가장 뜨거운 이슈들을 모아 장애인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나와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이다.

이번 토론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사전 선거정보 획득 ▲투표 진입 및 접근성 ▲투표 소 내 기표행위 3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특별히 각 장애유형별 전문가들을 모아 토론을 진행했다. 주발언자로는 여러가지 수어 연구소 강재희 대표,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식개선센터 김기택 강사,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실장, 한국피플퍼스트 서울센터 김대범 센터장,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동국 선임연구원이 참여했다.

먼저 장애인 참정권 기준에 대한 의견이 제시됐다. 참정권이 선거 당일에 가서 투표 용구로 기표하는 행위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장애인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장애인들이 실제로 겪는 불편함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장애유형별 후보자와 공약에 대한 정보 접근이 난제... “발달장애인 투표 편의는 전무”

선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후보자와 공약을 확인하는 것이다. 대게 유인물과 홈페이지를 통해 후보자 정보와 공약을 공개하고 있지만 장애인에게 이 두 가지 방법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경우 점자 홍보물을 제공하는 후보들이 있지만 대게 점자의 특성을 무시한 채로 보급하고 있어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따랐다.

시각장애인 당사자 이연주 실장은 “점자로 문서가 만들어지면 3배 정도 더 많은 면수를 차지하게 되는데 현재 선거법에서 일반 문서와 점자 문서를 같은 면수로 제한하고 있어 점자가 중간에 끊기거나 후보자의 정보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비판했다.

또한 투표 안내문에 투표 장소에 대한 정보가 없어 난감한 상황도 발생했다. 투표소가 이전되거나 변경된 경우 시각장애인은 투표 장소를 알지 못해 투표를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발달장애인은 선거 공보물을 이해하는 과정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비장애인도 자신에게 맞는 후보자 공약을 찾고 분류하는데 있어 평균 30-40분이 시간이 소요되는데 글과 숫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선거 공보물은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대범 센터장은 “선관위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림투표용지와 쉬운 선거공보물을 제작해달라고 꾸준히 요청해왔지만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발달장애인을 위한 선거 편의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상태”라며 “발달장애인은 선거 정보를 제공 받지 못해 부모님과 활동보조교사가 찍으라는 대로 찍고 나올 수 밖에 없다”며 호소했다.

■대선 토론회에 통역사 1명이 통역하니 혼선 빚어... “미국은 발언자별로 통역사 배치해”

청각장애인의 경우 글씨 위주의 정보뿐 아니라 수어를 사용한 영상 자료를 제공해달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청각장애인의 주요 소통방법이 수어이기 때문에 인쇄물만으로 정보를 얻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다. QR 코드를 삽입해 수어로 선거공보물을 제공하는 후보자는 극소수로 나타났다.

또한 대선 토론회 등 각종 방송에 발언자별로 수어통역사를 배치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회는 사회자를 포함해 3명 이상의 참여자가 발언을 하는데 통역사 1명이 모든 발언을 통역하면 혼선을 빚는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는 발언자 개인별로 수화통역사를 배치해 혼선을 막고 있다.

또한 수화통역사를 화면 하단 동그라미 안에 넣는 경우가 많은데 농아인이 장시간 그 화면을 보게 되면 굉장히 피로한 경우가 많아 크로마 기법으로 화면 내에 수화통역사만 삽입하는 방식도 제안됐다.

왼쪽부터 여러가지 수어 연구소 강재희 대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권재현 국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실장,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식개선센터 김기택 강사, 한국피플퍼스트 서울센터 김대범 센터장,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동국 선임연구원이 발언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왼쪽부터 여러가지 수어 연구소 강재희 대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권재현 국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실장, 한국피플퍼스트 서울센터 김대범 센터장,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식개선센터 김기택 강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동국 선임연구원이 발언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투표소 90% 이상 1층 위치하지만 건물 진입부터 어려워 “간이 경사로 사고 위험 높아”

투표소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과거에는 대다수의 기표소가 건물 2층에 위치해 거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의 등에 업혀 기표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대다수의 기표소가 1층에 위치해 접근성 문제는 줄었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경우 건물 진입시 좁고 가파른 경사로 때문에 되려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기택 강사는 “지난 투표 때 투표소가 상가건물에 있는 2층 학원이었다. 원래 진입 경사로가 없던 곳이라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만드느라 허술하게 지어졌다. 전동휠체어로 경사로를 다니는데 너무 좁아서 넘어질뻔했고 당시 주변에서 잡아주어 간신히 사고를 모면했지만 정말 아찔했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장애인 편의 시설 예산 어디로... 93.5%가량 편해졌다고 하나 현실은 달라

매해 책정되는 장애인 편의 시설 예산에 비해 개선점이 낮다는 지적도 따랐다.

장애인권포럼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선관위에서 당부처와 관련해 편의 사업으로만 약 10억 6천만원을 책정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부터 올해 총선까지 선관위에서 어떤 예산도 책정하지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동국 연구원은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장애인 편의에 대해 선관위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올해 사전투표소에 장애인 편의 시설을 93.5%까지 높였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10곳 중 4곳 정도는 건물 자체에 들어가기 어려운 곳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자투표도 도움될 것... 선거인력 장애인 이해도 낮아... 사전교육 필요해

현재 선관위는 발달장애인 선거 참여를 위한 쉬운그림투표용지 제작에 대해서 터치스크린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터치스크린으로 된 기기로 후보자 사진과 정보를 제공해 시각적인 편의를 높인다는 것이다.  

한편 선거 인력에 대한 사전 교육 문제도 거론됐다. 시각장애인 K씨는 “흰 지팡이를 사용해 투표장에 간 적이 있는데 제 지팡이를 맘대로 잡고 앞에서 끌고 가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고 떠올렸다.  

청각장애인 A씨는 “청각장애인은 누구를 부를 때 터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투표장에서 요원을 부르려고 톡톡 쳤더니 그렇게 부르면 실례라고 말하더라. 내가 귀가 안 들린다고 손짓으로 표현을 하니 못 알아들어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니까 주변에서 다 쳐다봐서 수치심을 느낄 때도 있었다. 장애 유형별 특성을 선거 인력에게 사전 교육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제공되는 투표보조용구가 실제로 쓰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체장애인 B씨는 “경추 상위로 손상을 입으면 중증으로 마비되어서 손가락도 쓸 수가 없는데 마우스 스틱을 이용한 보조용구를 써보니 실제 종이에 기표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며 중증장애인을 위한 보조용품 개발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공직선거법 상 투표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의 경우 본인 또는 가족이 지정한 동반인을 허용한다는 조항이 있음에도 실제 투표소 현장에서는 허용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과 투표소 편의 시설 확충 등 장애인의 참정권을 위해 많은 부분 개선된 점도 있지만 아직 현실에서 장애인이 부딪쳐야할 장벽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와 공약에 대한 정보 제공부터 투표소 선정 과정까지 선관위와 장애 단체와의 꾸준한 소통으로 더 실질적인 개선안들이 나와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장애인 아고라 영상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홈페이지 또는 복지TV 홈페이지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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