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상상이 되고 현실이 되다”
“이야기가 상상이 되고 현실이 되다”
  • 양우일 객원기자
  • 승인 2021.12.1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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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겨울이 오면 누구나 하얀 꿈을 꾼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세상을 바라보고 상상하며 예쁜 꿈을 꾼다. 겨울왕국을 꿈꾼다.

지금 세상은 온통 코로나로 뒤덮여 있다. 서로를 경계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겨울왕국을 꿈꾸기는 쉽지 않다. 하얀 눈을 찾아 멀리 떠나고 싶지만 사회 여건도 좋지 않고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다. 겨울왕국의 꿈은 차갑게 식어 버린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으면서 겨울의 꿈을 꿀 만한 장소를 찾았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이다.

한국만화박물관 외부 전경
한국만화박물관 외부 전경 ⓒ소셜포커스

이곳 3층 상설전시에는 1960년대 만화방 [땡이네 만화가게]를 재현해 놓았다. 누렇고 희미하게 비추는 전등 빛이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다. 어릴 적 살던 동네의 만화가게는 공부에 방해되는 불량식품쯤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부모님 눈을 피해 몰래 가던 곳이다.

이 장소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다. 요즘 만화는 대부분 웹툰(webtoon) 형태로 당당히 탈바꿈했다. 상업성으로도 높아진 위상은 물론이고,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건전식품쯤으로 변신을 했는데, 이곳에 역사가 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1963년 발표한 만화를 소개한 전시물 ⓒ소셜포커스

한국만화박물관은 기획전시장과 상설전시장으로 나뉘어 있다. 1층과 3층은 기획 전시와 만화영화상영관이다. 2층은 만화도서관과 체험교육실, 3층 및 4층은 상설전시관과 체험 공간이다.

3층 상설전시에서는 최초의 한국만화로 일컬어지는 이도형 ‘만평’을 시작으로 한국만화의 원화와 희귀 단행본 등을 전시하며 만화의 변천사를 보여 준다. 4층의 체험 존(zone)은 ‘만화’를 매개로 관람객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게 꾸며진 공간이다.

기획 전시는 “2021만화, #시대를 담다”를 주제로 1950년대부터 1999년까지 만화로 시대의 삶과 풍경을 6개의 주제로 구분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6개 테마는 ▶슈퍼 히어로를, ▶언제나 천진한 동심을, ▶투혼을, ▶변화를, ▶판타지를, ▶청춘을 담아 구성했다. 그 시대와 함께 울고 웃었던 장면을 볼 수 있다.

만화는 이렇게 당시의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풍자해 놓았다.

1965년 발표한 미래의 시대를 그린 만화
1965년 발표한 미래의 시대를 그린 만화

만화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야기가 상상을 낳고 상상은 만화로 그려져 만화 속의 세계가 현실이 된다. 1965년에 그려진 “35년 후의 미래상”이라는 만화 한 장을 볼 때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만화 속 세상은 미래의 현실을 예언하듯 증명하고 있다.

지금 코로나로 힘든 상황이지만 오늘을 벗어나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고 상상해본다. 갈등도 분쟁도 없는 건강한 삶이 펼쳐지는 미래의 세상을 꿈꾸어 본다. 이렇게 그려내는 50년 후 미래세대가 희망으로 가득할 수 있도록….

관람하는 중에 1층에서부터 3층까지 이동하는 전시장에서 목발을 짚은 지체장애인을 포함한 세 명의 여성 장애인이 관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년의 지체장애인과 나머지 두 명은 발달장애가 있는 듯한 20대로 보였다. 그 중년의 여성은 자신이 알고 있던 시대를 이야기하며 동행하는 분들과 까르르 웃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화박물관은 이동에 불편을 겪는 장애인이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이동 경로와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도움이 필요할 경우 전화할 수 있도록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장애인 일행의 뒷모습
전시장에서 만난 장애인 일행의 뒷모습 ⓒ소셜포커스

사회의 약자에 대한 편견과 이들을 외면했던 시대를 넘어 나라가 발전하면서 지금은 사회의 약자에 대한 배려와 시설이 잘 갖추어 지고 있다. 아주 고마운 일이고 당연한 시대의 발전상이다. 그들에게 자주 눈길이 갔다. 아직도 사회 여러 분야에서 충분히 개선되지 않은 측면이 작지 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함께하고 경쟁하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 선진 문화국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시관과 체험관을 다 관람하고 영화관 앞에서 기다렸다. 만화영화 [태일이]는 3시40분에 시작되었다. 애니매이션 [태일이]는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을 보여준다. 줄거리는 그 시대 핵심 산업이었던 섬유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그려 내고 있다.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기치 아래 부국(富國)을 부르짖었다. 경제적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되던 시대였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극명한 사회였다. 빈부의 격차뿐 아니라 없는 자의 인간적인 삶과 노동자가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무시되던 때였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나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무지한 민초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가진 자의 이기적인 영욕 때문에 희생되던 시대였다.

태일이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면서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려고 헌신했다. 이루지 못한 꿈을 분신으로 대신한 20대 청년의 모습에 눈물이 맺혔다.

올바름은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태일이는 요즘의 노동운동과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진정한 노동자였고 사회의 개혁을 꿈 꾼 선각자였다.

한국만화박물관은 사라져 가는 우리 만화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여 만화의 문화적•예술적 가치를 증대시키고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고자 마련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만화를 그리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꿀 수 있는 만화왕국이다.

어쩌다 우연히 방문했지만 이곳 만화박물관은 별나라였다. 소중하게 자신의 꿈을 간직할 수 있는 꿈나라였다.

코로나19는 델타 변이에 이어 오미크론까지 변신을 거듭하며 우리 삶을 괴롭히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지만 하루 정도 만화박물관에 시간을 들이면 좋겠다. 자신을 이야기하고 지금 이 시대를 견디어 낸 미래의 현실을 한번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른에게는 빛바랜 추억에 물들게 하고, 아이에게는 즐겁게 상상하며 하얀 꿈을 꾸며 현실이 되게 하도록….

박물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뽀로로 인형 ⓒ소셜포커스
박물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뽀로로 ⓒ소셜포커스

* 한국만화박물관 찾아 가는 길

▶대중교통 : 서울 전철 1호선 송내역 하차 후 버스 7번, 37번, 53번, 96-1번 타고 영상문화단지역 하차해서 걸어서 약 5분. / 서울 전철 7호선 삼산체육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걸어서 약 1분

[양우일 객원기자]

한국만화박물관 내부 ⓒ소셜포커스
땡이네 만화가게
땡이네 만화가게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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