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역사교육과 힐링의 명소, 서희테마파크
외교안보 역사교육과 힐링의 명소, 서희테마파크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2.06.13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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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외교력으로 고려를 구한 서희
이천 서희공원, 이동약자 불편 많아
서희테마파크의 중심 시설인 서희역사관 ⓒ소셜포커스

나라 경영에 있어서 외교와 안보는 매우 중요하며, 서로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현대국가 이전의 우리 역사에서 외교·안보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은 누구일까?

고려 초기에 활동했던 서희(942~998) 선생이 아닐까 싶다. 서희는 993년 거란족(요나라)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오로지 탁월한 협상으로 그들을 물리쳤으며, 오히려 고려의 영토를 압록강 유역까지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외교부는 서희의 이러한 업적을 기려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 1호’로 선정했다.

10세기 들어 우리 역사는 후삼국의 혼란기에 고려가 건국되었고, 935~6년에 신라와 후백제의 멸망으로 민족은 다시 통일된 국가로 발전하게 됐다.

이 시기 중국에서도 당나라 멸망 이후 5대10국이라는 혼란기를 거쳐 새로운 질서를 갖춰나갔다. 북경을 포함한 북부지역에서는 유목생활을 하던 몽고계 부족인 거란족이 요나라(916~1125)를 세웠고, 한족들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송나라(960~1279)를 건국했다.

고려는 발해를 멸망시켰던 요나라를 철저히 무시했다. 요나라의 사신을 귀양보내고 예물로 보내온 낙타 50필을 굶겨 죽이는 일까지 있었다. 942년 만부교 사건이다. 서희가 탄생하기 전의 일이다.

고려는 송나라와 972년에 국교 관계를 맺었다. 여기에서도 서희의 외교력이 빛을 발했다. 서희는 960년 과거 급제로 관료가 된 후 탁월한 능력으로 승승장구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972년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됐다. 송나라가 처음부터 우호적으로 나왔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희의 외교력에 반한 송태조는 서희에게 검교병부상서라는 높은 벼슬까지 내렸다. 타국의 사신에게 내리는 벼슬이 명예직이기는 하나 지위의 높이로 예우의 수준을 짐작해볼 수 있다.

송과 대립하던 거란은 고려의 친송외교와 자국무시에 불만을 갖고 993년 고려를 침략했다. 교과서 등 각종 자료에서는 80만 대군이 쳐들어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당시의 추정 인구 등 여러 사정으로 볼 때 수긍하기 어려운 규모다.

요의 장수 소손녕은 국경지대에 있던 봉산군을 점령하고 고려에 서신을 보내 80만 대군을 끌고 왔다며 항복하라고 위협했다. 이 80만이라는 숫자는 소손녕이 고려를 협박하기 위한 심리전이나 허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소손녕의 당시 지위로 보아 그가 이끌었던 군대는 6만이 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부의 추측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대군의 침입에 놀란 고려 조정에서는 거란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서경(평양)까지 내줘야 할 위기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서희는 적진으로 가서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였다.

소손녕의 주장은 이랬다.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것이니 옛 고구려 땅을 내놔라. 그리고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면서 가까이 있는 거란을 멀리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송나라와 관계을 끊고 요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어달라. 그렇지 않으면 계속 진격할 것이다”

이에 서희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고려는 고구려에 이어받는 뜻으로 국호를 고려로 했다. 오히려 거란에서 옛 고구려 영토를 내놔야 한다. 고려는 거란과 교류를 하고 싶어도 중간에 여진족이 가로막고 있어서 어렵다. 압록강 주변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거란과 직접 교류를 하고 싶다. 송과의 관계도 재고할 것이다”

국제정세에 대한 탁월한 안목으로 거란의 속뜻을 꿰뚫은 서희의 판단은 정확했다. 거란은 서희의 설득과 약속을 수용하고 모두 철군했다. 그리고 고려가 압록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것까지 보장했다. 여진을 견제하겠다는 고려의 입장은 여진과 대립 관계였던 거란에서도 속으로 바라던 바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음 해에 서희는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까지 진출하여 여진족을 몰아내고 그 유명한 “강동6주”를 세웠다. 이로써 청천강 이북 압록강 동쪽으로 280리에 이르는 땅이 고려의 영토로 편입된 것이다.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관의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의 조형물 ⓒ소셜포커스
서회의 활약에 관한 각종 조형물 ⓒ소셜포커스
적진에서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하는 서희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
적진에서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하는 서희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 ⓒ소셜포커스

서희는 경기도 이천 출신이다. 이천시는 서희의 업적을 기리고 역사교육 및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삼기 위해 “서희테마파크”를 조성했다. 부발읍 마암리에 14만㎡가 넘는 부지를 마련하고 157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2016년에 개관했다.

서희 테마파크는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역사산책로”가 특징이다. 이 산책로에는 서희 선생의 일대기를 형상화한 30종의 조형물이 방문자의 시선을 끈다. 국내 유명 조각가들이 <인연의 시작>, <서희의 성장>, <여요전쟁>, <영웅의 활약> 이렇게 4단계의 이야기로 나누어 실물 크기의 동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숫자는 100명이 넘는다.

테마파크 중심부에는 서희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관은 전시관과 체험관, 영상관 으로 구성되었다. 전시관은 <겨레의 위대한 스승 장위공 서희>, <고려의 충신으로 성장하다>, <목숨을 건 출정, 그리고 위대한 담판>, <고려인 서희, 위대한 업적을 마주하다>, <외교관 서희, 협상을 말하다>의 다섯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서희의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체험관은 누구나 외교부 대변인이 되어보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메일로 전송할 수 있다. 프로젝터 영상을 통해 미래를 이끌어 갈 아이들의 모습을 연출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영상관에서는 서희 선생의 탄생부터 충신으로 성장한 과정과 외교관 및 군사전략가로서 위대한 업적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 할 수 있다.

역사관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추모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추모관에는 표준이 영정이 모셔져 있다. 마당에서 건물의 기단까지는 4계단의 높이지만 한쪽에 경사로를 설치하여 이동약자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했다. 보통 추모시설의 경우 장애인 접근이 취약한 경우가 많지만 이 건물을 지을 때는 이러한 배려를 잊지 않은 것 같다.

역사관 건물 앞으로는 드넓은 잔디광장이 파랗게 펼쳐진다. 축제마당이다. 한쪽에는 공연무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잔디광장 주변 사방으로 아담한 정자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서희테마파크의 안내도 및 역사산책로 설명도면 ⓒ소셜포커스
역사관 내부의 모습 ⓒ소셜포커스
서희의 업적이 나타나 있는 고려사(영인본) ⓒ소셜포커스
한 어린이가 체험관에서 외교부 브리핑을 체험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추모관의 외부 전경과 서희의 영정 ⓒ소셜포커스

이 서희테마파크는 2016년도에 준공한 최신시설이다. 그러나 휠체어나 유아차 및 노인용 이동보장구(이하 “휠체어”) 이용자가 통행하는데는 제한이 많다.

이 공원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역사산책로는 처음부터 휠체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조형물 1번부터 9번까지 모여있는 <인연의 시작> 공간이 문제다. 그곳에는 서희의 탄생과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하는 많은 조형물과 설명이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금단의 구역이다. 전체 지형이 언덕을 이루는 공간이지만 수평공간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장애인 접근 문제를 조금이라도 고려했더라면 단차가 작은 진입로 한곳이라도 경사로 형태로 시공을 했어야 한다.

교육마당 한쪽에 지어진 장애인 화장실의 경우 출입구가 너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 관계법령에 의하면 모든 출입문은 90cm 이상의 유요폭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 출입구의 폭은 67cm에 불과했다.

화장실 건물 옆에 있는 음수대도 문제였다. 사방 모두가 단차로 인해 휠체어 접근이 어렵다. 이외에도 이동약자의 접근이 어려운 시설물이 다수 발견됐다.

축제마당 한 켠에 있는 무대시설도 문제다. 관계 법령에서는 모든 공공시설의 무대는 객석에서 무대 위로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축제마당에서 추모관 뒤쪽으로 이어지는 공원의 주탐방로는 전동휠체어라도 혼자서는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파른 언덕길이다.

역사관 건물 위로 누각형 휴게시설이 있지만 세 곳의 접근로는 모두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각의 높이와 주변공간의 면적으로 보아 경사로 설치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경사로는 설치되지 않았다.

지형의 고도차 등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장애인이라 해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작은 노력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음에도 방치된 결과로 비장애인과 똑같은 수준의 이용이 불가능하다면 장애인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또한 이는 법령에서 금지하는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장애인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 설치 등 제반 조치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천시는 이러한 장애인 차별시설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휠체어 등의 접근이 불가능한 야외 전시공간, 조금만 인식을 바꾸면 이동약자 접근로 설치가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데... ⓒ소셜포커스
법정의무를 외면한 야외무대는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소셜포커스
단차가 높지 않은 누각형 휴게시설, 그러나 휠체어 접근로는 없다. ⓒ소셜포커스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장애인 화장실 ⓒ소셜포커스
그 외 장애인 등의 접근이 어려운 시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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