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이 분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요?
‘염전노예’ 이 분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요?
  • 김광환 중앙회장
  • 승인 2018.07.16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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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도가 사라진 지금은 노예들의 삶이나 그들의 애환을 가늠해볼 방법은 없다. 다만 옛 이야기를 통해서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섬마을 염전에서 길게는 수 십여 년, 짧게는 1~2년 세월을 노예처럼 일하다가 겨우 그 지옥과도 같은 현장을 벗어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었다. 바로 그 유명한 ‘염전노예사건’이다. 그 피해 당사자들은 대부분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였기에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받는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그 섬에서 벌어졌던 경악할 사실 하나가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다. 피해 당사자들은 신체적 약점이 분명하고 지적 능력이 부족한 분들도 있어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상을 알면서도 피해자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현장을 나 몰라라 하며 눈감고 지낸 그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은 피해자들을 자연적으로 가두는 역할을 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섬을 오가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이것도 불가능했다. 지역 주민들이 감시자가 되었고 섬에 설치된 파출소의 경찰관도 피해자의 도움 요청을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적 약자를 지켜주고 이들의 인권을 보장해주어야 할 공인의 신분을 져버리고 염전을 운영하는 염전 주인과의 유착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런 부당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있을까하여 정기적으로 공권력이 동원되어 현장 조사가 벌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게 되면 현장에 먼저 연락해서 피해자들을 숨기거나 감추는 조치가 반복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인권유린을 지켜보면서도 오히려 방조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부당한 행위에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집단적인 범죄 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된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꺼려하는 심리상태를 ‘침묵효과’라고 표현한다. 평소 마을 공동체라는 연대감과 함께 친분을 맺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에 대한 고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그래도 피해자들을 측은히 여기는 사람 한사람은 나올 수 있을 법도 한데도 너무오랜 세월동안 불법이 그 섬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럼 현대판 노예였던 피해자들이 그 현장을 벗어난 이후의 삶은 안락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그 고되고 힘든 세월동안 자행된 인권 유린과 노동력 착취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세간의 시선을 한곳에 모으는 사건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는 것을 “뉴스를 탔다”하거나 “뉴스에 올랐다”고 하지만 오직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 이 사건은 잊혀져갔다.
본인의 인생을 옭매는 족쇄가 되었던 염전… 그 현장을 벗어나긴 했지만 타인의 위력으로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노동력에 대한 보상도 무의미할 뿐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당시 사건이 보도되면서 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가 끓어오르듯이 요란했지만 이제는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장애인단체의 활동가를 비롯한 몇몇이 중심이 되어 피해 당사자인 그 분들의 억울한 삶에 대한 조그마한 보상이라도 받게 해주어야 한다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당사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소송을 도와주는 등 노력했지만 최근 국가의 책임성을 규명하는데 실패하여 오히려 거액의 소송비용을 떠안게 됐다.
판결은 판결이니까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판결했을까! 그런데 슬픔이 밀려들고 마음이 아려온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는 사고나 사건이 일어나면 먼저 ‘이념적’으로 이해하고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새로운 관습법이 자리 잡았다. 사고를 사고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상식을 뛰어넘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가 되었음을 입증한다.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가 오히려 그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할까? 힘없는 약자를 노예로 부려먹고도 반성이 없는 염전 마을 공동체의 연장선상에 국가권력이 닿아 있다. 
지금 이 사회는 여전히 침묵하는 방조자의 관점으로 사회적 약자를 바라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광환 회장
김광환 회장

 

김광환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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