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그들만의 리그’(영어 : ‘A League of Their Own’)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미국 여자 프로 야구 리그를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KBS 및 MBC TV에서도 한국어로 더빙하여 방영한 바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야구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자들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 제목 ‘그들만의 리그’는 비주류들에게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뜻의 긍정적인 의미로 붙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뒤바뀌어서 자기네들끼리만 논다는 식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폐쇄적인 집단이 그들끼리 이익을 공유하는 것을 묘사할 때, 어떤 단체나 대회, 리그 등을 무시하거나 비하할 때 이렇게 표현합니다.
제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경상북도 의성군은 시골이지만 아파트 단지도 있고 복지단체와 복지시설도 있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면 아파트 부녀회에서 단지 내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엽니다. 아파트 단지가 소규모이다 보니 참석자는 고작 10~20명에 불과하고, 잔치라고 하지만 점심과 막걸리를 대접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주위 다른 아파트 단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지단체와 복지시설에서는 나름대로 또 경로잔치를 가집니다.
몇 년 전 필자는 아파트 부녀회장들을 만나서 다음에는 복지단체·시설과 연합 경로잔치를 한 번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결과가 훨씬 달랐습니다. 군내 체육관을 이용하니 참석자 수는 아주 많았으며, 부녀회나 복지단체·시설별로 역할을 분담하여 행사를 준비하니 재정적 부담도 덜 수 있었습니다. 또 레크리에이션 강사, 인기 가수들을 초청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그야말로 잔치다운 잔치를 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네 일반 노인과 복지시설의 독거노인, 장애인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연대하였으니 ‘사회통합’이라는 사회복지 이념을 이룬 것입니다.
사회정책은 일반적으로 누구에게(eligibility), 무엇을(benefit), 어떻게 나누어주느냐(delivery system) 하는 것과 소요되는 경비를 어떻게 마련하는가(finance) 하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한정된 인적·물적 자원으로 보다 나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 요소 중에 세 번째 요소인 어떻게 나누어주느냐 하는 문제, 즉 ‘전달체계’(delivery system)를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복지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여러 종류, 여러 형태의 사회복지기관이나 조직, 그리고 개인들이 하나의 협동적 연결망 속에서 하나의 목표를 지향해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의성군의 연합 경로잔치는 바로 제각각 활동하는 관내 부녀회와 복지단체·시설들이 하나의 협동적 연결망을 구축함으로써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사회통합이라는 하나의 궁극적 목표를 이룬 것입니다.
효율적인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의 뜻과 같습니다. 그것은 2개 이상의 재화 또는 서비스를 개별 생산 단위가 일정량씩 각각 생산하는 것보다 동시에 생산하는 쪽이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론과도 상통합니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복지자원이 빈약한 의성군과 같은 시골 지역일수록 효율적인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21세기는 열린 시대입니다. 이웃끼리 마음을 터놓고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이웃끼리 마음을 함께 합치면 지역사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훨씬 높게 세울 수 있고 이웃끼리 협동하면 목표를 훨씬 편하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함께 하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는 여성 야구팀을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이자, 인간의 삶의 애환을 그린 코미디 영화, 드라마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성별과 인종을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면 훨씬 재미있고 훨씬 큰 감동을 누릴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