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
12월의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
  • 양우일 객원기자
  • 승인 2022.12.1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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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젊은 나이에 나라의 독립 위해 순국
이동약자 이동통로 막은 주차차량 ‘눈총’

코로나19 방역지침이 완화되고 있지만 세계 경제가 어렵고 내년에도 하향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연거푸 금리가 올라 소비가 위축되고 빚을 갚아 나가기도 버겁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물류를 틀어막고 협상을 하겠다던 화물연대가 벌인 투쟁은 정부의 원칙적 대응에 백기를 들고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집단이기주의가 빚어내는 ‘불법’과 ‘떼쓰는 법’이 공공연하다. 이러한 행태는 언제 다시 터져 나올지 살얼음판이다. 사회 곳곳에서 서로 다른 생각이 대립하며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판은 뒤집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판까지 흔들려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서민의 출근길 발목을 잡고 늘어진 세월도 오래다. 전장연이 벌이는 출근시간 지하철 투쟁으로 인해 서울시민의 인내심도 한계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윤봉길의사의 매헌박물관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소셜포커스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가. 무력한 조선 왕조가 몰락하고 난 뒤 핍박과 수탈로 점철된 일제 식민시대를 겪다가 겨우 해방을 맞았다.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성취해 낸 자부심을 가질만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 근대 및 현대 역사에서 벌어진 이념투쟁은 민족의 가슴에 큰 아픔을 남겼다. 공산주의가 자유주의를 위협하며 동족상잔의 참상을 겪어야 했다. 민족은 여전히 두 동강 난 상태다.

현대사의 흐름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며 갈등과 반목 속에도 최소한 판을 뒤엎지는 않았다. 위기에는 항상 하나가 되었다. 이랬던 우리나라인데 지금은 상대편은 언제나 잘못이고 우리 편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왜곡된 가치관이 팽배해진 세상이다.

매헌박물관은 여러가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매헌기념관에선 여러가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소셜포커스

앞서 간 세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또 가족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했다. 앞선 세대가 피와 땀으로 다져낸 까닭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성숙한 질서의식과 경제적으로도 더욱 성장한 대한민국을 넘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윤봉길의사의 시게와 김구선생의
윤봉길 의사 회중시계와 김구 선생의 회중시계. ⓒ소셜포커스

초겨울 엉클어져 어지러운 세상을 잠시나마 잊고자 양재동에 있는 매헌기념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의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영웅이다. 윤봉길의사와 관련된 연관어는 김구선생, 상해홍구공원, 도시락폭탄, 장제스 등 역사적 사실과 연결된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12월 19일 순국했다.

이동약자의 이동은 도와중 휠체어가 비치되어 있다
이동약자 이동을 도와줄 휠체어가 비치되어 있다. ⓒ소셜포커스

기념관 입구부터 장애인을 위한 시설에 눈길이 갔다. 관람로는 휠체어가 수월하게 다닐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휠체어도 비치되어 있다. 화장실 입구에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이동 약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매헌기념관 동절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무료 관람할 수 있지만 월요일과 1월1일, 설과 추석 연휴에는 휴관한다. 찾아가는 길은 신분당선을 이용하면 편하다. 매헌역 5번 출구에서 100m 지점에 있다. 주차장은 10분당 300원, 장애인은 80% 할인된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좌상
매헌 윤봉길 의사 좌상. ⓒ소셜포커스

기념관은 중앙홀, 제1 전시관, 제2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홀에 윤봉길 의사의 좌상이 있다. 윤봉길 의사 사진을 배경으로 즉석 사진 촬영과 인화가 가능하다. AR과 VR을 이용한 체험도 제공한다.

제1 전시관은 윤봉길의사의 출생과 사회활동을 전시하고 있다. 성장기 공부했던 과정은 물론 생활 유품, 농촌계몽 운동 등 25년 일대기를 날자 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2 전시관은 윤봉길 의사가 상해 도착부터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상해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진 후 순국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 소개한다. 또 윤봉길 의사 유해봉환 과정을 색깔별로 구분하여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해놓았다.

​매헌 윤봉길의사의 일대연표​
​매헌 윤봉길의사의 일대기​. ⓒ소셜포커스
매헌​​매헌 윤봉길의사 의거를 결심하다​​
‘매헌​​매헌 윤봉길의사 의거를 결심하다‘ 전시관​​. ⓒ소셜포커스
사건
상해 홍구공원 폭탄투척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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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직전의 윤봉길 의사와 순국 후 모습. ⓒ소셜포커스

전시관을 천천히 돌면서 각종 전시물의 설명문을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읽었다.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독립된 나라를 꿈꾸며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던질 수 있는 기개와 용기 앞에 묵념을 드렸다. 이번 기념관 방문을 통해 윤봉길 의사 순국일이 1932년 12월 19일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내 나라 역사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윤봉길 의사 순국일을 처음으로 명확히 알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낯부끄러운 생각이 밀려들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 수 있도록 희생한 순국선열의 역사와 기록에 대해 조금 더 세심하고 진중하게 접근하며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순국 직전의 윤봉길의사와 순국후 모습
매헌 윤봉길 의사의 유해 봉환 과정이 설명돼 있다. ⓒ소셜포커스

실내 관람을 마치고 야외에 있는 윤봉길 의사 동상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보이는데 입구를 찾지 못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겨우 통로를 찾았다. 그런데 차량 두 대가 통로를 막고 있다. 비장애인은 몸을 비틀어 통과할 수 있지만, 장애인은 동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동약자 이동통로를 가로막고 주차한 차량들. ⓒ소셜포커스
이동약자 이동통로를 가로막고 주차한 차량들. ⓒ소셜포커스

우리사회는 무언의 약속이 작동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다. 이동 약자도 같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홍보하지 않아도, 비록 지키는 사람이 적거나 없어도 기본예절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이기적인 행위는 살기 좋은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길의 훼방꾼이다. 어렵고 요원할 것이다. 진정으로 어려울 것이다.

주차한 차량 뒤쪽 유리에 “아이가 타고 있다”는 경고문구가 앙증맞게 붙어 있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아이도 역시 혼자서 무엇을 온전히 할 수 없는 장애인일 것이다. 장애인도 그와 같은 입장임을 비장애인도 인식해야 한다.

야외에 설치한 매헌 윤봉길의사 동상
야외에 설치한 매헌 윤봉길의사 동상. ⓒ소셜포커스

길 막아선 자동차 두 대를 놓고 비장애인 인식을 너무 값싸게 확대 해석을 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지만 함께하는 성숙한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처럼의 나들이 길에서 만난 눈살 찌푸리게 한 경험이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머릿속에 깊숙이 머물러 쉬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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