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와 함께 다시 보는 광한루 (하)
춘향이와 함께 다시 보는 광한루 (하)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2.12.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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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기록유산인 편액으로 가득한 광한루
완월정 앞에서 보는 거대한 달 조형물도 일품

휠체어 명소 탐방기

광한루의 역사와 조선시대 방문했던 명사들의 시문을 기록한 편액으로 가득한 광한루 건물의 천장 ⓒ소셜포커스

광한루를 포함한 광한루원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적이자 관광자원이다. 광한루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이자 지방관아에서 관리했던 정원으로서 유일하게 지금까지 보존된 정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경문화사 연구에도 훌륭한 자원이 되고 있다.

광한루는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평양의 부벽루를 끼워 넣어 조선의 4대 누각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광한루는 현존 건물의 역사와 독특한 구조, 접근성 등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고 있다.

촉석루는 1960년에 복원됐고, 영남루는 1844년에 복원된 것으로 1638년생의 광한루보다는 한참 아래다. 그리고 부벽루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각 건물이 아니다. 그런데 누각 중 유일게 국보로 지정된 경회루가 주요 누각에서 제외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름난 누각은 높은 언덕이나 물가의 벼랑을 배경으로 하는 곳이 많다. 영남루나 촉석루도 그렇다. 그래서 휠체어나 유아차 등의 접근이 쉽지 않다. 장애인 등 이동약자들은 한쪽만 보거나 멀찌감치서 윤곽만 보고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남원의 광한루는 완전히 평지에 조성된 데다 탐방로 등 보행 동선에도 단차나 계단이 거의 없어 누구나 편리하게 관광을 할 수 있다. 누각의 건물도 사방에서 자세히 관찰해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곳을 열린 관광지로 선정했다.

인터넷에서 ‘광한루원’을 검색하면 남원시 홈페이지에 연결된 광한루원이 바로 나오고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네이버 지도에서도 로드뷰를 설정하면 내부 탐방로의 실제 모습까지 살펴볼 수 있다. 그만큼 정보 접근성이 양호하다는 뜻이다.

교통 접근성도 우수한 편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 전라선 KTX 등 기차편으로 남원역에 와서 남원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면 불과 5분 거리다. 남원의 장콜은 대기시간이 짧아서 좋다. 남원역에서 거리는 2.7Km에 불과하여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천천히 시내 구경도 하면서 장콜을 부르지 않고 바로 이동해도 무방하다.

광한루원은 동서남북으로 4개의 출입문이 있다. 남문에 해당하는 정문의 명칭은 청허부(淸虛府)다. 광한루의 유래가 된 월궁(月宮)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 따온 것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외 다른 출입구도 모두 솟을대문을 하고 입구에서부터 아름다운 전통미를 자랑하고 있다.

촉석루(ⓒ진주시), 영남루(ⓒ밀양시), 경회루(ⓒ경복궁관리소), 부벽루(ⓒ유홍준, 나의북한문화유산답사기), 상단좌우 하단좌우 순서임
광한루원 담장 밖의 풍경 ⓒ소셜포커스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에 유래한 청허부(淸虛附)로 이름 붙여진 광한루원의 정문 ⓒ소셜포커스

메인시설이 되는 광한루의 아름다운 건물은 북문에서 들어오면 바로 만날 수 있다. 누각은 본루(本樓)와 익루(翼樓), 그리고 월랑(月廊)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루는 사방에 전통방식의 창문(분합문)을 달아 접어서 천장에 걸어놓았다. 필요할 때는 분합문을 펼쳐서 내려놓으면 외부와 시야가 차단된 실내공간이 된다. 광한루만의 특징이다.

본루의 누마루에서 정면을 내려다보면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본래 연꽃을 심었다 하여 ‘연지’라고 부름)과 오작교, 세 개의 인공섬인 삼신산과 아담한 누정이 펼쳐진다.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광한루원 전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만,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 시설보호 및 안전상 이유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개방되지 않아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다락 아래에서 연지를 바라보아도 경치는 그만이다.

본루의 천장에는 수많은 편액이 빽빽하게 걸려있다. 광한루의 창건 및 증개축, 시설확장 등 변화가 있을 때마다 편액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조선시대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명사와 묵객들도 주변의 경치와 방문 소감을 시문으로 남겼다. 기녀들이 남긴 기록도 눈에 띈다.

역사적인 인물로는 송강 정철을 비롯하여 강희맹, 이경여, 백광훈, 김종직, 신흠(조선의 4대 문장가)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군의 장수로 왔던 천장 송대빈도 남원에 잠시 주둔하면서 광한루의 풍광에 취한 시를 남겼다.

‘광한루’라는 현판 편액은 조선 중기의 명필 신익성이 썼다고 한다. 신익성은 시문 편액을 남긴 신흠의 子이며 현존 누각을 준공한 남원부사 신감의 조카다.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현판은 이상억이 남원 부사로 있으면서 누각을 보수하고 직접 써서 걸었다

남원 광한루는 편액의 보고이다. 하나의 고건물에 이렇게 많은 편액이 남아 있는 것도 유례가 드문 진기록이 아닐까 싶다. 전북대학교 안득수 교수가 2011년에 발표한 “광한루 편액시에 나타난 경관요소 분석” 논문에 의하면 총 180여 명의 시문이 70여 개의 편액에 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설에는 200여개의 편액이 전해왔는데 일제 초기에 이 건물을 재판소와 감옥으로 사용하면서 다수가 사라졌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익루는 왼쪽에 날개처럼 달아낸 공간이다. 翼은 날개‘익’이다. 익루는 난방이 가능하다. 1층은 2층 다락과 맞닿도록 돌과 흙을 쌓고 중간에 아궁이를 만들었다. 익루는 일종의 다목적실이다. 이로써 광한루에선 추운 겨울에도 얼마든지 행사가 가능했다. 이 또한 어느 누각에서도 볼 수 없는 구조다.

월랑은 본루에 오르는 계단실인데, 1879년 광한루의 노후로 북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을 보이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설치한 공간이다. 이러한 기발한 공법은 본관의 기울어짐을 예방하고 외관으로도 화려함을 더했다. 이는 이후 누각 건축의 기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화재라 하더라도 이처럼 시대적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증·개축이 가능하다. 현재 익루가 한쪽에만 있는데 날개 역할을 하는 익루는 양쪽에 있어야 균형있게 보인다.

필자의 개인적인 욕심이기는 하지만 본루의 오른쪽에도 익루를 설치하고 내부에는 지상에서 누마루까지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어떨까? 지금보다 균형미도 좋아지고 접근성과 현 건물의 안전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만 되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광약자도 다른 사람처럼 누각의 마루에까지 올라가 볼 수 있는 평생소원을 풀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가 건물의 안전에도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건물 내부에 웬 엘리베이터냐고? 몇 해 전 일본의 대표적 문화재라 할 수 있는 오사카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사카성의 건물도 목조로 된 다층 고건물이지만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휠체어를 타고 각 층마다 편리하게 구경을 했다.

수많은 관람객이 찾는 국보급 문화재라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시설이 필요하다. 미관과 안전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장애인편의시설 전문가인 필자의 견해다.

광한루 앞의 연지 위로 펼쳐지는 삼신산의 절경은 오작교를 건너서 반대쪽에서 광한루 건물과 함께 바라보면 더욱 아름답다. 웅장한 광한루를 배경으로 대나무숲과 수백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팽나무와 수양버들, 배롱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수목들이 누정과 어우러진다.

삼신산을 조성하면서 심은 수목들은 모두가 하나하나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성리학적 가치관과 천상세계를 지향하는 도가적 이상향을 담은 것들이다. 이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진 상서로운 나무들을 학자수(學者樹)라고 한다.

똑같은 경치는 오작교 위에서 바라보면 또 새로운 모습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은하수의 오작교는 1년에 한 번만 열리는지만 광한루의 오작교는 항상 열려있다. 이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믿음과 함께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싹튼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광한루원의 핫플레이스다.

광한루 앞의 은하수 연지는 쌍교를 지나 조롱박처럼 새로운 연못을 이룬다. 그리고 완월정이라는 수중누각이 또 다른 한식 건물의 미모를 선보인다. 건물의 모습은 누각이지만 왜 정자식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완월정은 춘향제 행사 등에 단골 무대가 된다.

완월정에서 연못 너머로 잔디밭이 펼쳐지고 보름달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이 서 있다. 광한루를 월궁과 이어주는 상징물이다. 이 인공 달은 야간에 보아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본루와 익루, 월궁으로 구성된 광한루의 누각 ⓒ소셜포커스
600년의 역사를 지켜온 고목이 수려한 광한루 누각의 주변 모습 ⓒ소셜포커스
광한루원의 야경과 인공 달빛 ⓒ소셜포커스

탐방로를 계속 나아가면 월매집과 춘향관이 나온다. 탐방로 곳곳에서는 조형물로 장식된 춘향전의 스토리텔링이 이어진다.

춘향의 생모인 월매의 이름을 딴 월매집에는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초가별채(부용당)와 본채 및 행랑채 등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조형물과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부용당 앞에는 물레방아와 함께 춘향과 이도령의 조각상이 앙증맞게 꾸며진 미니 연못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월매집 뒤뜰에는 월매가 매일 사위 이도령의 과거급제를 기원했다는 돌탑이 보인다. 이름하여 ‘장원급제기원단’이다. 지금도 입시철이 되면 수험생 가족들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1992년 완성된 춘향관에는 유화로 그린 9폭의 춘향 일대기와 서화류, 장신구, 서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병풍 속 이미지를 통해 춘향을 만날 수 있으며, 춘향전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뮤지컬, 오페라, 창극 등 춘향 관련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광한루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동약자의 접근성과 관람환경은 우수한 편하다. 그러나 아쉽기는 하지만 옥에도 티는 있는 법이다.

우선 관리사무소(관광시설사업소)의 접근이 어렵다. 광한루는 별도의 방문자센터가 없기 때문에 관광객이라도 문의나 건의사항 등 민원이 생기면 관리사무소로 찾아간다. 그러나 출입구는 계단이라서 이동약자는 방문하기 어렵다. 바로 옆의 다목적 건물도 마찬가지다. 지대가 약간 높은 건물 뒤쪽으로 가보니 뒷문도 한 뼘도 안 되는 단차가 휠체어를 가로막는다. 할 수 없이 관계 직원을 전화로 불러내야 했다. 남원시 관광시설사업소는 관공서의 청사 건물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출입을 차별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춘향관 뒷쪽으로 한시길이 있다. 광한루의 명품인 편액에서 훌륭한 한시들을 골라 시비(詩碑) 등 조형물로 장식해둔 곳이다. 그러나 접근로는 돌계단이거나 언덕길의 노면은 자연석을 깔아놓는 바람에 요철이 심하여 휠체어나 유모차의 접근이 어렵다. 경사로 대체가 가능한 계단이나 요철구조의 노면은 공원 등의 공중시설에서 하루빨리 퇴출시켜야 할 공법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및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고 아기 키우기 좋은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도 개선이 꼭 필요하다.

광한루원을 나오면 가까이에 추어탕 골목이 있다. 남원은 춘향골이기도 하지만 추어탕으로도 유명하다. 전국에서 남원추어탕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인 식당은 7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각자의 상호와 함께 남원추어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 보니 남원추어탕은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가 되어버렸다. 광한루를 구경하고 추어탕의 본고장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먹고 나야 남원 구경을 제대로 했다고 할 것이다.

춘향전의 스토리를 형상화한 조형물들 ⓒ소셜포커스
춘향과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약속한 월매집의 초가 별채 부용당과 그 앞의 연못 ⓒ소셜포커스
월매집 행랑채와 안채 및 뒤뜰의 장원급제 기원단 ⓒ소셜포커스
광한루원을 관리하는 남원시 관광시설사업소 건물의 정문과 후문, 후문 쪽을 조금만 개선하면 휠체어 통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셜포커스
계단과 요철이 심한 노면으로 장애인 등 이동약자 접근이 어려운 시설들 ⓒ소셜포커스
광한루 편액의 명시를 골라 조형물로 나열한 한시길, 조선의 4대 문장가 신흠과 관찰사 양성지의 한시도 보인다.
광한루 편액의 명시를 골라 조형물로 나열한 한시길, 조선의 4대 문장가 신흠과 관찰사 양성지의 한시도 보인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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