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정책서 빠진 '최중증 뇌병변장애인'
돌봄정책서 빠진 '최중증 뇌병변장애인'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3.03.03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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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보호센터 이용자 13명 시설 퇴출 위기
장애유형별 전용 거주시설, 프로그램 등 부재
중증 장애인(CG). ⓒ연합뉴스
중증 장애인(CG). ⓒ연합뉴스

[소셜포커스 김은희 기자] = 평일 오후 5시가 가까워져 올 때면 경기 고양시 행신동의 종합사회복지관 앞이 시끌벅적해진다. 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나서는 자식들을 맞이하기 위해 복지관에 도착한 부모들이 로비에 모여들면서다. 교실 한 곳에서 나오는 이들 대부분은 휠체어를 탄 뇌병변장애인, 이들을 맞는 건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우리 애는 센터에서 집에 갈 때쯤 아빠랑 통화하는 게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일이에요.”

지난 2일 복지관 앞에 앉아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던 윤혜숙(70·여)씨는 아들을 ‘아이’로 칭하며 웃어 보였다. 올해 서른다섯 살이 된 막내아들 홍철씨는 여전히 그에겐 아이다. 대화하거나 음식을 씹어 삼키지도 못하는 아들이지만, 윤씨는 그런 아들에게도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안다. 사람을 만나고 눈을 맞추는 걸 좋아하는 아들인 만큼 외출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2시간 넘게 걸려도 센터에 꼬박꼬박 나오는 이유다.

“일주일에 다섯 번 오던 걸 이젠 세 번으로 줄였어요. 내 무릎도 그렇고 힘들어서, 어디 나가기가 싫어요. 갈 때마다 씻고 챙겨야 하는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

덕양행신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주간보호센터는 홍씨에겐 사실상 유일한 외출처다. 나이가 지긋한 형제 둘 모두가 독립한 이후엔 노부부가 그와 함께 어딘가 다니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이다. 10년 전 학교를 나온 후 홍씨가 집에만 머물게 되자 그가 길거리로 나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땐 매일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했어요. 우리 같은 중증장애인들이 고양시에서 갈 곳이 한 곳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화재 대피용 비상구도 없는 오피스텔 같은 데를 센터라고 갔었죠. 그거라도 감지덕지였으니까.”

 

돌봄 부재에 놓인 ‘최중증’ 장애인

우여곡절 끝에 홍씨는 이곳 센터에 정착했다. 그처럼 휠체어를 탄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별도 반을 둔 고양시 기관은 이곳 덕양행신복지관을 포함해 2곳뿐이다. 고작 정원 21명 정도지만, 휠체어를 타지 않은 경증 발달장애인들과 통합반이 불안한 이들 부모들에게 이마저 다행이다.

“휠체어는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무기가 될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반대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해가 될 수 있는 거죠. 사회통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지만 물리적인 특성상 분리는 어쩔 수 없어요.”

뇌병변장애 아들을 둔 최버들(52)씨도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 한다. 현재 뇌병변 반에 속한 13명은 올해 연말부터 순차적으로 센터를 나가야 한다. 최대 6년 이용할 수 있는 기한을 다 채웠기 때문인데, 이들은 휠체어를 탄 뇌병변장애인 전용 반이 구성된 곳으로 갈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다.

“공무원들은 한 두 명씩 자리가 나는 다른 센터 통합반으로 가거나 (센터 이용이 어려우면)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 등을 이용하라고들 해요. 지역 내에서 활동지원사가 배치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시에선 서울 은평구·서대문구에 있는 기관들을 알려주죠. 지원사들이 집으로 오는 데에만 2시간이 걸리는 데도요.”

이는 뇌병변장애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 정도 판정 기준에 따라 경증과 중증으로만 분류되는 이면에는 홍씨 사례처럼 뇌병변과 함께 지적·지체·자폐·섭식 장애 등을 함께 가지고 있음으로써 타인에 의한 돌봄이 지속해서 필요한 장애인들이 있다. 편의상 ‘최중증’으로 부르는 이들이다.

제도적으로 뚜렷하게 분류하지 못하는 이들은 모든 돌봄 지원 서비스의 기피 대상이다. 거동은 물론 의사소통이나 섭식 등 대부분 행동에서 어려움이 크다 보니 업무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경기도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에 따르면, 고양시 주간활동 제공기관 9군데 이용자 194명 가운데 뇌병변장애인은 1명으로 0.5% 비율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별도 시설을 갖추고서 사회복지사가 상주하며 돌봄이 이뤄지는 센터는 가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돌봄 수단인 셈이다.

 

결국 집으로 가야 한다, 탈시설의 이면

“우리가 전용 센터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건 (사실상) 모든 뇌병변장애인 정책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근데 이걸 자꾸 개인 문제로만 축소하는 것 같아요. 지자체에선 어쩌다 이렇게 13명이 (당장 해결할) 민원인이 됐다고만 보는 거죠.”

최씨는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에서 활동하며 장애 유형에 따라 특성에 맞는 정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센터의 경우도 시가 별도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중증 장애에 대한 세부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지자체나 정부의 뇌중증장애인 이해 부재가 현 사태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당장 이곳 센터 중증장애인 대기자 수만 23명이래요. 입주를 시작한 향동·덕은지구처럼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로 인해 장애인 유입이 계속되고 있지만 경기도나 시에는 어떠한 통계도 없어요. 도 기저귀 지원 정책이나 장애인 급여 등을 통해서도 중증장애인 인구 추산이 가능할 텐데 ‘수요가 적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떠나 집에 남겨질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에게 지자체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는 다른 센터 내에 휠체어 출입 인프라 등을 개선한다는 단편적인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부모들은 이달부터 센터들을 직접 돌면서 뇌병변장애인 반을 별도 구성하고 휠체어 인프라도 함께 증축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러 다녀야 한다.

마흔을 앞둔 홍씨를 보는 윤씨의 마음은 더 심란하다. 센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부 기관에선 이용 조건으로 ‘40세 이하’를 달고 있다. 이용기간을 연장하더라도 홍씨는 5년 뒤면 정든 센터를 무조건 떠나야 한다. 자기 무릎조차 버거운 윤씨는 최근 홍씨가 갈 수도 있을 만한 중증장애인요양시설도 알아봤다고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마저도 대기자 수가 많아 홍씨와 같은 경우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인권 문제로 시설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오히려 우리 애 같은 장애인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부부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고 했어요. 근데 요즘은 차를 타고 가다가도 왈칵 눈물이 나요. ‘우리도 가면 어떡하지’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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