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장애인실 편법·얌체 이용 ‘눈쌀‘
호텔 장애인실 편법·얌체 이용 ‘눈쌀‘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3.04.28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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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로 두고 비장애인에게 고가 판매
장애인 사칭 비장애인의 얌체 예약도

얼마 전 광주의 한 호텔에 겪은 황당한 일이다. 예약하려고 장애인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장애인 객실은 따로 없으나 각 객실은 휠체어 출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일반 객실은 마감되었다며, 상급실(디럭스급)은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호텔 직원이 소개하는 디럭스급으로 예약하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를 다시 확인했다. 당연히 요금도 더 들었다. 

다음 날 저녁, 그 호텔을 방문하였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출입문을 열어보니 방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단차가 있었다. 불과 10㎝도 안 되지만 전동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난감했다.

“제가 분명히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는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을 주시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프런트에 따졌다.

이미 밤이 되어 장애인실이 비어있는 호텔을 찾아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해맬 수도 없는 처지다. 또한 마땅한 숙박시설이 나오지 않으면 꼼짝없이 노숙해야 할 지도 모른다.

불편하기 짝이 없겠지만 할 수 없이 그대로 쓰기로 했다.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비상조치라도 해달라고 했다. 문턱 앞에 두꺼운 책자를 계단식으로 쌓아 전동휠체어가 위험을 무릅쓰고 간신히 방으로 올라갔다.

종업원에게 “이런 규모의 호텔에 장애인실이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종업원은 객실 60개뿐이라서 장애인실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객실 30개 이상을 운영하는 숙박시설에 대하여 장애인 객실 의무화 규정이 있다. 보유 객실의 0.5% (2018.1.30. 이후 시설부터는 1%) 이상의 객실에 “장애인 등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조, 바닥의 재질 및 마감과 부착물 등을 고려하여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산정된 객실 중 소수점 이하의 끝수는 이를 1실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30실이 넘는 업소는 장애인 객실을 최소한 1실 이상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그 이후에 확인되었다. 며칠 후 장애인 의무객실 미준수에 대해서 관할 구청에 확인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에서 회신이 왔다. “건축물대장 현황도에 장애인실이 나와 있고, 현장 확인 결과 장애인실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호텔은 왜 필자에게 장애인실이 없다고 말했을까? 분명히 이미 예약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소규모 호텔이라서 장애인실이 없다고 했다. 숙박 이튿날 아침 조식 시간에 다른 장애인이 식당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방을 다른 장애인이 이용한 것 같지도 않았다.

휠체어 여행을 많이 하는 한 장애인 여행작가로부터 장애인실 편법운영 실태를 듣고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크워크 전윤선 대표 얘기다.

그는 “숙박업소의 장애인실은 같은 등급의 객실이라도 좀더 넓은 방이라서 일부 업주들은 그 객실을 비장애인 손님에게 상급실 요금을 받고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실 장애인실은 침실이나 화장실이 휠체어 회전공간 등을 위해 면적이 넓고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진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손님을 장애인이 아니면서 장애인이라고 속이고 장애인실을 일부러 찾아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같은 요금으로 넓은 방을 이용할 수 있다는 얌체같은 생각이다. 이런 사람들이 먼저 예약을 해 버리면 정작 장애인실이 필요한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다. 더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위가 무슨 대단한 비결인양 “좋은 객실 싸게 이용하는 방법”이라며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악의적인 편법운영 업소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숙박 사업자들은 장애인실을 예약받을 때 실제 장애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얌체손님이 많은 한 장애인이 받은 피해는 상당하다. 이런 일은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숙박업소에서도 쉽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국내에 지점이 많은 어느 외국계 호텔을 이용한 적이 있다. 장애인실을 이용하려고 하니 장애인증명서(복지카드)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좀 언짢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하고, 오히려 그 호텔이 고맙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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