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코로나19 긴급명령 ‘남 일(?)’
사법부, 코로나19 긴급명령 ‘남 일(?)’
  • 윤현민 기자
  • 승인 2023.07.0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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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법인 서면결의 불가피성 인정 안돼“
집합금지명령 등 사회환경 외면한 법리판단 지적
법원.
법원로고. ⓒ연합뉴스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사법부가 코로나19 비상시국에 역행하는 판결로 논란을 자초했다. 정부 집합금지명령에도 대면회의를 요구하는 취지로 판시하면서다. 긴급명령상 부득이하게 서면결의로 법인 정관을 바꾼 효력을 뭉갰다. 하급심은 서면결의 불가피성을 인정했지만, 상급심이 이를 뒤집었다. 당장 일각에선 사회 변화상과 동떨어진 퇴행적 판단이란 지적이다.

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엄상필)는 최근 ㈔한국지체장애인협회(지장협) 회원 A씨 등 8명이 지장협을 상대로 낸 ‘임시대의원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원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날 재판부는 “(회장 연임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은 집회 제한조치의 완화 여부를 살펴 회원들이 물리적으로 참석하는 총회 개최를 시도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급박한 결의를 요구하는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민법상 사단법인이 법률 또는 정관에서 서면결의를 허용하는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면만으로 총회 결의를 대신했다면, 절차상 하자가 중대해 애초 결의 자체가 없던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 결과, 개정 전 조항 단서에 따라 입후보 자격이 없는 B씨를 회장으로 선출한 회장선출 결의는 (지장협 )정관을 위반한 것으로 무효”라고 밝혔다.

바뀐 사회환경을 고려한 1심 판단과는 딴 판이다. 당시 재판부는 코로나19를 긴급재난으로 보고 서면결의 효력을 인정했다. 

앞서 서울남부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이진화)는 같은 사건을 두고 “코로나19로 인해 다중이 모이는 집회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지장협이) 정관변경안건의 찬반을 서면으로 결의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이런 방식이 총회 결의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볼 수 없어 중대한 절차상 하자는 아니다”라고 했다.

지장협 임시대의원총회 재판경위.

이런 판단엔 지장협의 물리적인 총회 소집 노력도 작용했다.

지장협은 지난 2020년 12월 11일 이사회를 열어 정관을 고쳐 회장 연임제한 규정을 없애자고 뜻을 모았다. 관련 총회는 화상회의나 서면결의 중 추후 결정키로 했다. 이미 정부가 5인 이상 집합금지 긴급명령을 발동해서다. 다만, 2.5미터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하에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지장협도 이런 정부 권고사항 속에 총회를 열 장소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정부 긴급명령 탓에 장소를 선뜻 내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지방 대형 호텔과 야외운동장을 구했지만, 모두 관할 지자체가 반대했다.

결국, 지장협은 별 수 없이 서면결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우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부터 확인했다. 문의결과, 복지부로부터 ‘정관에서 대면으로 총회를 열어야 한다는 정함이 없으면, 서면결의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얻었다. 이에 지장협은 2020년 12월 16일 대의원들에게 정관변경 안건과 서면결의서를 우편발송했다. 이후 이들로부터 제출받은 서면결의서에 따라 정관변경 찬성을 결의했다. 재적대의원 454명 중 찬성 449명, 반대 3명, 미회신 2명이었다. 이듬해 1월 4일 복지부도 서면결의에 따른 정관변경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번 항소심에서 1심의 법리 판단이 다 엎어졌다. 긴급명령과 비상시국에 따른 사회변화도 아랑곳없는 모습이다. 그러자, 법조계 안팎에선 시대착오적인 법리해석이란 비판이 있다. 재난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정부 대응을 무색케 했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나온 정부 긴급행정명령의 조건과 취지에 대한 고려 없이 평시와 같은 법 이행을 강요하는 건 사법부의 편향된 법리해석으로 비춰질 수 있어 좀 더 신중히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또, 장애인단체 시민활동가 C씨는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비영리법인이 집합금지명령을 어기고 대의원을 한데 모아 총회를 열다간 당장 등록허가가 취소될 게 뻔하다”며 “법원이 이런 현실적 고려없이 사건을 판단한 걸 보면, 여전히 자구 해석에 갇혀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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