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장애인들의 ‘사랑(舍廊)’, 다음 20년을 향하다
영천 장애인들의 ‘사랑(舍廊)’, 다음 20년을 향하다
  • 김은희 기자
  • 승인 2023.08.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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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장애인 복지 현장을 찾아서 ⑮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식당 문을 연지 5분 여만에 10평도 채 안되는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 식당이 이용자들로 가득 찼다. ⓒ소셜포커스
식당 문을 연지 5분 여만에 10평도 채 안되는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 식당이 급식 이용자들로 가득 찼다. ⓒ소셜포커스

지난 4일 오전 11시를 넘긴 시간,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 1층이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이르게 복지관을 찾은 이들로 로비가 금세 부산해졌다.

복지관에선 매일 무료로 장애인 이용자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이용법은 간단하다. 정문 입구에서 보이는 안내실에서 등록장애인임을 확인받고 무료 급식권을 받는다. 식당에 입장하면 비치돼 있는 바구니에 식권을 담은 후 배식받으면 된다. 장애인이 아닌 경우엔 3천원을 부담해야 한다.

식권을 손에 쥔 이들이 식당 문 앞에 줄을 선다. 금세 복도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수십명 줄이 이어졌다. 영천에서 이 급식소를 이용하는 장애인 수는 지난해 기준 1만5천528명. 올해는 7월 기준 1만4천명을 넘겨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매일 100명 넘게 급식을 먹곤 해요. 여름철엔 힘들기도 하지만 보람이 더 크죠. 농사철로 정말 바쁠 때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참여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날 조리와 배식 봉사에는 지역 봉사단체 자연보호영천협의회 소속 이경석(63)·배영선(62)·박태경(67)씨가 함께했다. 봉사자들은 매일 꼬박 4시간씩 구슬땀을 흘리며 반찬을 만들고 설거지한다. 이용자들에게 보다 풍성한 식탁을 제공하고자 꾸준히 활동 중인 단체는 9곳가량이다.

식당 문이 열리기 앞서 내부는 배식 준비로 분주하다. 이날 메인 반찬인 파불고기와 된장국 배식은 봉사자 담당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겐 직접 식판을 가져다줘야 한다. 식탁 13개가 빼곡한 내부는 휠체어 장애인이 이동하기엔 다소 험난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자 줄을 선 이용자들이 안으로 들이닥친다. 10분 만에 대부분 식탁이 다 찼다. 야외에 설치된 평상에도 일부는 자리 잡았다.

이헌희(56)·박명순(55) 부부는 거의 매일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고 했다. 버스로 5분 거리에 사는 그들 부부는 복지관에 들르는 김에 재활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하거나 별도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전했다. 이씨는 “늘 밥맛이 좋다. 덕분에 더위도 피할 겸 복지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간다”고 설명했다.

식사를 마친 이용자들 대부분은 복지관에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한낮 최고기온이 35℃까지 올라갔던 만큼 1층과 2층에 조성된 무더위 쉼터가 특히 붐볐다.

김상일(73) 어르신은 “사회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밥을 먹게 해주는 게 의미가 있지 않겠냐”며 “자연스레 지역 내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영천 유일 장애인복지관, 서비스 체계 중심에 서다

지난 4일 경북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 정문. 정오 시간대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 방문한 이용자들의 전동스쿠터·휠체어 등으로 복지관 앞 공간이 붐빈다. ⓒ소셜포커스

대구 위성도시인 경북 영천시의 장애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013년 7천383명이었던 장애인 수는 10년 만에 8천573명으로, 1.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여기서도 65세 이상 고령자 수는 5천157명으로, 무려 60.2% 비율을 차지한다. 영천에 거주하는 장애인 3명 가운데 2명은 경제활동인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역 내 유일한 장애인복지관인 영천장복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갈수록 많아지고 다양해지는 지역 내 복지 서비스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 앞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복지관이 이용자들에게 무료 급식 키트를 무료로 지원한 것처럼 상황과 여건에 따라 바뀌는 복지 패러다임에도 적응해야 한다.

영천장복은 지역사회와의 상생에 눈을 돌리고 있다. 복지관 후원위원회 활동이 대표적이다. 당초 복지관을 지원하고자 모인 시민들은 점차 문 밖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영천교육지원청과 40여개 학교 등과의 논의를 거쳐 후원위 장학생 15명을 선정해 장학금 20만원씩을 수여했다. 장애학생 13명과 장애인가정 학생 2명 등이다.

박찬용 후원회장은 “부족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영천청년상우협의회, 라이온스클럽 등 지역 봉사단체에 몸담고서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왔고, 2021년엔 복지관 후원위 회장을 맡았다.

박 회장은 “수여식에서 학교 진학을 포기하려다 장학금을 받으며 마음을 바꾼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존 복지 안전망엔 걸리지 않는 사각지대가 참 많더라”며 “어깨가 무겁다. 후원위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 다행히 좋은 분들이 참여하고 있는 덕분에 구성원을 늘리고 사업 규모 자체를 키워서 나눔문화 확산에 계속 힘써보자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 후원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용 씨가 소셜포커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올해 후원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18명이다. 교육청이나 복지시설 관계자 4명 외에 나머지 14명 모두는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 시민들이다. 연령층도 다양하다.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한다. 각자 하는 일은 달라도 지역사회 발전에 관심 많은 이들이 모였다 보니 “회의만 하면 일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박 회장은 “봉사 마인드를 갖춘 좋은 분들이 모였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며 “올 여름철 복달임 행사를 앞두고도 위원들의 후원이 이어졌고, 나중에 보니 사업 규모만 3배 넘는 100명 후원으로 늘어 있더라. 모두가 똘똘 뭉쳐서 함께 해주시는 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토종 기업과의 협업으로 장애인 경제적 자립 도모

영천장복에서도 지역과 직접 연계하는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역 기업들과 연계하는 중증장애인 민간위탁고용 사업이 있다. 일을 원하는 장애인과 고용을 원하는 민간 기업을 연결하는 것으로, 복지관 소속 재활상담사가 구직 상담부터 업체 배치와 훈련, 사후관리 등을 도맡아 담당한다. 최근 5년간 영천에서 취업한 중증장애인 수만 51명가량으로, 꾸준히 자체 목표를 달성하면서 2020년과 2022년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민간위탁 지원고용사업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지난 2021년 복지관을 통해 세탁업체 ‘신대영사’에 취업한 김다혜(23·지적장애)씨는 노동 자체에 만족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인접한 경북 경산시에 거주 중으로, 특수학교 졸업 이후 진로를 찾고자 복지관 고용 사업에 참여했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인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3년 차다. 의료기관에서 보내온 이불을 세탁하고 분류하는 파트에서 일한다. 하루 평균 9시간씩 근무하며 번 월급을 저축하며 가족들과 돈 관리하는 방법도 배우는 모습이다.

김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나 사장님이 잘 대해주셔서 좋다”며 “복지관 선생님도 자주 봐서 좋다. 열심히 잘 일하겠다”고 말했다.

ⓒ소셜포커스
4일 경북 금호읍에 소재한 의료기관 전문 세탁업체 ‘신대영사’에서 근무 중인 김다혜씨 모습. 계속되는 반복 작업에도 성실히 이불을 개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재활상담사인 최윤민 복지관 직업지원팀장은 최소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장애인들이 근무 중인 22개 사업장을 방문한다. 꾸준한 모니터링으로 이들이 안정적으로 근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최 팀장은 “다른 업체도 많았지만 다혜 씨가 상담 과정에서 친구들이 있는 해당 사업장에 관심을 보였고, (업무 강도가 높은데도) 취업 이후 잘 버티고 있다”며 “사실 누구에게든 노동은 어려운 일이다. 낯선 환경에서 익숙지 않은 일을 하면 누구든 흔들릴 수 있지 않나. 다만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 데 가서도 포기하기 쉽다고 본다. 최대한 이들이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며 함께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20년을 향해…‘영천’에 걸맞은 장애인복지관을 꿈꾸다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역 중심지에 있는 시청과는 불과 300m 거리에 있다. 행정적으로는 편리한 위치이나 사회 서비스 서비스 기관으론 한계가 있다. 행정 구역으론 1읍10면5동으로 나뉘어있는 영천 구석구석 복지 사업을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1년 취임한 권순종 관장은 시민들의 복지관 접근성에 고민이 가장 컸다. 일단 시와의 논의를 거쳐 지난해 리프트버스를 새로 도입했다.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타고 내릴 수 있는 버스는 매일 세 차례씩 복지관에서 출발해 정해진 노선을 돈다. 장애인 누구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제 그는 노후화된 복지관 시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2004년 3월 개관한 이후 협소한 건물을 사실상 ‘쪼개기’ 형태로 사용해 왔으나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영천장복은 3층 높이에 연면적 1521㎡인 본관, 장애아동재활치료센터로 쓰고 있는 별관(연면적 403㎡) 등 2개 동으로 나뉜다. 접근성이 좋은 본관 1층에만 보호작업실, 쉼터, 식당 외에도 정보화교실, 문화교실, 구강보건실, 목욕탕, 세탁실, 프로그램실 등이 밀집해있다. 헬스기기가 있는 재활스포츠센터 등 일부 시설의 경우 복지관 마당에 위치해 있어 주차할 공간도 열악한 상태다. 새로 들인 셔틀버스는 인근 공원 둔치 주차장에 둘 수밖에 없다.

지난해 복지관을 방문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한 연간 이용자 수 20만4천309명이었단 것을 고려하면, 1인당 점유한 면적 규모는 3.4㎡로 거의 한 평꼴에 불과하다.

다음은 권순종 관장과의 일문일답.

권순종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장 모습. ⓒ소셜포커스

2004년 문을 연 지역 유일 영천장애인종합복지관을 소개해달라.

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개선, 사회참여확대, 권익 및 자립을 도모하여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운영 법인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의 설립 목적이다. 우리 복지관의 비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장애인 당사자주의’ 정신에 입각해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년 3월 16일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있다. 경북에서도 역사가 꽤 된 만큼 직원 개개인의 역량이 매우 훌륭하다고 자랑하고 싶다. 어떤 사업이든 믿고 맡길 수 있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관장이 사업 하나하나에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말한다.

다만 취임 이후 장애인 이용자의 욕구를 최대한 반영해 줄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닌 만큼 복지관도 지역사회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란 말이 있듯이, 복지관이 선한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부터는 관장실을 늘 열어둔 채 복지관을 찾는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1년 취임한 이후 3년 차다. 기억에 남는 사업이 있다면.

취임 이후 영천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을 만났다. 복지관에서 장애인 가구를 비롯한 취약계층 지원을 하고 있으니, 행정적으로 한계가 있을 때 연계해달라고 제안했다. 기본적으로 수행 중인 세탁·구강보건·건강관리·밑반찬지원 등 재가복지 지원 외에도 외부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하는 사례 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진행하고자 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민·관 사례 회의 등을 통해 복지관을 중심으로 위기가구 문제 해결을 위한 연결고리가 되고자 한다. 숨겨져 있는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사회 안전망 속으로 끌어오는 게 진정한 복지관의 몫이라고 본다. 물론 라면 한 박스씩 들고 집집마다 뛰어다니느라 직원들이 늘 고생하고 있다.

20주년을 맞은 복지관의 향후 과제는. 

현재 복지관은 오래된 만큼이나 물리적으로도 열악하다. 영천 장애인 수는 지속해서 늘어나는 중이고 과거보다 훨씬 많은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애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물리치료나 운동치료가 가능한 생활체육 공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평생교육을 위한 시설도 조성해야 한다. 현재 민선8기 시정부가 추진 중인 장애인 체육시설이 인접해야 한다고 본다. 마치 내 집 같이 편안하면서도 시민 모두를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서비스 기관을 밀집할 필요가 있다. 

지역에선 유일한 장애인종합복지관인 만큼 20주년에 걸맞은 시설을 만들자고 지역사회에 제안하고 있다. 장애인을 비롯해 시민 모두를 위해 역할을 다하는 시설이 되도록 취임한 동안 복지관을 제대로 잘 짓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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