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애인 공무원의 순직을 보며
어느 장애인 공무원의 순직을 보며
  • 조봉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8.2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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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했던 장애인 공무원, 악성민원에 스러져
오산장례문화원에 차려진 故 강윤숙 민원실장 빈소. ⓒ소셜포커스

얼마 전 한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일부 학부모들의 갑질 행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그동안 교육현장에 만연했던 교권붕괴 현상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교권 향상과 바른 교육을 리드해야 할 교육부 어느 사무관의 과거 일탈행위가 국민들을 또 놀라게 했다. 학부모가 어처구니없는 갑질 행위로 한 교사를 아동학대범 누명을 씌워 징계를 받게 하는 등의 만행도 서슴치 않은 것이다. 이 교사는 나중에 무죄로 밝혀졌다.

학부모의 민원 한마디에 앞 뒤 확인도 없이 조용히 덮기 위해 교사징계부터 해버리는 교육현장의 한심한 관행도 뭇매를 맞게 되었다.

아무튼 이러한 이슈들이 제도개선을 유도하고 우리 사회에 자성론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교육현장만은 아니었다. 교육과 함께 국민의 4대 의무의 하나인 납세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사회의 병폐적인 문제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사회, 분노와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조장하는 사회, 정말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강윤숙 45세, 경기도 화성시의 동부지역와 오산시를 관할하는 동화성세무서의 민원실장이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명랑하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강 실장은 국립세무대학을 졸업하고 국세공무원으로 임용된지 22년째다. 그 중 절반 이상을 민원실에서 근무했다. 국세청의 민원실 업무에 관한 한 보기드문 실력자였다. 필자의 과거 공직시절 동료이자 훌륭한 후배직원이었다.

사실 민원실이라는 게 수시로 발생하는 악성민원 등으로 업무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곳이다. 특히 국가재정 조달을 위한 징세권을 행사하는 세무관서의 속성상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강 실장은 초급직원 때부터 민원실의 장기근무를 묵묵히 감내했다. 맡은 일에 충실하고 특유의 성실과 명랑함으로 동료나 선후배 직원들로부터 신망도 두터웠다. 평소 민원인들의 칭찬도 자자했다.

그런 강 실장은 실제 객관적인 업무성과도 뛰어났다. 상반기 전국 민원실장 업무평가에서 133명 중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 7월 24일이었다. 강 실장은 그날 기쁜 소식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휴대폰 문자로 자랑을 했다. 남편의 축하도 받았다. 그러나 부부간의 이 기쁜 소통이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상상인들 했을까?

그날도 납세자의 무리한 요구로 부하직원이 곤란을 겪고 있는 민원처리를 대신 맡았다. 그리고 납세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으나 그 이후 깨어나지를 못했다. 그리고 24일간 사투를 벌이다가 지난 8월 16일, 결국 운명하고 말았다.

유족의 입회 하에 확인한 CCTV화면에는 강 실장이 민원인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두어 번 정도 신체적 이상반응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민원인은 상황을 즉시 인지하지 못했는지 한참 후에야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즉각 조치를 했더라면 골든타임을 지키지는 않았을까?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강 실장을 본 민원인은 “팀장 같지도 않은 사람”이라며 모욕을 줬고, 쓰러진 뒤에는 “쇼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했다고 한다.

조문 겸 취재차 강 실장의 빈소가 차려진 오산장례문화원을 방문했다. 입구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화환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화환 숫자만으로도 강 실장이 평소 주변에 남겼을 두터운 신망을 느끼게 했다. 장례식장에는 조문과 안내를 위해서 많은 동료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한편 김창기 국세청장은 강 실장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부터 병원으로 직접 문병을 가서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즉각 전국 세무서 민원실 근무 직원들에게 카드형 녹음기를 배포하게 하는 등 악성민원 예방조치 및 직원보호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음성을 들을 수 없는 CCTV 한계를 보완한 것이다.

오호선 중부지방국세청장도 지난달 31일 문병을 하고 관계자들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강백근 세무서장도 강 실장이 쓰러진 직후 내부 게시판에 쾌유를 기원하는 글을 남겼으며 공상에 따른 요양신청 절차를 밟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강 서장은 “임대청사 등 열악한 조건에서도 전국 1등의 민원실을 만들었던 부하직원이 공무중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강 실장은 국세청 내부망 게시판에는 쏟아지는 동료들의 회복기원 메시지를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추모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와 함께 악성민원 방지 및 직원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주문하는 글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도 확인되었다.

강 실장의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필자가 조문과 함께 언론인의 입장으로 방문했다고 하니 금새 표정이 달라지면서 경계를 했다. “언론에는 할 말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 상중이라 정황이 없는데 왜 그런 걸 묻습니까? 아까도 어느 신문에서 연락이 왔기에 바로 끊어버렸습니다.”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 실장의 상관이라면 “참 훌륭한 직원이었는데 이렇게 보내서 너무 참담합니다.”라고 하면서 마지막 가는 부하직원의 명예를 좀 세워줄 수는 없었을까? 그리고 고위층에서 염려하고 있다는 억측과 와전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경위를 좀 제대로 설명해줄 수는 없었을까?

한 유족은 이런 말도 전했다. “언론 취재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적극적 공무수행 중 일어난 순직인데 보도자료를 통해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명예라도 좀 챙겨줬으면 좋으련만 세무서 윗 분들은 이번 일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좀 꺼려하신다고 합니다.”

다른 직원이나 간부들의 언론기피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런데 언론을 피하기만 하는 것과 적극 활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현명할까?

다른 세무서의 한 직원은 이런 말도 했다. “동화성에서 자꾸 쉬쉬하는 것 같아서 저희들도 좀 답답해요.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공론화가 좀 필요한데...”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조용히 넘기려고만 하는 관료 사회의 잘못된 습성은 우리 교육을 붕괴상태로 몰아갔고 공직사회에는 악성민원의 증가를 가져온다.

많은 언론들이 강 실장의 안타까운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필자가 머물러 있는 1시간 동안에도 2곳의 유력 언론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세무서 간부들은 피하려고만 하니 답답하다. 상중에 경황이 없을 유족과 인터뷰하기에 바빴다. 유족들은 언론에서 강 실장의 실명도 제대로 밝혀주기를 희망했다.

강 실장의 남편은 현재 위암 말기의 중환자다. 최근에는 항암치료에도 한계에 이르자 강 실장에게 “아무래도 내가 곧 떠날 것 같으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까지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윤숙이가 먼저 떠나버리다니...”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보였다. 이어서 “아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하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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