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구덕마을ㆍ억새꽃 은빛 물결 일렁이는 민둥산
발구덕마을ㆍ억새꽃 은빛 물결 일렁이는 민둥산
  • 염민호 편집장
  • 승인 2023.10.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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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면 억새꽃 축제…
올해는 9월 말부터 11월5일까지
카르스트 지형 특징 ‘돌리네’ 연못도 볼거리
민둥산 정상을 향하는 능선길에서 바라본 풍경 ⓒ소셜포커스
민둥산 정상을 향하는 능선길에서 바라본 풍경 ⓒ소셜포커스

지난 금요일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민둥산’에 올랐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해마다 이곳에서는 ‘민둥산 억새꽃 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지난 9월 말부터 11월5일까지 억새꽃 축제가 이어진다.

엄밀히 따지자면 ‘억새꽃’이 아니라 억새 씨앗이라 해야 옳다. 아주 작은 씨앗을 감싼 하얀 솜털이 한껏 부풀어 오른 모양새가 아주 일품이다. 억새꽃이 산꼭대기 대부분을 뒤덮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은빛 물결이 일렁인다. 세찬 바람이 땅을 향해 내리치면 수많은 하얀 솜털이 흩날린다.

비록 금요일이었지만 평일임에도 산을 찾는 사람이 많다. 민둥산 입구 증산초등학교 운동장 앞에 있는 주차장은 오전부터 자리가 다 찼다. 초등학교 앞길을 따라 약 5Km 더 들어가 능전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원래 민둥산 발구덕마을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억새꽃 축제 기간에는 마을 사람들이 차량을 통제한다. 발구덕마을은 민둥산 7부 능선쯤에 해당하는 높은 지대다. 이곳에서 등산을 시작하면 좀 더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축제 기간에도 발구덕마을까지 차량을 가지고 들어가는 방법이 전혀 없진 않다. 오전 8시 전에는 가능하다고 했다. 또 오후 4시가 넘어도 차량 통행을 허용한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좁은 도로에 차가 넘치면 통행이 어려울 수 있으니 아예 길을 막는 게 더 낫겠다 싶다.

능전마을에서 시작하는 등산코스는 지그재그로 뚫어놓은 넓은 마을 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훨씬 쉽다. 증산초등학교 앞 민둥산 입구에서부터 오르는 것보단 힘이 덜 든다. 중간에 고랭지 채소를 키우는 밭도 있고, 양봉농가에서 천막을 치고 꿀도 판매한다. 어느 정도 높이에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주변 풍경도 참 예쁘다.

그런데 왜 민둥산일까? 민둥산은 말 그대로 나무가 보이지 않는 헐벗었단 의미다. 그런데 이곳 민둥산은 고유 지명일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명성을 얻었다. 아무튼 오래전 화전민이 밭을 일구기 위해 산에 불을 놓아 태웠기에 민둥산이 됐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민둥산이란 지명에서 친근감을 더 느낀다.

능전마을에서 발구덕마을로 오르는 길에 본 고랭지 채소밭은 배추 수확이 모두 끝났다. ⓒ소셜포커스

약 한 시간 남짓 걸어서 발구덕마을에 도착한다. 능전마을에서 약 3Km 정도 거리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도 걷기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마을 주변 밭은 김장 시즌에 맞춘 배추 수확이 끝난 터라 휑하니 넓게 보인다. 밭에는 여전히 푸릇한 빛깔 선명한 배추이파리가 가득 흩어졌다. 상품 가치가 없어 남겨둔 듯한 배추도 여기저기 꽤 많이 보인다.

발구덕마을에 대한 설명이 있어 들여다봤다. 민둥산 지역은 카르스트 지형(Karst topography)이다. 석회암에 물이 스며들 때 물속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에 탄산칼슘이 녹으면서 동그랗게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이 구멍에 계속 물이 스며들면 점점 더 커지게 되는데 그 위에 있는 지반이 누르는 힘으로 밑으로 꺼지면서 둥근 형태의 커다란 함몰 구덩이가 만들어진다.

원래 이 마을에는 이렇게 생성된 커다란 구덩이 8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 방언으로 ‘팔(8)구덩이’가 변해서 ‘발구덕’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또 석회암이 함몰된 구덩이에 물이 고여 생성된 연못을 ‘돌리네(doline)’라고 한다. 돌리네는 마치 순수한 우리말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깔때기 모양으로 밑으로 꺼진 석회암 지대의 대표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가 돌리네(doline)다.

전날 하루 종일 많은 비가 왔지만, 그칠 줄 모르고 새벽까지 이어졌다. 모처럼 시간을 냈는데 계속 비가 오거나 그치더라도 땅이 질척거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산에 와 보니 오히려 땅이 뽀송뽀송하다. 이곳이 석회암 지대라 물 빠짐도 빠른 까닭일까?

지난 새벽에 날씨가 어떻게 될지 하며 맘졸이며 포털사이트 검색을 했었다. 전날 일기예보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고 하늘은 더없이 맑고 파랬다. 정말 모처럼 보게 된 우리나라 가을 하늘이 펼쳐졌다. 평소보다 두텁게 입는다고 했지만, 팔뚝에 스며드는 바람이 오싹한 한기를 안겨준다.

잣나무 숲 임도를 따라 오르면서 바라본 풍경. ⓒ소셜포커스

발구덕마을에서 이제 산꼭대기를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함께 간 일행은 가파른 산길을 선택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홀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서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간다. 길섶에 핀 들국화도 찍고 이름 모를 들꽃도 담는다. 20만 평 사유지에 가득한 잣나무 숲길을 벗어날 무렵 앞서간 일행과 다시 만났다. 올라 온 숲길이 너무 가팔라서 힘들었다고 한마디씩 던진다.

세워놓은 천막에는 각종 음료수가 통에 가득하다. 지키는 사람 없는 무인 판매점이다.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 양심을 믿어주는 간이 상점이다. 그러나 상품 판매 실적은 오르지 않았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간 탓에 갖고 간 생수마저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사실 작년 2월에도 민둥산 등산로를 한 바퀴 돌았었다. 음지에 눈이 가득 쌓여 있는 눈길을 밟고 산에 올랐다. 그때는 이 산을 처음 찾았다. 찬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처음 접하는 곳이라 너무 새롭고, 맞아주는 풍경은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찾는 사람 없어 비어 있는 산,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를 스치며 지나치는 요란한 바람 소리만 정적을 메워 줄 뿐이었다. 억새 새순이 올라올 때나, 아니면 단풍 가득한 가을날에 다시 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다짐이 헛되지 않았다.

정상 밑에 자리한 작은 연못을 둘러싼 능선을 한 바퀴 돌아 꼭대기에 다가선다. 정상을 곧장 향하기보다는 주변 풍경을 더 많이 보기 위해서다. 오후로 바뀐 시간, 햇볕이 점점 비스듬하게 내리쪼인다. 능선 위치에 따라 은빛 물결이 옅은 갈색으로 바뀌기도 하고 다시 은빛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석회암 지대가 함몰되어 생긴 돌리네(doline) 연못도 멋진 볼거리다. ⓒ소셜포커스
산을 뒤덮은 억새가 역광을 받아 은색 물결을 보여주고 있다. ⓒ소셜포커스

그동안 여유를 느낄 수 없으리만큼 바쁘게 달려 온 길이다. 그런데 가을 분위기는 왠지 모를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모처럼 누리는 여유가 이토록 편안함을 줄 수 있다니…. 실체를 볼 수 없는 에너지가 온몸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었다. 지난 주말에는 30분 이상 긴 줄이 이어졌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정상에 오른 증명을 사진에 담아간다. 날이 맑아 멀리 풍경까지 선명하다. 짙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흐르면서 사라진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동그랗게 들어앉은 돌리네 연못을 한 바퀴 돌아서 내려간다. 맑고 푸른 하늘 바람과 은빛 물결을 거울처럼 비추는 조용한 연못이다. 하늘이 잠긴 신선이 마시는 우물이다. 조용한 날에 홀로 이 못가에 앉으면 천상에서 퍼지는 선율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 근심이 모두 녹아 연못 속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도 눈살조차 찌푸려지지 않는 공간이다. 기울어진 햇살에 기다란 산 그림자가 드리운다. 계곡마다 속살을 감추는데 어느새 하얀 조각달이 검푸른 하늘을 항해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해가 기울자 하얀 조각달이 검푸른 하늘을 항해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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