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통과 법안 소위에 다시 회부·재상정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3년 넘게 논의된 장애인3법의 21대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한 장애인단체의 국회 난입 후 여야 합의 사안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다. '탈시설' 용어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해 여야 대치를 심화시키는 모습이다. 그간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한 만큼 여야 재합의도 쉽지않을 전망이다. 그러자 국회 무단점거의 물꼬를 터준 일부 의원들을 향한 비판이 거세다.
장애인 3법(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복지법·지역사회 자립지원법)은 2021년 처음 등장했다. 당시 이종성(국힘), 김민석·최혜영(민주), 장혜영(정의) 의원이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또, 이들 의원 4명은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안도 차례로 내놨다. 여기에 이종성 의원은 장애인지역사회자립지원법안까지 발의했다.
이후 상임위 법안소위와 공청회를 거쳐 통합수정 대안 3건으로 정리했다. 우선, 장애인기본법안과 장애인권리보장법안 4건을 묶어 장애인권리보장법(대안)을 마련했다. 또, 장애인복지법안은 전부 개정안 4건과 일부개정안 등을 묶은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안(대안)으로 했다. 지역사회 자립지원 또는 탈시설 관련 제정법 3건도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로 통합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은 장애인 기본권리 및 이념 정립과 방향성을 담았다. 이어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서비스 급여를 정하는 복지 지원 총괄법으로 개편했다. 지역사회 자립지원법은 시설을 나온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돕는 게 골자다.
이들 법안의 주요 쟁점은 탈시설 용어 사용 여부였다. 범위가 너무 넓고, '시설 탈출'의 부정적 시각이 문제였다. 정부도 신중검토 입장을 밝히며, 탈시설 용어 제외 의견을 냈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지난 21일 제410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탈시설의 시설은 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 이용시설 등 장애인복지법상 모든 시설을 포함하고 있어 적절한 취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탈시설을 주거환경에서 벗어나도록 한다고 규정한 것도 부적절하다. 되레 지역에서 선뜻 받아들여 장애인 스스로 자립해서 살 수 있는 긍정적인 용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장애인 3법 중 장애인권리보장법안과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안만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이 때 찬·반 대립의 중심에 선 '탈시설' 표현은 각 법안 조문에서 빠졌다. 나머지 지역사회자립지원법안은 최혜영 의원 반대로 심사 보류됐다. 최 의원이 해당 법안 조문 중 '탈시설' 용어 사용을 끝까지 고집해서다.
당시 그는 "제가 4년 내내 탈시설 사업을 지적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탈시설 표현을) 법에라도 넣자고 한 것"이라며 "그럼, 탈시설 넣지 말고 기본법과 권리보장법을 만들어 장애인복지법을 개편하는 대신 지역사회자립지원법은 다시 계속 심사하자. 안 그러면 제가 뭐 하러 이 법을 양보했겠나"라고 했다.
그러자 기본법만 통과시켜 법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문상 전문위원은 "장애인 3법은 장애인 욕구를 반영한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하고, 장애인 관련 법률간 체계성과 연계성이 부족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기본법으로서 재편하는 취지"라고 했다. 강기정 소위원장도 "탈시설 표현을 넣지 않아도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지원받아 주거 선택권을 갖도록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걸 탈시설로 국한해서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임위 소위 여야 합의법안 효력은 길지 않았다. 불과 이틀 만에 법안심사소위로 회부돼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 단체의 국회 난입 사태 직후다.
지난 21일 오후 4시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한자협) 활동가 10여명은 국회 의원회관 이종성 의원실을 무단점거했다. 이들은 밤샘 농성을 벌이다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출동하자 다음날 오전 10시께 철수했다. 전날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에서 의결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반대가 농성 이유였다. 장애인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이종성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 법안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장애인복지시설에 포함시켜 회계, 감사 등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장애계에선 이런 갈피 못잡는 입법활동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국회 소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도 이틀 만에 깨뜨리는 마당에 장애인단체들 합의가 부족해 재논의한다는 핑계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라며 "제2법안심사소위에서 계류돼 마지막 국회 회기를 넘겨 폐기해 버리겠다는 계산이 아니라면, 또 민주당과 전장연이 서로 결탁한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강성단체에 국회 뒷문을 열어준 데 대한 책임도 불거졌다. 국회 난입사태 후 의원들이 서로 눈치보며 합의를 뭉겠다는 주장이다. 한 장애인 시민활동가는 "다른 의원실에 방문하겠다고 거짓 신청해 놓고 이종성 의원 집무실을 무단점거한 만큼 이들(한자협)의 국회 출입을 방조한 의원들도 장애인 3법 공백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전장연 등이 탈시설 사업을 두고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이어 국회의원 집무실까지 무단점거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나오자 기존 여야 합의는 아랑곳없이 야당 의원들이 각자 눈치보다 슬그머니 소위심사로 돌려보낸 꼴"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이 날 국회 사무처 항의 직후 야당 의원들이 이 의원 집무실에 모여들었다. 강선우·정춘숙·최혜영(이상 민주당)장혜영(정의당) 의원 등 4명이다. 이들이 한자협의 국회 난입을 방조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 중 강선우 의원실은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나머지 3명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전장연도 21일 성명서에서 "국회 여야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절실한 외침을 철저히 왜곡해 탈시설 권리가 빠진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복지시설로 편입되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 및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며 "이로써 장애계 오랜 염원인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안은 포함돼야 할 내용은 삭제되고, 철회되야 할 내용은 통과된 최악의 장애인 입법이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