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약자 위한 평생 나눔 실천"
"사회약자 위한 평생 나눔 실천"
  • 조봉현 전문기자
  • 승인 2024.01.22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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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일 경기지장협 후원회장 인터뷰
박노일 광일그룹 회장. ⓒ소셜포커스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경기지장협) 박노일 후원회장(67)은 소년시절부터 평생 기업을 일구면서 항상 어려운 이웃과 나눔을 실천해왔다. 지금은 주력사인 광일토건환경㈜를 비롯해 운수업, 종합건설업 등 7개의 중소·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 회장이라고는 하지만 돈이 많아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고만고만한 중소기업들이라서 대단한 재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업으로 얻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기부활동뿐이 아니다. 지방 발전을 위한 고향 돕기, 장학사업, 젊은 청년들의 창업지원, 지역사회 문화자원 육성 등 박회장의 나눔 실천은 사회구석구석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다문화 가정이나 자립이 어려운 이주여성들에게도 온정이 미치고 있다. 작년부터는 서울 서초경제인협의회 회장을 맡아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박 회장은 평소 기부활동 외에도 몇 년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한 아너소사이어티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연말연시를 맞아 KBS에 2천만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장애인단체와 인연은 2004년 경기지장협 용인지회를 후원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12년도부터 경기지장협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장애인 권익 향상 및 자립 지원에도 많은 일을 해 왔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소재 광일그룹 회장실에서 박노일 회장을 만나 사회공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최근 박노일 회장은 김기호 경기지장협회장(오른쪽)으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광일환경토건

사업을 시작 후 지금껏 성장과정이 궁금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시골 마을을 돌면서 생선을 파는 행상을 했다. 생선 장수 1년 하고 17세 때 무작정 상경해서 화물트럭 운전기사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월급을 모아 1982년도 25세 때 중고 덤프트럭 1대를 구입했죠. 골재납품업을 시작했는데 건설경기 호황으로 재미가 좋았다. 1990년대 골재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건설폐기물 수집·운반업으로 전환했다. 그러자 서울 등지의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쏟아져 나오는 건설폐기물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갔다. 운이 좋게도 대부분 성공해서 지금은 9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운영하는 회사가 항상 수익만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꾸려가면서 소년 시절부터 꿈꿔온 기부활동은 실천할 수 있게 됐다."

소년 시절부터 기부활동을 하셨다는데 첫 기부에 대한 소회는

"상경 첫 해 트럭 기사로 취직해서 첫 월급으로 탁상시계 12개를 사서 모교인 남원 송동초등학교에 기부했다. 당시 학교에서 월말고사 1등에게 탁상시계 한 달씩 사용하도록 했는데, 2등만 했던 저는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다. 상품으로 시계를 주는 것도 아니고 한 달간 집에 비치하게 하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그땐 물자가 귀한 시절이었다. 아무튼 기증을 통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계를 상품으로 완전히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던 저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좌우명인 ‘생활의 1%를 이웃과 함께’에 대해 설명한다면

"매월 월급날이면 제가 출연한 돈과 동참을 원하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월급액의 1%를 모아 생활이 어려운 이웃과 다문화 가정의 자립지원 등을 위해 기부하는 것이다. 이런 운동을 널리 알리고자 제 승용차에도 붙이고 다닌다. 특리 우리 사회는 다문화가정이 250만을 넘어서 있다. 그분들은 저출산으로 인구 위기에 직면한 우리 사회에 활력을 더해주는 귀중한 인적자원이기도 하다. 정부나 사회뿐만 아니라 소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경기지장협 후원회장으로서 월정액 기부 외에도 장애인 자립지원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는데 대표사례를 소개해 달라

"경기지장협에는 월정 기부금 외에도 매년 1천만원씩 별도로 기부한다. 그 돈은 장애인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매월 발간하는 경기새보람소식 발행비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지장협 업무에 필요한 차량을 기증한 적도 있다. 경기지장협 말고도 발달장애인을 돕기 위한 일도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무슨 이유인지 발달장애인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들이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립기반을 조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일자리 얻기가 어려운 그들에게 바리스타와 같은 기술 습득을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지원에 2천만원 정도의 기부를 해 왔다."

지방의 중소도시는 인구감소로 어려움이 많다. 고향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는데

"제 고향은 전북 남원시 송동면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방이 인구감소 등으로 인해 어렵다. 제 고향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고향마을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이나 모교 발전을 위해서 매년 1천만원 상당의 필요한 물품이나 성금을 보내고 있다. 그 외에도 남원시에서 주관하는 여러 문화행사에 지원을 해 왔다. 그리고, 작년에는 남원시청을 방문하여 고향사랑기부금으로 500만원을 기탁했습니다.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고향사랑기부금은 제도상 연간 상한선이 500만원이다. 기회가 되면 다른 일에도 기부할 예정이다."

지역사회 문화자원 육성에도 기부활동을 하신다는데

"우리 역사에서 유명한 여류 문인을 꼽으라면 보통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말한다. 그런데, 그분들 말고도 훌륭한 분이 또 있다. 남원 출신의 ‘김삼의당’이다. 몰락한 선비 가문으로 출가하여 어려운 살림에서도 지극한 시부모 봉양 및 친척들에 대한 정성으로 문중과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 글을 익혀 일상과 전원의 풍치를 소재로 260여 편의 주옥같은 한시와 문장을 남겼다. 사실, 허난설헌의 경우는 뛰어난 재주로 인해 오히려 시가에서 구박을 받아 비운의 삶을 살아야 했고, 신사임당도 부부관계는 좋았다고 볼 수 없다. 반면, 김삼의당은 신혼 첫날 밤에도 남편에게 시로서 사랑을 고백하면 남편은 시로 화답을 하는 등 부부는 훌륭한 시우(詩友)이기도 했다. 시댁은 시아버지부터 시형제들까지 모두 시문에 능했기 때문에 결혼으로 인해 오히려 그 속에서 재능의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저는 남원에서 매년 열리는 김삼의당 기념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김삼의당 탄신 기념 전국 시·서·화 공모대전’에 4년간 대회장을 맡아 매년 행사비를 지원하고 김삼의당 업적을 기리는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향후 포부나 하고 싶은 말은

"선행은 숨어서 하는 것이 미덕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되레 좋은 일은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록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언론매체에서도 이웃과 나눔이나 여러 가지 활동으로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서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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