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류사를 바꾼 전곡리 선사유적지
세계 인류사를 바꾼 전곡리 선사유적지
  • 조봉현 전문기자
  • 승인 2024.03.25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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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인류사를 수십만년 전으로 끌어올려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이동약자 위험시설 혼재

휠체어 명소 탐방기

1978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에서 고대 세계사를 뒤집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4월 당시 동두천에서 복무하던 한 미군 장병은 여자 친구와 전곡리 한탄강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렉 보웬(Greg L. Bowen)이라는 하사관이었다. 그는 입대하기 전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고고학도였던 한 미군 장병이 동두천으로 파병돼 온 것은 하늘의 뜻이었을까? 그는 한국에 와서 위대한 발견으로 역사책을 바꾸기도 했지만, 그때 데이트를 했던 한국인 여자 친구와 평생 배필이 됐다. 그들 부부는 그곳에 설치된 선사박물관 개관식에도 문화재청의 초청으로 참석했다.  

그 여인과 함께 강변을 걷던 보웬 하사는 특이한 돌멩이 하나를 발견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고고학도었던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프랑스의 저명한 고고학자에게 사진을 보내 자문을 구했다. 사진을 본 그 교수는 국내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김원룡 교수를 소개했다. 보웬이 가져온 돌을 살펴보고 현장을 방문한 김원룡 교수는 깜짝 놀랐다.

구석기인들의 만능 도구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동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것이다.

이 주먹도끼는 인류가 최초로 창의성 발휘해 돌을 변형해 만든 도구다. 구석기시대 초기 인류의 역사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유물이다. 돌의 한 부분을 떼어내 손잡이와 날을 구분했다. 날 부분은 좌우 대칭형으로 뾰쪽하게 세워 다용도로 활용했다. 자르고, 두들기고, 땅을 파는 등 구석기 수십만 년간 사용했던 당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오늘날 스마트폰에 견줄만한 도구였다.

사실, 세계 고고학계는 그때까지 인도를 기준으로 주먹도끼가 발견되는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을 '주먹도끼 문화권'이라 했다. 그리고, 주먹도끼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그 외 지역을 '찍개 문화권'이라 했다. 이렇게 분류한 하버드대 모비우스 교수의 이름을 따서 이를 모비우스 학설이라 했다. 그런데, 이 학설은 은근히 동아시아를 깔보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웬의 발견은 세계 고고학계를 뒤엎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이후 11차에 걸친 발굴을 통해 전곡리 주먹도끼는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인정받는다. 여러 차례의 발굴에서 총 6천여 점의 석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 결과, 현재껏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적인 구석기 문화 유적지로 알려지게 됐다. 세계 고고학 지도에 서울은 나오지 않지만 전곡리는 항상 표시된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쓰기 시작한 2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를 일컫는다. 학계에서는 전곡리 유적을 30만년 이전 전기 구석기 문화로 보고 있다. 전곡리 발견 이후 세계 구석기 문화 연구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모비우스 이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연곡리 선사유적지 외관과 지하 실내 입구. ⓒ소셜포커스
유적지 내에 구석기 인류의 생활상을 표현한 조형물. ⓒ소셜포커스
유적지 내 각종 전시물과 체험공간. ⓒ소셜포커스

전곡리 유적지에는 세계적 규모의 선사박물관이 들어섰다. 그리고, 박물관 주변엔 선사시대 테마공원이 조성돼 있다.

몇 달 전 수도권 광역전철 1호선이 연천역까지 이어졌다. 그 바람에 전곡리 선사유적지에 접근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종점인 연천역을 한 구간 앞두고 전곡리역에서 내리면 유적지 입구까지는 1.5㎞에 불과하다.

유적지 일대는 한탄강이 3면을 둘러싸고 흐른다. 구석기 시대에도 이러한 지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수렵으로 먹고사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천혜의 환경이었을 게다. 3면이 강으로 막아주니 사냥감을 한쪽으로만 몰아도 된다. 그리고, 강에서는 물고기도 얼마든지 구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 같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가설이기는 하지만...

현재 유적지 외곽의 서쪽과 남쪽은 강변을 따라 1.8㎞에 걸쳐 한탄강관광지가 펼쳐진다. 그곳에는 예술적 조경과 함께 각종 야영시설과 체육시설, 캐라반, 펜션 등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하룻밤 묵으면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한탄강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하다.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움집 모양의 건축물과 원시인들의 조형물이 선사유적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방문자센터를 만나게 되는데 이 건물의 내부는 좀 특이한 구조다. 건물로 들어서면 터널형 경사로가 지하공간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좌우 벽면 게시물과 함께 까마득한 과거로의 시간여행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적지 전체는 50만㎡가 넘는 광대한 면적이다. 드넓은 잔디광장을 가운데 두고 선사체험마을, 구석기체험숲, 선사문화캠프장, 토층전시관, 야생화단지 등이 꾸며져 있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유적지를 한 바퀴 둘러 보고 나면 입구 반대쪽 끝에서 선사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박물관 건물은 국내 여느 건축물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특이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원시 생명체의 신비로운 곡선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사연을 알지 않고서는 선사박물관이라는 이미지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길다란 곡선형 건물의 외벽과 지붕은 은빛 스테인리스판으로 덮혀 있다. 일정한 크기의 판을 이어주는 수많은 마디와 함께 보는 이에 따라 거대한 지렁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국제공모를 거쳐 프랑스의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평가는 보는 사람들 각자의 몫이다.

상설전시실 중앙에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조형물들이 행진하듯 늘어서 있다. 털복숭이 원숭이 모습에서부터 인간의 형체를 갖추고 노출이 곤란한 부분을 가죽으로 가린 구석기인까지 함께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조형물은 세계적인 복원 예술가 엘리자베스 데인스의 작품이라 한다. 머리카락 한 올, 주름 하나까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정교한 모습이다.

박물관에는 각종 전시물과 함께 여러 가지 체험형 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어린이들에게도 호기심을 유도한다. 성인용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전곡 구석기나라 여권"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뮤지엄 숍에서 여권을 구매해 여권용 사진을 찍으면 RFID 칩이 내장된 카드를 받게 된다. 체험 코너에서 시대별로 설치된 터치스크린에 RFID 카드를 대면 여권 살 때 찍어둔 사진과 고생대 인류가 합성된 자신의 사진이 나온다. 다소 흉측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매우 재미있는 체험거리다. 전곡리 유적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3D 영상도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다.

선사박물관의 독특한 외부구조. ⓒ소셜포커스

휠체어를 타고 전곡리 유적지와 선사박물관을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보는 것은 큰 어려움은 없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동약자의 접근이 어렵거나 오히려 위험한 곳도 자주 발견된다.

방문자센터 옆에는 숲속으로 향하는 데크로드가 꾸며져 있다. 그런데, 그 데크로드 곳곳은 단차가때문에 휠체어 통행이 불가능하다. 그 단차도 1단 또는 2단에 불과해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전 구간을 휠체어로 이동할 수가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단, 한 뼘도 안 되는 단차로 인해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이동약자는 멀리서 바라만 보다 원망을 안고 돌아서야 한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런 시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공공시설의 무장애 개념에 대한 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 

그러한 개념없는 시설들이 박물관으로 진입하는 통로에 이르러선 엄청난 위험시설이 버티고 있다. 계단과 거의 같은 각도로 계단 위에 경계턱이나 난간도 없이 설치된 경사로는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경사로의 법정 각도는 4.8도인데 이 시설은 30도가 넘어 보였다. 휠체어가 진입했다간 그대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시설 관계자에게 문제점을 말했더니 답변이 가관이다. 그 통로는 휠체어 통로가 아니라 케리어 운반용 통로란다. 무책임하고 궁색한 변명이다. 위치상으로 전용 통로가 필요할 정도의 큰 케리어를 가진 사람이 그곳을 통행할 확률은 0%에 가깝다. 실제, 케리어 소지자를 위한 통로라면 더 위험한 구조다. 그 정도의 급경사라면 케리어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경사로가 계단 한 가운데를 차지하면서 계단을 3등분으로 나누어버리는 바람에 비장애인들도 통행하기 어려워졌다.

아마 그 경사로를 시공한 회사는 분명히 휠체어 통행을 위해 설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개념없이 시공하다 보니 실제는 엄청난 위험시설이 되고 말았다. 잘못된 시공이라면 철거하고 재시공을 해야 함에도 시설주(문화재청)는 억지 핑계를 대면서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다.

동양 최초의 구석기 유적지와 박물관, 누구나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됐으면 좋겠다.

유적지 내 장애인 불편시설들, 지형상 부득이한 이유가 아니라 대부분 무개념 시공에서 비롯된 것이라 더욱 답답하다. ⓒ소셜포커스
휠체어 통행을 위한 경사로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위험시설이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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