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당사자 고려 않는 '의사소통 권리'... 대안은?
장애인당사자 고려 않는 '의사소통 권리'... 대안은?
  • 류기용 기자
  • 승인 2019.12.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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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장애인 의사소통권리 및 개인별 지원방안 위한 토론회' 개최
국내 지원체계 '미달'... 공급자 중심 "주는데 급급한 상황"
장애유형별 맞춤형 지원 위해 '판정도구표' 개정 필요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13일 '장애인 의사소통권리와 개인별 의사소통서비스 지원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류기용 기자] = 국내 장애인 의사소통 권리 개선을 위해 장애인 당사자를 고려한 현실적인 지원체계 구축과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의사소통에 대한 지원이 장애인의 실제 생활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급자 중심의 보조기기 제공에만 급급하다는 지적.

이를 위해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이하 뇌병변협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1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의사소통 권리와 개인별 의사소통 서비스 지원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뇌병변인권협회에서 올 한해 진행한 장애인 의사소통 권리 지원사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장애인 의사소통의 현실과 향후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AAC)만 던져주고 이제 다 해결했다고 말하는 정부의 태도가 진짜 문제입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결국 사회와 나를 연결하는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누군가 말할 때까지, 표현할 때까지 '기다림'. 누군가 표현하고자 하는 몸짓, 눈빛, 소리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기다리는 연습이 가장 우선시되야 합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13일 '장애인 의사소통권리와 개인별 의사소통서비스 지원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 소셜포커스

■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AAC) 주는데 급급한 지원체계... 이용률 떨어지는 진짜 원인”

사실 국내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에 대한 어려움은 어제 오늘에만 지적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서울시 내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은 청각(5만306명), 지적(2만6천231명), 자폐성(5천798명), 시각(4만1천900명), 언어(3천233명), 뇌병변(4만1천801명) 등으로 15만6천여명에 달했다. 이렇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이 서울시 전체 장애인에 약 39%에 해당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보조기기지원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감하는 효과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는 ▲보완대체의사소통(AAC) 지원 이 후 실질적 의사소통 지원체계 부재 ▲보조기기 제공에만 급급한 지원 체계 ▲실생활 사용이 배제된 보급 체계 ▲공급자 중심의 일시적인 지원 등이 꼽힌다.

실제 이런 문제로 인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은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AAC)를 지원받아도 사용하지 않는 대상자가 더 많은 상황이다.

뇌병변협회에서 장애인 의사소통권리지원사업을 담당하는 김윤이 활동가는 “보완대체의사소통 전문가 양성과정이 있으나 연계 기관이 부족하고 장애인당사자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도 좁아 효율적인 보조기기 이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공공기관을 비롯해 민간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환경적 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국내 의사소통 권리 “지원기반 엉성... 지원체계 ’미달‘ 수준”

의사소통권리란 모든 사람들이 장애유무, 유형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활에 변화 및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장애특성이 의사소통을 제한하는 요소가 될 순 있지만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차별 없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

당연한 권리이지만 국내 지원기반은 매우 엉성하다.

김경양 교수
김경양 교수

국제적으로는 UN CRPD(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제9조 ‘접근성’과 제21조 ‘의사 및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에서 구체적 사안을 명시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서울시의 ‘의사소통 권리 증진 조례’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일부 장애유형에서만 부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그 차이는 더 심하다. 호주는 공공 및 민간, 지역사회가 하나가 되어 10년동안 시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안정적인 사회 지원체계를 구축했고, 캐나다는 세계 최초로 ‘접근 가능한 캐나다 법’(The Accessible Canada Act)을 통과시켜 누구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하는 틀을 마련했다.

이러한 사회적 기반 마련은 장애인을 일상생활에 주도적 결정권자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고용과 레져, 문화 등 사회 참여의 촉진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다르다. 지원체계 마저 ‘미달’ 수준이다. 특별한 지원 법안도, 정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보조기기 제공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부산장신대학교 엘아동발달연구소 김경양 교수는 “꼭 ‘장애’를 떠나서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의사소통에 차별을 받는 것에서 벗어나 ‘모두를 위한 의사소통의 권리’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장애인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충분한 국가적 정보와 데이터를 축적하여 개인의 요구에 맞춘 지원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누구나 당연하다고 느끼는 의사소통이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소통한다고 함께 느끼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경청과 세밀한 관찰이 중요하다”며 사회적 인식개선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장애인 의사소통권리와 개인별 의사소통서비스 지원방안을 위한 토론회'에 참여한 토론자들 모습. ⓒ 소셜포커스

■ 장애유형별 의사소통 어려움 토로 ‘종합판정표에 의사소통 관련 지표 마련해야“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장애유형별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확인됐다.

가장 먼저 토론자로 나선 뇌병변협회 박지은 활동가는 ”평등한 의사소통에 대한 요구는 인간의 평등에서 시작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며 ”누구나 완벽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않아도 가정에서, 지역에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발달장애인을 대표해 토론에 나선 소소한 소통의 백정연 대표는 장애인당사자의 맞춘 표현과 지원방안 마련을 주장했다. 백 대표는 ”법적 기준을 보다 더 구체화하여 당사자의 개인적 요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지원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며 ”누구나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사회가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지원방안에 대한 목소리도 확인됐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연구원은 ”점어, 촉수어, 근접수어, 필답, 손가락 문자, 손바닥 문자 등 각자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각각의 소통방식을 존중하고, 보조기기에 대한 수가도 인상하여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철환 활동가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서비스 판정에 사용되는 종합판정표에 ’의사소통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13일 '장애인 의사소통권리와 개인별 의사소통서비스 지원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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