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아야 하는 사회… 감각장애인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닿지 않아야 하는 사회… 감각장애인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07.28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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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벽허물기 등 장애단체, "감각장애인 코로나19 안전 대책 토론회" 27일 개최
정부 장애인 감염병 매뉴얼 보완 절실… 유럽, 국내 장애단체 대책이 더 현실적...
촉수어, 근접수어, 점화 등 시청각장애인 의사소통 인식 제고ㆍ전문인력 시급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을 비롯한 장애단체들이 감각장애인 감염병 대책에 대한 토론회를 27일 이룸센터에서 개최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이 코로나19 국가재난상황 속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이 겪었던 고충을 듣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논의하고자 27일 오후 이룸센터에서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는 장애벽허물기, 시청각장애인자조모임 손잡다, 원심회,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언택트'라는 트렌드를 던져주었다. 직접 가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모든 게 해결되어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든 업계가 이에 발맞추고 있다. 그러나 감각장애인에게 '닿지 않아야 하는 사회'란 고립과 삶의 위협을 의미한다.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없고 입모양을 볼 수 없는 것이 곧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는 이들에게는 매뉴얼 그 이상의 대책이 필요했다.

 

두려움이 일상이 된 감각장애인의 삶   

(왼쪽부터) 호예원 한국농교육연대 청년팀 부대표,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 김여수 농교육ㆍ농학교 바로 세우기 가족대표. ⓒ소셜포커스

병원에 가는 것,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 생계를 위한 자격증을 따는 것. 감각장애인에게는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농교육ㆍ농학교 바로세우기의 부모대표이자 청각장애 당사자인 김여수 부모대표는 두 아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을까 불안에 떨었던 하룻밤에 대해 토로했다.

각각 5살, 3살인 김여수 씨의 아이들은 지난 3월 3일 저녁 9시경 발열과 콧물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 병원에 가야할 상황이었지만 저녁 9시에는 수어통역센터, 보건소 영상전화, 문자상담 어느 방법도 지원되지 않아 밤을 꼬박 새울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다음날 아침 급하게 수어통역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센터 측은 통역사의 감염이 우려된다면서 서비스 제공을 거부했다. 

결국 통역사 대동 없이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거기서도 소통에 난항을 겪어야했다. 마스크 때문에 의료진의 입모양을 볼 수 없었던 것. 필담으로 겨우 진료를 봤다던 그는 "(아이들의 증상이)단순 감기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30분 동안 느꼈던 공포와 긴장감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안마사로 일하던 시각장애인들 또한 생계가 막막해졌다. 시각장애 안마사들은 주로 직접 안마원을 열거나 직장 내 헬스키퍼, 경로당 방문 안마사 형태로 고용이 되어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안마사들이 헬스키퍼로 주로 일하던 콜센터나 병원이 감염의 온상지가 되면서, 수많은 안마사들이 재택근무에 돌입하게 됐다. 사실상 업무 중단이었다.

첫 달에는 그나마 전액 지급되던 급여가 두 달, 세 달이 지나자 70%까지 줄어들었다. 안마원을 찾는 손님 수가 줄어 폐업한 업소도 대다수다.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교육생들도 사태가 끝나기를 손놓고 기다려야되는 입장이다. 보통 교육생들은 서로서로 안마를 해주며 훈련을 하는데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2, 3년 과정 중에 6개월 이상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안마사 교육을 받던 고3 시각장애인을 취재했다는 윤동혁 PD는 "교육부는 실습을 못 받아도 자격증이 나올 거라고 했지만 학생은 실력 없이 취업시장에 나가는 것을 더 두려워하더라"고 말했다. 

감각장애인들에게 감염병 사태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교육재난 등 정보접근성 보장, 감각장애에 대한 세심한 이해 필요

발언자들은 시청각장애인의 세부 유형에 따라서도 의사소통 수단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접근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시청각장애인의 유형은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전농전맹, 아예 듣지 못하지만 명암을 구분할 정도의 시력이 남아있는 전농잔존시력, 앞을 볼 수 없으나 큰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전맹난청, 시력과 청력이 조금씩 남아있는 잔존시력난청이다. 이외에도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서 청력을 80% 정도 회복한 유형, 중도에 시력이나 청력 혹은 둘 다 잃는 유형 등이 있다.

보통 청각장애인은 수어로, 시각장애인은 점자나 음성출력기술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특히 전농전맹인 경우 수어를 하는 손을 만져서 의사소통하는 '촉수어'나 손바닥에 점자를 찍어주는 '점화'로 의사소통을 해야하는데 교육 체계는 물론 전문인력도 부족한 상태다.

시청각장애인자조모임 손잡다 조원석 대표. ⓒ소셜포커스

전맹난청(시력은 완전히 상실하고 난청) 시청각장애인 당사자 손잡다 조원석 대표는 촉수어, 근접수어, 점화 등이 가능한 시청각전문통역사를 양성하고 파견하는 전문공적기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SSP(Support Service Provider)라는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기관, 관공서를 방문할 때 이외에도 우편이나 이메일을 보낼 때, 심지어 TV를 시청할 때 등 생활 전반에서 통역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본도 약 30년 앞선 1991년 이미 SSP와 유사한 시청각장애인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지만 지체장애인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감각장애인은 혼자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동작에는 문제가 없어 이마저도 많은 시간을 지원받기는 힘들다. 활동지원 바우처 단가가 수어통역사 인건비보다 훨씬 낮은 수준인 것도 문제다.

 

정부의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 실효성? "글쎄"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대표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감염병 대응 메뉴얼 실효성에 대해서 회의감을 표했다. 만들었다는 사실에 의의가 있을 뿐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고, 새로운 감염병 사태에서는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가 6월 발표한 장애인 감염병 매뉴얼 중 장애유형별 고려사항. ⓒ소셜포커스

매뉴얼은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고려사항으로 ▲수어통역 및 해설화면 제공 ▲영상수어상담 ▲1339 24시간 문자상담 ▲QR코드 등 음성변환 출력 인쇄물 배포 ▲선별검사소에 그림 설명판 제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감각장애인의 질병유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고,  진료 및 자가격리, 입원 시 대응 방법, 의사소통 전문인력 제공 방안에 대해서도 내용이 전무하다. 장애인단체와 수어통역 협약을 맺는 것으로 전문인력 제공 노력을 대체하려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도 지적의 대상이 됐다.

김 대표는 세계보건기구(WHO) 및 유엔 인권 고등 사무소(OHCHR), 유럽장애인포럼(EDF)가 유럽의 각국 지도자들에게 보낸 장애인 감염병 대응에 대한 공개 서한 등을 참고해 보다 자세한 매뉴얼을 제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EDF의 공개서한은 장애인지원서비스 제공자(의료진, 지원인력 및 개인 활동지원사)를 재난사태에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핵심 노동자'로 지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바이러스 검사를 적극 지원하고, 감염에 대한 노출과 확산을 최소화하는 데 필요한 보호장비와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고도 명시한다. 수어통역사와 활동지원사의 안전을 위해 대면, 접촉 금지만을 대책으로 내세워 감각장애인의 고립을 초래한 우리 정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유엔 인권 고등 사무소의 서한에서도 교육청 및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의 교육을 실시할 때 의무와 범위, 원격 학습을 위한 보조기기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 대학에서는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근로학생을 수업 보조인, 자막 제공 인력으로 대체하면서, 수업 자료가 부정확하다는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또 김 대표는 대구 지역 장애인단체, 시민단체 진보넷을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는 장애당사자의 의사와 욕구가 적극 반영된 대응책을 십분 반영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장애벽허물기 측은 8월 중으로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제언 내용을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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