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법 시행규칙 개정안 헛점들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개정안 헛점들
  • 조봉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9.13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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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 접근성 보장 선행 등 미비
8인승 이하 모노레일도 편의시설 제외

관광용 모노레일과 케이블카 등 궤도시설이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에게는 차별시설이었다. 그런데 이런 궤도시설에 대하여 교통약자 편의시설 의무화를 규정하는 관계법령 입법예고가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23일 교통약자가 궤도‧삭도를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편의시설 종류 및 설치기준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 전문은 국토부나 국민참여입법센터 입법예고 메뉴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예고 내용을 열람해보고 수정의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10월 3일까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사실 교통약자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라고는 하나 대부분의 내용이 본문이 아닌 별표에 명시된 시설기준 등에 관한 것이다. 규정 하나하나가 중증장애인 등 이용편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토부 이윤상 교통물류실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개정을 통해 앞으로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가 더욱 편리하게 케이블카, 모노레일 등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의 입법예고 내용으로 봐서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 등 다수의 교통약자들이 만족할 만큼 접근성이 개선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특히 시행규칙 별표1이 문제다

예고기간 중 보다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여 독소조항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접근성이 보장되도록 개정안의 확정 전에 수정할 사항이 많을 것 같다. 여기에는 국토부의 인식 전환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장애인단체 및 장애인 당사자들의 관심과 수정의견 제출과 강력한 의견표시 등의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필자는 국토부가 입법예고를 하기 전에 외부 연구기관이 용역을 의뢰하면서 작성한 개정안 초안을 미리 입수하여 확인한 바 있다. 그때 개정방향에 상당한 문제점을 확인하고 본지에 세차례로 나누어 칼럼을 게재하면서 여러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칼럼으로 소개된 문제점과 대안은 연구기관과 국토부 담당부서에도 입법예고 전에 미리 전달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리 우려했던 사항들은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 전국의 많은 관광지에는 궤도시설이 운영되고 있지만 다수의 시설에서 전동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하거나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사실 현재의 대부분 시설도 전동휠체어 탑승 문제만 아니라면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이나 노인, 임산부 등 정도가 심하지 않는 교통약자가 이용하는데 결정적인 어려움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전동휠체어의 탑승을 완전하게 보장하지 않은데 있다.

사실 궤도시설의 교통약자법 반영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전동휠체어의 접근성을 보장하자는 취지가 절대적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개정하나마다 하는 것이 되고, 오히려 전동휠체어 접근할 수 없는 시설에 대해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오래된 남산케이블카나 설악산 케이블카는 전동휠체어 탑승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사이에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순환식 케이블카의 경우 전동휠체어 손님이 오면 비치된 수동휠체어로 갈아타는 조건으로 탑승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같은 기종과 같은 운행방식임에도 전동휠체어 탑승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초중증인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전동휠체어에 생명과 상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장비가 셋팅되어 있기 때문에 수동으로 갈아타게 하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또한 수동으로 갈아타게 할 때는 케이블카 운영사 관계직원이 도와주는 조건이지만 관계자가 아무리 세심하게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초중증 장애인을 수동으로 갈아타게 하고 케이블카에 탑승을 돕는 과정에서 장애인이 다칠 수도 있다.

서울 다누림관광센터 정영만 센터장(44)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초중증 장애인이다. 몇 달 전 부산의 송도해상케이블카를 타러갔다가 전동은 절대 태울 수 없다는 회사의 강력한 거부에 못이겨 할 수 없이 그곳에 보관된 수동휠체어로 갈아탔다. 그리고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수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적이 있는데 후유증으로 여러날을 고생했다고 한다. 

송도해상케이블카는 필자도 이용한 적이 있다. 전동휠체어를 출발지에 남겨놓고 수동휠체어를 탄채로 케이블카 도착지인 송도스카이파크에 내렸으나 혼자서는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곳의 관광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승강장에 내려서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2시간 이상을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허송해야 했다.

그리고 전동휠체어를 출발지에 두고 온 이상 편도이용이 불가능하다. 목적지에서 제3의 장소로 이동할 수 없어 출발지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한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이용”이 불가능하여 결국 장애인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에 입법예고한 개정안에도 “교통약자가 휠체어에서 내려 차량을 탑승하거나 차량에 탑승이 가능한 별도의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휠체어를 비치하여야 하며, 이용객의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결국은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서 맨몸으로 케이블카를 탑승하거나 수동으로 갈아타야 하는 경우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설치될 다수의 신규시설에서도 이 규정을 빌미로 전동휠체어 탑승을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자 독소조항이다.

이 규정을 두더라도 이번 개정 후에 설치되는 시설에서는 적용을 금지하고 종전의 시설에서만 적용이 가능하도록 반드시 부칙규정에 적용례를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궤도시설은 전동휠체어의 탑승이 가능한 구조로 해야 한다”는 별도의 명문규정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다만 “스키장 등에서 4명 이내의 탑승을 위해서 운영하는 삭도는 제외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은 둬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예고 안에는 모노레일의 경우 8인승 이하 차량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편의시설을 제외하도록 했는데 이 또한 독소조항이다. 전국의 모노레일 중 8인승 이하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런 시설에 편의시설을 면제하는 것은 계속 장애인을 차별하겠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전체 차량에 대한 좌석수 중 5% 또는 10% 등 일정 비율만큼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교통약자석을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법개정 전부터 운영해오던 시설이라 하더라도 일부 차량에 대해서 2개의 좌석만 뜯어내고 휠체어 안전벨트를 설치하는 등 얼마든지 개조도 가능하다.

그리고 시행규칙 별표1의 “2.>서.4)”에서 승강장에 대한 구조 등 의무사항을 규정하면서 “별도의 상시 안내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에는 적합한 구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중대한 잘못이다.

별도의 상시안내서비스가 제공되더라도 안내서비스만으로 전동휠체어의 탑승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물리적인 편의시설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상시안내서비스를 이유로 단서규정을 두는 것은 이를 빌미로 편의시설을 기피할 우려가 있다. 굳이 예외를 인정하는 단서규정을 두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예고된 시행규칙 부칙의 제2조(이동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적용례)에 따르면 “별표1의 개정규정은 이 규칙 시행 이후 「궤도운송법」에 따라 궤도사업 허가(변경허가를 포함한다) 또는 승인(변경승인을 포함한다)을 신청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

법개정 이전에 완공된 시설에 대하여 개정법령 적용예외 규정을 두는 이유는 소급입법에 대한 민간시설의 부담을 주지않으려는 취지이나 전국의 상당수 궤도나 삭도는 지자체 예산으로 설치하여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시설주가 국가 또는 지자체인 경우는 비록 법령개정 전에 설치되었더라도 안전에 문제가 없고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한 개정법령에 의한 시설로 변경해야 한다. 예외사유가 될 수 있는 안전문제와 과도한 비용여부는 국토교통부부 승인과정에서 판단하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항이 명시된 단서규정과 제2항 규정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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