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26세... 사망 원인은 파쇄기일까, 일자리정책일까?
꽃다운 26세... 사망 원인은 파쇄기일까, 일자리정책일까?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6.10 18:3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김재순씨, 기계 상부에서 폐기물 정리하다 파쇄기에 끼여 숨져...
취업 못할까봐 장애 못 밝혀... 안전장치 없는 위험한 일터밖에 갈 곳 없어...
"30년 장애인 일자리 정책 사망했다" 중증장애인 맞춤 일자리 1만개 보장하라!
3만7천명이 집 10채가 넘는다는데... 최저임금도 못 받는 장애인만 죽어나나
26살 꽃다운 청년이 떠나갔다. 광주의 재활용업체 '조선우드'에서 근무하던 고 김재순씨는 지난달 22일 합성수지 파쇄기에 몸이 끼이는 끔찍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장애인단체들은 공분하며 "30년 장애인일자리 정책 사망"을 외치고 나섰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는데,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찍’소리도 못하는 장애인의 비참한 현실이 고발됐다. 지난달 22일 광주의 재활용업체 ‘조선우드’에서 근무하던 장애인 청년이 파쇄기에 빨려들어가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는 26살 꽃다운 나이의 고 김재순씨다. 그는 중증 지적장애인이지만, 취업 당시 장애인이라고 밝히지 못했다. 장애를 밝히면 취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들어간 곳은 고위험군 일터였다.

사고 당일 오전 홀로 출근해 근무하던 그는,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깡통과 플라스틱을 폐기하고 있었다. 폐기물이 걸리자, 기계 상부에 올라가 작업하던 김 씨는 발을 헛딛어 그만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됐다.    

장애단체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숨지는 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에 분개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장애단체들이 분개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해당 업체는 발을 빼고 나섰다. “사수도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자기 과실로 사망했다”는 것. 그가 장애를 가졌는지 몰랐다며, 사고예방교육도 하지 않고 안전 수칙도 지키지않았다. 

심지어 해당 업체는 2014년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한 근로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빨려 들어가 숨졌던 곳이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해당 업체를 6년동안 단 한번도 관리ㆍ감독하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비인권적인 노동 현장 실태를 비난하고 나섰다. 지적장애인이 항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위험한 일에 집어넣고, 최소 2인 1조로 근무해야함에도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보장"과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삭제"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2018년 12월 11일에도 비슷한 참극이 있었다. 태안화력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하던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도 석탄 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당시 원청인 서부발전 관계자는 “벨트가 있는 기계 안 쪽으로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며 고인의 부주의로 원인을 돌렸지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달랐다. 서부발전이 운전설비의 이상 부위를 상세히 촬영한 뒤 개선요구사항과 사진을 함께 등록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림자가 진 벨트 하부와 철판 기둥 뒤에 숨어있는 롤러의 이상 부위를 촬영하려면 점검구 안으로 고개를 넣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전국공공운수장애인노동조합 정명호 대표의 발언문이 낭독되고 있다. ⓒ소셜포커스

 

“고 김재순씨가 생전 조선우드에서 일했을 때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새로운 직업 찾아 떠났지만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기계 위에 제어판 하나만 있었어도... 비상시 중단버튼 리모콘 하나만 있었어도... 인력배치로 2인 1조만 되었어도... 아니 그 전에 위험한 일 그만 두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가 있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거다"

-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 -

 

전장연과 장애단체들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과 「최저임금법 제 7조」를 꼽으며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더불어 그 누구도 산업재해로 고통받지 않도록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도 강력하게 외쳤다.

전장연 최용기 상임대표는 “작년 우리는 25살 설요한 동지를 잃고... 올해 또 다시 26살 청년 장애인을 잃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만들어진지 30년이다. 이 법으로 만든 일자리에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 장애인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장혜영 의원 ⓒ소셜포커스

정의당 장혜영 국회의원도 발언에 나섰다.

"단언컨대 30년 장애인 일자리 정책은 사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이야기하는 시점에 장애인은 해당 사항이 없다. 왜냐? 고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고 싶다. 그러려면 장애인 일자리부터 보장해줘야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반드시 제정하겠다.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보장 정책 해내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했다.

장내에서는 고 김재순씨 아버지의 사연도 밝혀져 뭇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그의 아버지도 산업재해로 한 쪽 손을 잃어 장애를 얻게 됐다.

박명애 전장연 상임대표는 “고 김재순 청년의 아버지도 같은 장애인의 몸으로 중증장애 아들을 키우며 얼마나 힘들었겠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하는 아픔을 겪었으니 이를 말로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냐”며 울먹였다.

박명애 대표 ⓒ소셜포커스

빈곤철폐를위한 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도 현대재철 하청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다. 2018년 통계를 보면, 하루에 산업 재해로 죽는 사람이 8명이라고 한다. 가장 약한 사람이 죽었고,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죽었기에 우리 사회가 침묵하는 것 아니냐”며 분노했다.

이어 “요즘 폐지값이 뚝 떨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공장에서 폐지를 사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100kg가 넘는 폐지를 주어 고물상에 갖다줘도 하루에 2천원을 받을까말까다. 그런데 작년에 집 10채를 가진 사람이 3만 7천명이란다. 누군가는 노동하지 않고도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데, 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장애인과 빈민은 비참하게 죽어야하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들은 ‘고 김재순 장애ㆍ노동ㆍ시민대책위원회’(가칭)를 꾸려서 강력하게 투쟁할 것을 알렸다. 고 김재순씨 사망을 ‘사회적 타살’로 간주하고, ▲고용부 이재갑 장관의 공식사과와 ▲조선우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1만개 보장 ▲장애유형 반영한 장애인 편의 및 안전실태 전면조사 ▲장애유형 반영한 근로지원인 제도 개선 및 예산확대를 요구했다.

전장연은 고 김재순씨의 죽음을 기리고 ‘고 김재순 장애ㆍ노동ㆍ시민대책위원회’(가칭)를 꾸려서 강력하게 투쟁할 것을 알렸다. ⓒ소셜포커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장*비 2020-06-15 14:04:56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ㅠㅠ
일자리 정책이 이정도 일줄은 몰랐어요.
안그래도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는데..
현실에 맞는 일자리 정책 제정이 시급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