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직원 편의 앞세워 교통약자 외면
철도 직원 편의 앞세워 교통약자 외면
  • 조봉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5.15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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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우선승차 가능하나 우선하차는 어려워“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itx새마을호. ⓒ소셜포커스

휠체어 장애인이 비행기를 이용할 땐 항상 가장 먼저 타고 내린다. 선진국에 가보면 비행기 뿐만 아니라 모든 교통편이 그렇다. 관광시설이나 공연장을 입장할 때도 그렇다. 따로 요청하지 않어도 휠체어 이용자가 보이면 어느새 관계 직원이 달려와서 장애인 통로를 먼저 확보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철도는 반대로 항상 가장 나중에 태워주고 나중에 내려주는 이상한 관행이 있었다. 코레일뿐만 아니라 SRT도 그렇다. 따라서 장애인은 장애인대로 불편하고 열차 출발시간이 지연되기도 한다. 휠체어가 먼저 승하차를 하면 다른 승객 자연스럽게 옆 칸으로 분산되어 출발지연 사유도 없어질 텐데 참 답답하다.

최근 장애인의 날 전후로 사회적 큰 이슈가 되었던 코레일의 휠체어 승차거부 사건도 그렇다. 일반 승객을 먼저 태우고 휠체어를 가장 나중에 태우려 하는 과정에서 복잡하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역무원이 장애인의 승차 지원 요청을 받고 승무원에게 전달의무를 하지 않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렇더라도 장애인이 먼저 타고 내리는 시스템이 갖추어졌더라면 승차거부 사태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통약자 승하차 지원을 위한 코레일의 매뉴얼은 너무 부실했고, 그 부실한 매뉴얼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승차거부 사건으로 코레일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쏟아지고 국회와 국토교통부에서도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했다. 그러자 코레일은 자체 개선안을 마련하고 고위 관계자들이 나서서 피해자였던 필자와 2차례 걸쳐 미팅을 가졌다.

필자는 1차 미팅에서 장애인의 코레일 이용 불편에 대한 다양한 사례별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코레일은 2차 미팅에서 개선방안의 일부를 수용하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인 휠체어 이용자가 먼저 타고 내리는 문제는 달랐다. 선승차 문제는 매뉴얼 개편에 반영하겠으나 선하차 문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승무원들에게 여론을 수렴한 결과 반대가 많다는 것이다. 휠체어가 먼저 내리려면 다른 하차대기 승객들을 옆 칸으로 분산시켜야 하는데 승무원이 혼자서 안내하려고 하면 방송도 해야 하고 바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차 전에 미리 준비하고 안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이는 교통약자들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하고 승무원들은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교통약자의 불편은 물론 지연발차 등으로 인한 전체 승객의 불편도 해소되지 않는다.

먼저 교통약자에겐 승차보다는 하차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최후승차의 경우 교통약자가 불편을 느끼는 것은 불과 1분 정도의 승차지연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후하차의 경우는 이어지는 불편과 난관이 매우 심각해진다.

열차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면 이미 비장애인들이 길게 줄 서고 있다. 그 엘리베이터가 교통약자를 위한 것임에도 실제 교통약자가 이용하려면 10~20분 또 지연되는 등 불편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휠체어 장애인은 도착역에서 내리면 보통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여 시내를 이동한다. 그런데 그 장콜대기 시간이 천차만별(몇십분이 걸릴 수도 있고 몇시간이 걸릴 수도 있음)이기 때문에 보통 도착 전에 장콜을 미리 신청할 때가 많다. 어쩌다 장콜 차량이 기차역에 먼저 도착한 경우 그 장콜차량이 대기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에 불과하다. 10분이 넘어가면 또 다른 임무수행을 위해 떠나야 한다. 따라서 그 10분 내에 장콜을 타야 하는데 기차에서 맨 나중에 내리고 어영부영 이용시간까지 빼앗기고 나면 장콜을 놓치고 또 몇 시간을 도로에서 마냥 기다려야 하는 고행을 감내하게 된다.

장콜뿐만 아니라 다른 열차와 환승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환승 시간을 놓치게 되어 모든 일정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이 먼저 내리면 비장애인은 불과 20~30초 정도의 하차 지연이 있을 뿐이지만, 장애인은 나중에 내리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이 뒤따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바쁜 사람들이 먼저 내리고 장애인은 맨 뒤에 내리면 모든 게 좋지 않냐? 장애인들은 그런 아량도 없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장애인도 바쁠 때가 많다. 아니 장애인의 몸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더 바쁠수 밖에 없다. 장애인도 치열한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바쁜 사람과 장애인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차별이다.

그리고 장애인이 먼저 내리면 열차운행의 효율성면에서도 유리하다. 장애인이 먼저 내릴 준비를 하면 다른 하차 승객은 저절로 옆 칸으로 분산될 뿐만 아니라, 역에서 승차를 대기하는 승객들도 미리 분산되기 때문에 발차지연 우려가 감소하여 기차에 타고 있는 모든 승객들에게도 유리하다. 열차에는 당장의 하차승객보다는 계속 타고갈 승객이 훨씬 많다.

필자는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선하차 문제도 이번 개선방안에 포함시켜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제 할 일을 기피하려는 승무원들의 여론 때문에 장애인들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열차운행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전체 승객에 대한 불편이 따르더라도 그대로 끌고 가겠다니 무슨 심보인가?

우리는 언제쯤 경제 대국에 걸맞는 선진국 그룹에 참여할 수 있을까? 그 길이 까마득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일반 승객 승차 후 마지막으로 휠체어 장애인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역무원.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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