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와 삭도, 장애인 차별시설 언제 벗어나나
궤도와 삭도, 장애인 차별시설 언제 벗어나나
  • 조봉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8.07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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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법령 받쳐줄 하위법령 아직도 오리무중
교통약자법 시행령 제대로 개정되려면...
1년 전에 개통한 남원 테마파크 모노레일, 레일카는 휠체어 탑승공간이 없다. 일부차량의 일부공간을 입석겸용으로 바꾸면 얼마든지 휠체어탑승이 가능할 것이다. ⓒ소셜포커스

전국의 수많은 관광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케이블카 또는 모노레일(이하 궤도시설)의 대부분이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금단의 시설이다. 그래서 2022년 1월 18일자로 교통약자법이 개정되면서 궤도시설도 교통시설로 보고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2년 이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시설기준과 방식에 대해서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것으로 위임했다.

시행일까지는 불과 5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하위법령은 아직 입법예고조차 없다. 입법절차가 늦어질수록 입법예고 후 국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궤도시설 반영을 위한 교통약자법 시행령 준비과정에서 외부기관에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제공한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 수개월 전에 나왔었다. 여러 단계를 거쳐 필자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살펴보니 심각한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지난 8월 2일자의 본지 칼럼을 통해서 1차로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번 칼럼은 그 두 번째이다.

사실 관광지에서 운영되는 궤도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문제점과 법령 개정의 필요성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도 2020년 2월 10일자 본지에 실린 필자의 칼럼이었다.

궤도시설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자는 취지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수백억원씩 투자하여 설치하는 관광시설을 장애인 등 관광약자에게도 차별없는 이용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관광지에서 궤도시설이 운영되고 있고 신규설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종과 운영방식에 따라 장애인 접근성은 천차만별이다.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아무런 불편없이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설은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곳도 있다. 그런가 하면 수동휠체어만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면 수동휠체어로 교체해야만 탑승을 허용한다.

기종과 운영방식의 선택은 전적으로 시설을 하는 지자체 공무원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휠체어 여행작가인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가 겪었던 이야기는 그 실태를 잘 말해준다. 몇 년 전 모노레일을 개통한 통영 욕지도 갔다. 모노레일에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여 시청 관계자에게 항의를 했더니 “설마 여기까지 휠체어 여행객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 놓았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장애인 차별시설을 규제하고 모든 시설에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중장애인도 차별없이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는 것이 법령을 개정하려는 취지다.

그런데 국토교통부가 준비 중인 시행규칙 별표1(이동편의시설의 구조ᆞ재질 등에 관한 세부기준) 개정안에는 다음의 문제부분이 등장한다.

“2.여객시설”편 “서.궤도승강장” 항목 제1)에서 “이용객의 휠체어가 아닌 승강장에 비치된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거나 휠체어에서 내려 탑승해야 하는 경우, 이용객의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야 한다.” 되어 있다.

그리고 “어.삭도승강장” 항목 제1)에서는 “이용객의 휠체어가 아닌 승강장에 비치된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거나 휠체어에서 내려 탑승해야 하는 경우, 이용객의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야 한다. 다만, 휠체어의 탑승이 불가한 개방식 삭도의 경우에는 설치를 제외할 수 있다.”

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하거나 전통휠체어에서 내려야 하는 기종과 방식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런 시설에는 편의시설 의무도 면제하자는 것이다. 이는 종전의 실태를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된다. 개정의 효과는 제로가 되고,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인 차별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완전히 우롱하는 행위다.

전동휠체어 탑승이 보장되는 기종과 운행방식이 얼마든지 존재함에도 굳이 법령에서까지 “휠체어탑승불가방식”을 인정하자는 의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특히 폐쇄식 삭도는 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하며, 순환식의 경우 많은 현장에서는 수동식으로 갈아타기는 조건으로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에게 휠체어는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요즈음은 전동휠체어가 대세다. 항상 누군가 밀어줘야하는 수동휠체어보다는 전동휠체어라야 장애인의 독자적인 자립활동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

전동휠체어는 장애인 각자의 신체특성과 장애상태에 맞춰져 있고, 인공호흡기 등 생명줄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현장에 비치된 수동 휠체어로 환승할 경우 신체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부상으로 직결된다. 또한 일상생활 및 생명유지에 필요한 각종 용품들을 전동휠체어에 부착하거나 부착된 보관시설에 휴대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휠체어에서 이탈하는 순간 식물인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타고 있는 휠체어에서 내리라는 말은 옷을 다 벗으라는 말과 같은 모욕감을 주기도 한다.

또한 궤도·삭도 시설에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수동휠체어로 갈아타는 경우 중간기착지나 종점에서 내리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직원의 도움으로 내린다고 하더라도 하차지점의 주변관광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동휠체어를 출발지에 두고 온 이상 편도이용이 불가능하다. 목적지에서 제3의 장소로 이동할 수 없어 출발지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한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이용”이 불가능하여 결국 장애인 차별시설이 될 수밖에 없다.

전동휠체어가 그대로 탑승할 수 있는 기종과 방식이 얼마든지 많은데 굳이 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한 기종으로 선택하는 것은 예산낭비일 뿐 아니라 관광약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법령에서까지 이를 용인해서는 안 될 일이다.

모처럼 개정되는 법령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꼭 시정되어야 한다.

휠체어 탑승이 충분한 강진의 가우도 모노레일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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