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장애인 등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령개정의 과제 [3]
[논단] 장애인 등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령개정의 과제 [3]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2.02.07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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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정책권고 받고 3년 6개월 지나서야 그대로 입법예고
음식점, 편의점 등 다중이용시설 신축시 50㎡ 이상만 편의시설 의무화
법령 개정되어도 편의시설 의무대상은 신축시설의 절반에도 못미쳐
건물의 크기 등에 관계없이 접근성 필요하다는 유엔의 권고안에 어긋나

4.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의 배경과 입법예고 사항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12.14. 보건복지부 등 4개 부처 장관 및 각 시·도지사에게 “소규모 공중시설의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권고” 결정을 하면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2019년부터 소규모 공중이용시설, 즉 바닥면적 합계액 50㎡ 이상의 음식점 및 생활용품 소매점, 이·미용업소, 그리고 100㎡ 이상의 의원급 의료시설에 대하여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날짜까지 명시해서 1년 이상의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었음에도 시행령 개정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가 3년 6개월이나 지난 2021년 6월 8일에 이르러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령」에 대한 입법예고를 했다.

입법예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슈퍼마켓·일용품 소매점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면적 기준을 3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변경
  • 50㎡ 이상의 휴게음식점·제과점의 편의시설 설치 의무화
  • 이용원·미용원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면적 기준을 5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변경
  • 목욕장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면적 기준을 500㎡ 이상에서 300㎡ 이상으로 변경
  • 의원·치과의원·한의원·조산소(산후조리원 포함)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면적 기준을 500㎡ 이상에서 100㎡ 이상으로 변경
  • 일반음식점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면적 기준을 3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변경

그리고 위 개정사항은 2022.1.1.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신축 및 증·개축하는 건물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했다.

위의 입법예고사항에서 명시한 변동내용을 알기 쉽게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6] 입법예고에 의한 의무대상 근린생활시설의 최저기준면적 변동 현황

위의 입법예고는 2021. 6. 8.에 이루어졌으므로 특별히 논란이 없었다면 다수의 일반적인 경우와 같이 국무회의를 통과시까지는 1달도 안 걸렸을 것이나, 수많은 장애인 단체와 장애인들의 반발 때문인지 보건복지부는 7개월이 넘고 해가 바뀌도록 이 시행령 개정에 대한 더 이상의 입법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반발내용은 면적 제한을 철폐하여 현행 법령에 명시된 모든 공중시설에 대하여 그 시설에 해당되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화 하자는 것과 이미 건축된 시설에 대해서도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며, 이에 따라 강력한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일부의 단체에서는 집단시위 등 과격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현재 예고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5. 현행 입법예고안의 문제점

사실 이 입법예고안은 보건복지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권고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개정을 하면서 입법절차를 3년 이상이나 지연시켰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3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장애인 등 당사자 공청회 등 아무런 여론수렴절차 없이 법령을 개정하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의 입법예고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편의시설 설치대상 시설을 확대하면서 다시 면적기준을 명시함으로써 이동약자에 대한 완전한 접근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쪽짜리 개정인 셈이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장애인 및 장애인단체들의 공분을 초래하면서 입법 지연의 중요한 이유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유엔이 지난 2014년 대한민국 국가보고서를 통해 권장한 “건물의 크기, 규격, 준공일 등에 관계없이 접근성 표준을 모든 공중이용시설에 적용하라“는 것을 무시한 것이다.

또한 앞에서 예시한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건물의 면적 등에 관계없이 모든 공중시설에 대하여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화하는 국제적 흐름에도 역행한다.

그리고 개정된 사항에 대하여 2022. 1. 1. 이후 신축·증축·개축·재축(이하 ”신ㆍ개축“이라 함)하는 것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는 헌법상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으로 지키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민간시설이 대부분인 생활밀착 공중시설에 대하여 소급입법 금지사항을 어느 범위까지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소급입법금지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처벌받지 아니하고,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내용의 헌법 제13조의 규정에 근거한 것으로 형법상 형벌불소급의 원칙 및 재산권 박탈 등 처벌에 관한 사항이다. 그리고 소급입법으로 침해되는 상대방의 신뢰이익이 적거나 신뢰보호 요청에 우선시되는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로 소급입법이 정당화될 때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법령 적용의 대상 민간시설이라 하더라도 편의시설의 설치비용 등의 부담이 미미하고, 다수 이동약자의 절박한 일상생활 문제의 향상과 이동평등권 실현이라는 공익에 부합하다면 소급입법도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그러나 현행 입법예고안대로 확정되면 법령이 개정되더라도 이동약자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시설인 종전시설에는 아무런 개선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동약자가 실제로 기존의 생활권에서 달라진 환경을 느끼기는 것은 극히 미미하다. 즉 법령개선의 효과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에 따라 편의시설 의무대상에서 면제하는 것도 유엔의 ”준공일 등에 관계없이 접근성 표준을 모든 공중이용시설에 적용하라“는 권고사항에 배치된다.

특히 이동약자들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항은 개정할 사항에 대하여 종전의 시설은 그대로 의무를 면제하고, 2022년도부터 신ㆍ개축하는 건축물에 대해서 의무화를 명시하면서도 50㎡ 또는 100㎡ 이상의 시설에만 이행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종전의 시설에 대하여 영세사업자에 대한 설치비 부담 등을 들어 면적기준을 두는 것은 이해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앞으로 신축할 건물에 대해서까지 면적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보건복지부는 민간시설에 대한 비용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러한 규정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축건물에서 주출입구 경사로 등 기본적인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는데 어느정도 비용이 소모될까?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에 첨부된 “규제영항 분석서”에 의하면 건당 평균비용을 72,000원으로 잡았으며, 50㎡ 적용 건축물에 대한 평균건축비 대비 0.001%로 보았다.

그러나 이는 수치상의 의미일 뿐 실제 건물을 지으면서 설계단계에서 반영되면 별도의 비용이 들어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건축비가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지어진 종전의 건물에 편의시설을 추가할 경우는 비용이 이보다 더 들어갈 수는 있겠으나, 신축건물은 설계에서부터 반영하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건물 신축시 규모에 관계없이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규제로 보기 어렵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데 72만원도 아니고, 단돈 72,000원 때문에 휠체어나 유아차 등을 이용하는 장애인·노인·육아가정이 앞으로도 계속 불편을 감수하라는 것은 누구라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에게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단돈 72,000원 때문에 외면당한다는 것은 인권 차원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보건복지가 추진한 대로 음식점과 일용품 소매점 등 일부 근린생활시설에 대하여 50㎡ 미만 시설에 대하여 편의시설 의무대상에서 그대로 면제할 경우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시설이 비율이 얼마나 될까?

소규모 시설이라도 자발적으로 편의시설을 갖추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정확한 통계를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부득이 국가통계포털에 나타난 ”산업 및 사업장 면적 규모별 사업체수“에 나타난 건물면적 50㎡ 미만의 음식점 및 일용품 소매점 현황을 보면 어느 정도는 유추가 가능하지 않을까?

[표7] 면적 50㎡ 미만의 음식점과 소매점의 현황 (2016년도 기준)

위와 같은 통계로 보아 음식점의 30% 이상이, 일용품 소매점의 경우 50% 이상이 법령이 개정되더라도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나마 신축 등의 건물에 대하여 이러한 비율만큼 편의시설 의무를 면제한다고 하니 사실상의 피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이동약자의 고통은 외면당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본 입법예고 사항은 이동약자 공공시설 접근성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24년 만에 시도하는 것으로 장애인들에게는 숙원사업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문제가 되어 왔던 다른 불편사항도 찾아서 함께 개정해야 한다.

현행 법령에는 근린생활시설 중 학원 및 교습소, 금융업소, 부동산중개사무소 등에 대한 접근성 보장이 포함되지 않아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필자의 거주하는 아파트단지의 반경 500m 내에 부동산중개사무소가 30개나 되지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5개 정도에 불과하다. 장애인들이 주거이동 및 주택매매 등의 일이 있을 때마다 겪는 고통은 헤아릴 수가 없다. 어느 곳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원이나 교습소 역시 한 도시에서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대형 유명학원을 제외한 대다수는 소규모 공중시설임에도 이번 개정안에는 언급초차 없으니 장애인 등 이동약자들은 보건복지부에 원망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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