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 장애인 접근성 미비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 장애인 접근성 미비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2.10.25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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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 호국정신 체험하는 조선시대 산성마을
수천억 들인 시설, 이동약자 접근시설은 흉내만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의 전경 ⓒ소셜포커스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의 전경 ⓒ소셜포커스

 

경북 안동시가 무려 4,000억원에 가까운 사업비를 들여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일대에 건설한 ‘3대 문화권 사업시설’이 지난 8월에 개장됐다.

안동시가 추진해 온 ‘3대 문화권 사업’이란 유교 및 선비문화를 주제로 한 복합문화관광단지 조성 사업으로 한국문화테마파크, 안동국제컨벤션센터,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산면 동부리 일원 112만여㎡ 부지에 국비 2,382억원과 도비·시비 등 총 3,930억원이 투입되었으며, 2010년부터 시작된 사업이다. 이중 조선시대 산성(山城)마을 하나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한국문화테마파크 건설에 들어간 사업비만도 1,300억원이 넘는다.

유교와 선비정신을 대주제로 삼은 이 테마파크를 산성마을로 꾸민것은 국난을 당했을 때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켜 구국운동에 나선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명칭으로 보아 한국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닐까 하고 방문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시설 내용이나 주제로 보아 의병문화테마파크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시설을 소개하는 리플릿 자료에도 ‘한국문화테마파크’라는 제목하에 ‘16세기 조선시대의 산성 시간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무장을 하고 도열해 있는 의병들, 통나무 막사, 봉수대, 의병모집 공고문, 목책 검문소 등은 들어가면서부터 평시가 아닌 전시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설 또한 의병지휘소 건물이다.

의병지휘소에 있는 의병체험관은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진주성 전투를 가상현실 시스템으로 구현한 체험시설이다. 관람객은 ‘가상현실 시스템’ 안에서 의병이 돼 왜적과 전투를 벌일 수 있다.

연무마당에서는 조선시대 군사 훈련 시설을 재현한 무예 체험을 할 수 있다. 저잣거리와 성곽길, 종루광장 등을 거닐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전통극공연장과 설화극장에서는 설화 등을 소재로 하는 여러 가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수십 동의 민가 건물이 모여있는 저잣거리와 향촌에서는 다채로운 전통음식과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3대 문화권 사업시설’이 모여 있는 안동 도산면 동부리는 안동역에서도 승용차로 40분이 넘게 걸리고, 대중교통은 안동 시내에서 하루에 3차례밖에 없는 데다 중간에 내려서 1시간 이상을 걸어서 들어가야 할 만큼 교통의 오지에 해당한다.

이곳에 수천억원의 국민 세금으로 이런 구경거리와 및 국제컨벤션 시설을 지었으니 ‘돈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안동시에서도 이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엄청난 고심을 하고 있지만 뚜렷한 묘책은 찾기 어렵다.

안동시 도산면 일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자 한때 우리나라의 지폐에도 등장했던 도산서원을 비롯하여 이육사문학관, 안동호반자연휴양림, 선성현문화단지, 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퇴계종택, 선비순례길 등이 소재하고 있어 연계할 수 있는 문화유적과 관광자원은 많은 편이다.

한국문화테마파크 산성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의 풍경, 마을을 지키는 의병들의 모습과 의병모집 방이 인상적이다.  ⓒ소셜포커스
한국문화테마파크 산성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의 풍경, 마을을 지키는 의병들의 모습과 의병모집 방이 인상적이다.  ⓒ소셜포커스
산성마을 내부의 풍경, 저잣거리와 군영앞 의병장의 모습 ⓒ소셜포커스
산성마을 내부의 풍경, 저잣거리와 군영앞 의병장의 모습 ⓒ소셜포커스

필자는 최근 휠체어를 타고 한국문화테마파크와 안동국제컨벤션센터를 다녀왔다.

컨벤션센터는 단일 건물인 만큼 이동약자 불편시설은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취재할 부분도 별로 없다. 그러나 수십 채의 건물이 모여있는 한국문화테마파크가 문제였다. 마을을 한 번 쭉 둘러볼 수 있는 주탐방로는 문제삼을 것이 없지만, 장애인이라 해서 주탐방로만 뱅뱅 돌다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마을의 주제가 되고 핵심시설이라 할 수 있는 의병지휘소와 의병체험관의 경우를 보자. 누각으로 이루어진 대문에서 본 건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심한 고도차로 인해 수십 개의 계단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누각을 통과하면 본관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별도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휠체어 장애인 등 이동약자를 위한 시설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문(누각)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계단을 거쳐야 하는데 경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보고도 대문을 통과하지 못해 그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대문 외에도 측면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마저 단 2개의 계단으로 인해 휠체어는 통과할 수가 없다. 경사로 구조라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아차나 노인보행차도 쉽게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굳이 계단으로 시공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대문의 경우도 그렇다. 계단 앞의 도로가 경사를 이루고 있는 만큼 별도의 경사로를 시공하지 않더라도 계단 옆으로 얼마든지 수평 통로를 확보할 수가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애석한 일이다. 시공회사가 원망스럽다. 지금이라도 그 공간에 수평통로를 설치하는 것은 아주 간단할 것이다.

또 테마파크 초입에 있는 성문을 통과하고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만나는 남문역참에서부터 휠체어는 한 뼘도 안되는 단차로 인해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남문역참 건물 옆에도 뭔가 내부에 전시물이 있는 건물이 있지만 휠체어는 들어갈 수가 없다.

산성마을의 핵심시설인 의병체험관과 의병지휘소를 들어가는 모든 통로는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한 구조다. ⓒ소셜포커스
누각(대문)은 계단옆으로 색칠된 부분에 수평통로를 확보하면 휠체어도 얼마든지 출입할 수 있고, 일단 그곳을 통과하게 되면 의병지휘소 건물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갈수 있을텐데... ⓒ소셜포커스
산성마을 초입의 남문역참과 주변건물에도 전시공간이 있지만 한뼘 정도의 단차로 인해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하다.

저잣거리에 있는 많은 시설물의 경우도 문제다. 저잣거리에선 장애인도 음식을 먹거나 쇼핑을 하고 각종 체험에 참가하고 싶지만 시설물에 들어갈 수 있는 접근로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한 뼘도 안 되는 단차가 문제다.

한복대여시설로 추정되는 선비숙녀변신방의 경우 주출입구 계단과 별도로 경사로가 후문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막상 경사로를 따라 이동하면 또 하나의 단차가 속을 상하게 한다.

선비체험관도 문제다. 휠체어는 건물 어디에도 접근할 수 없다. 전통 한옥건물에서 섬돌, 툇마루 등의 형태를 갖추는데 이동약자용 경사로가 걸림돌이 된다면(그러한 인식 자체도 문제지만) 경사로를 측면이나 후면에 배치해도 될 일이다.

저잣거리에 있는 공중화장실도 전동휠체어가 혼자서 들어가기에는 매우 불편한 구조다. 양여닫이 출입문이라서 한쪽은 항상 잠겨있기 마련이고, 한쪽 문만 열 수 있어서 휠체어가 출입할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또한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화장실 내부에 있어서 성(性)이 다른 사람의 활동보조를 받는 장애인이라면 함께 출입할 수 없다.

수십 동의 시설물 중 2곳의 시설에서는 주출입구에 휠체어 출입을 위한 경사로를 갖추고 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시공할 때 장애인 접근성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공회사에서 장애인 접근시설을 인식했음에도 그러한 시설을 극히 일부에만 갖추었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난다. 장애인에게는 극히 일부 시설만 이용하라는 장애인 차별적 인식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시공을 할 수가 있을까? 의도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결과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한국문화테마파크에서 당장 개선해야 할 장애인 접근시설은 한 두가지 아니다. 총체적으로 장애인 차별시설이다. 이 시설의 시공자는 대전에 있는 상장회사인 계룡건설산업 주식회사(이하 "계룡건설")이다. 이처럼 개념이 없는 회사가 다른 공공시설을 시공하지는 않는지 걱정이다. 계룡건설 홈페이지에는 한국문화테마파크 시공사실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공공건축물을 시공한 것으로 나온다. 

공중시설에 대한 장애인편의시설 의무화가 입법화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건설업계 20위 안에 들어가는 초대형 기업에서 공공시설을 시공하면서 장애인 접근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이런 부실공사를 하였다는 게 놀랍다. 또 어느 공무원이 준공을 승인해 주었을까?

신축하는 공공시설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는 설계나 시공단계에서 반영하지 못하고 준공 후에 추가할 경우에는 많은 비용도 문제지만, 아예 설치가 불가능한 부분도 있을뿐만 아니라, 다른 성질의 자재를 덧댐으로써 신축건물의 산뜻함이 훼손되고, 장애인 통로와 비장애인 통로가 분리되어 때로는 장애인을 외톨이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동일한 통로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장애인 통행기준에 맞추면 비장애인에게는 더욱 편리해지는 법이다.

안동시나 사업을 주관했던 경상북도개발공사는 장애인 불편시설을 조속히 시정하고 본공사를 담당했던 계룡건설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공시설을 건설할 때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한복대여소로 보이는 건물은 계단으로 인해 출입이 불가능하고 후문쪽으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구 문턱이 휠체어 통행을 어렵게 한다. 주출입구 쪽에 별도의 휠체어 통로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표시도 필요하다. ⓒ소셜포커스
선비체험관, 가마포토존 등의 시설은 계단과 단차 등으로 휠체어 통행이 불가능하다. ⓒ소셜포커스
초가와 너와집엔 전통놀이방 등이 있지만 불과 몇센티의 단차로 인해 전동휠체어는 출입하기 어렵다. ⓒ소셜포커스
화장실 출입구의 쌍여닫이 한쪽 문은 항상 잠겨있기 때문에 휠체어가 들어가기 어렵다. ⓒ소셜포커스
마을 내에서 어쩌다 발견된 휠체어 출입 가능시설, 이동약자는 수많은 시설 중 이 두곳만 이용하고 돌아가라는 말인가? 이동약자의 통행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이곳 이외의 시설에서 휠체어 통로를 확보하지 아니한 것에 더욱 화가 난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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