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에서 본 윤동주
일본 교과서에서 본 윤동주
  • 조봉현(曺奉鉉)
  • 승인 2018.12.03 18:4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동주의 모교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실' 등 장애인 접근성 떨어져 실망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념 시설.... 아쉬움 많아
윤동주 시인
윤동주 시인

평소 동경하던 민족시인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중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을 탐방하게 되었는데, 그 곳의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다가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윤동주의 시가 실려 있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나중에 그 해설사를 다시 찾아가서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의 어느 시가 실려 있느냐고 물었더니 보관된 교과서를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어떤 시가 소개되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교과서를 펼쳐보고 또 한 번 놀랐다.

한편의 시가 아니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총 14페이지에 걸쳐서 윤동주의 생애와 3편의 시가 이바라키 노리코라는 일본 여류시인의 에세이 형식으로 자세히 실려 있었다.

윤동주가 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직접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으로 의심되는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아가며 일본의 만행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실을 숨김없이 드러냈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사건의 전모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필자가 직접 사건추적을 시도하다 검찰의 벽에 막혀 포기했던 경험과 함께, 윤동주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옥사한 아들의 유해를 안고 현해탄을 건너면서 느꼈을 참담한 심정까지 일본의 한 시인에 의하여 애틋하게 그려진 모습을 읽는 동안 가슴이 계속 쿵쾅거렸다.

그 해설사가 일본어를 모르는 것 같아 제목과 첫 페이지를 대충 읽어 주었더니 그분도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나중에 내용을 차분히 읽어볼 요량으로 핸드폰 카메라로 전문에 대한 사진을 찍어 왔다.

집에 와서 일본교과서에 수록된 윤동주에 대한 자료가 없을까 하여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1989년도 어느 신문에서 내년(1990년)부터 일본의 고교 국어교과서에 윤동주가 소개된다는 기사와 블로그 등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간간이 소개되는 일본의 교과서에서도 윤동주의 시가 나와 있다는 단편적인 사실과 인용문구 몇 마디 말고는 교과서 내용의 전문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나는 찍어 온 사진자료로 전문에 대한 번역문을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하고, 먼저 일본어로 된 전문을 며칠 동안 모두 문서자료로 입력하여, 짧은 일본어 지식을 동원, 직접 번역을 시도했다. 네이버나 구글 번역기 도움을 받기도 하고, 초벌번역을 한 자료를 일본어 전문가에게 보내 감수를 받기도 했으며, 일본에서는 실제 교과서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학생들이 보는 이 교과서의 학습서를 일본에서 통신구매하여 참고하기도 했다.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윤동주가 실린 것은 1990년부터인데, 이 교과서를 발행한 일본의 출판사인 치쿠마쇼보(筑摩書房) 홈페이지 자료 등을 열람한 결과, 교과서의 명칭은 몇 차례 바뀌었지만 28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수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항일운동과 관련하여 일본의 감옥에서 의문의 옥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밝힌 상태로, 윤동주의 생애가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그대로 실리기까지 검인정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그 필자는 검인정 통과를 위해 수년간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번역을 통해서 윤동주에 대하여 학창시절에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일본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사람들이 왜 많은 지도 알게 되었다.

일본의 교토에 있는 도시샤(同志社)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있다. 사실 윤동주가 그 대학을 거쳐간 기간은 9개월 남짓에 불과하고, 그 기간에도 항일운동을 하였지만 그 대학에서는 시비를 세우고 매년 윤동주 시 낭송회 등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었는데, 도시샤대학은 물론, 윤동주가 일본에서 처음 6개월 동안 재학했던 릿쿄대학, 감옥에서 생을 마친 후쿠오카 등 윤동주가 조금이라도 거쳐 간 곳에서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매년 추모행사를 해 왔다.

또한 일본에서는 윤동주의 시 중 5곡이 노래로 작곡되어 일본인 가수에 의하여 불리어진 적도 있었다.

또 윤동주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교토 우지강 다리에서 학우들과 찍은 사진이 현존하는 일본에서의 유일한 사진이자 생애의 마지막 사진인데, 일본 사람들은 작년에 그곳에도 시비를 세웠다. 심지어 윤동주가 일본 유학시절 잠시 하숙을 했던 집터(현재 교토조경예술대학)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하니, 일본인들이 이처럼 윤동주를 잊지 못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고교시절에 교과서에서 윤동주를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와도 비교가 되었다.

윤동주가 4년간이나 재학하다 졸업했던 연세대학교에 윤동주기념관이 있다고 하여,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아무리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보아도 나타나지 않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캠퍼스 안내를 검색해보아도 찾을 수가 없어, 무작정 연세대 캠퍼스에 가서 물어물어 기념관을 찾아갔는데, 건물 앞에 서 있는 윤동주기념관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무색하게 실제 건물 출입구 정면에는 “학교법인 사무처” 간판을 달고 법인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연세대라는 국내 최상급 대학의 캠퍼스, 그 많은 건물과 사무공간 중에 법인사무처로 쓸 방이 없어서 그리 크지도 않은(아담한 2층 건물) 윤동주기념관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실망했고, 그나마 윤동주를 기념할 물건들은 2층 한쪽 구석에 “윤동주기념실”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출입문에 있는 10cm 정도에 불과한 문턱 하나 때문에 나처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1층에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건물만 쳐다보다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기념관 건물 앞에 윤동주 시비가 있다는데, 이 또한 잘 보이지 않아서 어렵게 위치를 찾았건만, 돌맹이 몇 개가 굳이 없어도 될 경계석을 이루면서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휠체어 통행이 불가능하여, 이 시비마저 50m나 떨어진 곳에서 먼발치로 옆모습만 바라보다 돌아왔다.

윤동주가 우리 민족의 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데다, 일본 유학중 세상을 떠났고, 다시 중국에 묻혔으며, 한국에서는 연희전문학교를 다닌 것 말고는 달리 행적이 없는 상황에서 연희전문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온전히 한국의 위인이라고 우리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윤동주가 연희전문을 다녀 준 덕분에 우리는 윤동주라는 훌륭한 위인과 귀중한 정신적 자산을 얻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윤동주만큼 연세대를 빛내 준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

그러한 윤동주의 흔적이 기념관이라는 명칭을 달고서도 지도에도 이름을 못 내밀고, 법인사무처에 주인자리(?)까지 빼앗긴 채, 그 건물 한 켠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니 괜히 윤동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건물은 법인사무처, 핀슨관 등 세가지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지도에는 핀슨관과 법인사무처로만 표시되어 있고, 정작 윤동주기념관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 나는 오랫동안 윤동주기념관이 없어진 것으로 알았다.

그 외 국내에서 윤동주를 기릴만한 곳으로 서울 청운동에 윤동주문학관이 그런대로 꾸며져 있기는 하지만, 마당도 없이 좁디좁은 단층짜리 건물하나 뿐이라서, 널찍한 마당에 건물이 몇 채씩이나 늘어서 있는 국내의 다른 유명 문인들의 문학관에 비하면 서울에 있다는 것 말고는 너무나 초라한 편이다. 친일시비가 따라다니는 문인들의 문학관도 이보다는 훨씬 크다.

국내에서도 대부분의 검인정 국어교과서나 과거에 발행한 국정교과서를 보면 윤동주의 시가 꼭 한 두 편씩은 나와 있지만, 항일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감옥에서 일본의 큰 잘못으로 너무도 억울하게 순국해갔던 그 거룩한 생애와 시에 대하여 일본 교과서만큼 많은 분량으로 소개한 책은 보지 못했다.

물론 윤동주가 소개된 일본 교과서가 여러 검인정 교과서 중 하나이고 일본 학생들이 모두 배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특정 교과서의 소개분량으로 평가의 척도로 삼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숨기고 싶어 할 일본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자신들에게 저항했던 윤동주를 오랫동안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오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한국인 윤동주의 위대한 생애와 훌륭한 작품들을 얼마만큼 제대로 평가하고 제대로 예우를 하고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자 국민시인이고 항일독립운동가인 윤동주를 기리고, 그의 시를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가 특히 한국에서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조봉현
조봉현

※ 이 글을 쓴 조봉현은 지체장애인이며, 동수원세무서에 운영지원과장으로 재직중이다. 수십년간 장애인 인권운동에도 앞장서 오면서 정부와 언론사로부터 대통령 표창, 민원봉사대상, 사회공헌대상 등 각종 표창을 수상하였고, 장애인 권리를 위한 각종 입법운동에도 노력하여 법제처로부터 최우수국민법제관으로 뽑히기도 했다. [편집자 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 2018-12-05 10:21:19
기사를읽다보니 안타까운마음만가득입니다

한*정 2018-12-04 09:14:23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