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 ‘새 판’ 짜야 할 때
장애인 탈시설, ‘새 판’ 짜야 할 때
  • 윤현민 기자
  • 승인 2022.03.21 14:23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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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자살, 일부단체 성비위로 반대여론 확산
시설폐쇄 대신 기존 거주시설 유형·기능 다변화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지난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40대 미혼모 A씨 집에서 그의 아들 B(8·지적장애1급) 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7시께 "A씨와 연락이 안 된다"는 A씨 오빠의 신고를 받고 집으로 출동해 숨진 B군과 함께 있던 A씨를 붙잡았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2014년 출산 후 홀로 아이를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이날 B군은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못 간 채 참변을 당했다. 당초 A씨는 장애 등을 이유로 아들의 입학을 1년 미뤘다. 

#같은 날 경기 시흥시에서도 발달장애 자녀 주검이 나왔다. 시흥경찰서는 3일 살인 혐의로 C(54·여) 씨를 긴급 체포했다. C씨는 전날 오전 3시께 신천동 자택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20대 딸을 질식해 사망케 한 혐의를 받는다. 딸을 숨지게 한 뒤 자신도 뒤따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튿날 경찰에 자수했다. 집 안엔 ‘다음 생에 좋은 부모를 만나라’는 내용의 C씨 유서가 있었다. 그는 말기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병마와 싸워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남편과 이혼 후 딸과 단 둘이 살며 힘들게 생계를 유지했다. 기초수급비와 딸의 장애인수당, 간헐적인 알바비가 수입의 전부였다.

모두 발달장애 자녀 부모의 생활고에서 비롯된 참사다. 내쫓듯이 시설을 비우는 무분별한 탈시설 우려가 커진다.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내놓은 지도 2년 째다. 하지만, 지금껏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부모 생활형편은 아랑곳 없는 획일된 정책이란 지적이다. 앞선 발달장애 자녀 살해사건도 반대 여론을 고조시킨다. 최근엔 찬성 측의 성폭력 사태 등으로 민심마저 등 돌렸다. 그러자 기존 거주시설의 다각적 활용이 대안으로 제기된다. 시설 유형과 기능을 다변화 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다.

 

2009년 장애인 탈시설 움직임 시작

장애인 탈시설 요구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로니에 8인으로 불리는 석암재단(현 프리웰)비대위 농성이 시작이다. 당시 이들은 재단 비리를 고발하며 탈시설을 촉구했다. 주로 ▲자립주택 제공 ▲탈시설 5개년 계획 수립 ▲활동지원 대상 제한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2013년 제1차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을 내놨다. 이어 2017년 2차 추진계획에서 세부 일정을 발표했다. 2019년 향유의집, 2020년 누림홈·해맑은마음터의 단계적 변환을 약속했다. 시설 거주인들은 지원주택으로 옮기거나 원가정으로 돌아갔다.

지금 정부도 42번 째 국정과제로 탈시설을 제시했다. 시설거주인의 지역사회 정착환경 조성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장애인 탈시설 밑그림을 내놨다. 2041년까지 2천명만 남기고 시설전환이 마무리된다. 기존 장애인 거주시설은 공동형 주거지원으로 바뀐다. 장애인 3~4명과 배치 전담직원이 함께 사는 구조다. 이들의 지역사회 자립에 필요한 주거정책도 마련했다. 우선,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또, 주택, 금전관리 등 주거유지 서비스도 개발키로 했다.

 

시설폐쇄 잉여자금 재가에 투입해야 vs 가정·사회 돌봄 기반여건부터 구축해야

그러나, 지금껏 장애계 안팎에선 찬반공방이 여전하다. 시설폐쇄 찬성 쪽은 국가책임과 당사자 권한을 강조한다. 국가가 전적으로 이들 돌봄을 도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재가의 재정지원 확대를 근본해법으로 제시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는 “탈시설은 한정된 정부예산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시설폐쇄로 인한 잉여 자금과 인력을 재가에 투입해야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고 부모들의 고령화와 사후에도 안심할 수 있다”라고 했다.

반면, 중증장애아 부모 대부분은 시설폐쇄를 반대한다. 시설에 맡기지 않고선 생계활동조차 어려운 이유에서다. 또, 시설을 대체할 기반여건이 열악한 점도 이유로 꼽힌다. 이들 부모 입장에선 선택이 아닌 사실상 강요인 셈이다. 전국장애인인거주시설부모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책임지고 더 나은 시설이나 지역사회에서 돌볼 수 있도록 대책이 마련돼 있으면 몰라도 지금의 탈시설 정책은 작은 희망마저 빼앗는 가혹한 처사”라며 “시설에서 쫓겨나면 부모들은 생업포기를 강요받아 벼랑 끝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라고 했다.

 

탈시설 반대여론 사회 각계 확산세

이들 부모의 극단적 선택으로 반대여론은 확산추세다. 여기에 탈시설 찬성 측의 과격시위와 성범죄도 작용했다. 지하철 출근시위, 성폭력 사태, 임종 방해 등으로 얼룩지면서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는 부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부산장차연) 전 대표 A씨(53)를 성추행 혐의로 수사 중이다. A씨는 지난 2016~2019년 부산장차연 소속 여성활동가 B씨(뇌병변1급장애)를 10여 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B씨는 “A씨가 천막 내부와 야외 행사장 등에서 수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평소 딸처럼 지낸 B씨와 포옹하듯이 인사한 적은 있지만 성추행은 아니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도 성폭행 및 2차 피해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전장연 관계자는 “부산장차연에서 일어난 사건은 명확히 성차별적인 권력관계로 인한 성폭력 사건으로 부산장차연 내부에 의한 2차 가해도 일부 확인됐다”며 “최종 상임공동대표회의를 통해 부산 장차연 및 부산지역을 사고지역으로 선포하기 위한 후속 대책 및 논의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했다.

또, 할머니 임종하러 가는 길을 막아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지난달 9일 전장연의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시위에서였다. 이날 이들은 지하철 출입문에 휠체어를 낀 채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지하철 출발은 20여 분 가량 늦춰졌다. 그러자 한 30대 남자가 시위대를 향해 “할머니 임종을 지키러 가야 한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어쩔 거냐. 다른 사람은 생각 안 하냐”라고 소리쳤다. 이에 전장연 소속 여성은 “버스 타고 가세요. 죄송합니다”라고 한 뒤 발언을 이어갔다. 다른 시민들 항의도 있었지만, 이들은 15분 정도 더 발언 한 뒤 열차 밖을 빠져나갔다. 

 

거주시설 유형·기능 다양화로 자기결정권 제공

시민들이 이들에게 등을 돌리면서 탈시설 반대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기존 장애인 거주시설의 전면 개편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기존시설 유형과 기능을 다양화해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방안이다. 천주교 수원교구 둘다섯해누리 시설장인 이기수 요아킴 신부는 “일부 단체에선 자립이란 단어를 쓰고 모두 시설 밖으로 나와 사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주변환경이 바뀌지 않으면서 유럽 선진국 모형을 따라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출발”이라고 짚었다. 이어 “탈시설이나 폐쇄 대신 장애인 공동체 마을, 지역별 장애인 센터, 장애유형별 전문 요양원(병원) 등 기존 시설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들 시설의 기능도 숙식 위주에서 직업훈련, 자립홈 등 사회복귀 시설로의 전환이 요구된다”라고 했다. 

이강화 가톨릭아동복지회 사무국장도 “부모 사후 홀로 남겨질 자녀에 대한 걱정을 해소시키는 게 우선인 만큼, 정부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기존 시설을 없앨 게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 소규모시설, 공동생활 가정, 1인 독립생활 등 주거형태를 다양하게 제공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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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 2022-08-07 15:16:14
거주시설 선진화와 다양화가 시급합니다.
탈시설이야말로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이*영 2022-04-07 21:45:31
윤현민 기자님 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에 감사드립니다
장애유형과상태에 따른 다양한 선택지가 절실합니다 무조건적인 탈시설은 중증발달장애인에게는 죽음입니다
자립은 자립대로 시설은 시설대로 선택할수있고 지원되야합니닷

고양 2022-04-07 20:14:34
세상에서 자기자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이다. 부모는 사후 홀로 남겨질 사랑하는 내 자식이 내 인권을 보호받으며 살 곳, 거주시설을 택했다. 어린아이 같은 성인이 어찌 자립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는 거주권의 다양성을 제공하라!

박*영 2022-04-07 20:11:46
중증발달장애인들에게 자립을 논하는 건 가족모두를 동반자살로 내모는 악법이다. 정부는 한쪽말만 듣지마라! 자유민주즈의 국가에서 선택의 폭은 다양해야한다. 고로 거주의 다양성을 마련하라!

최*영 2022-04-07 20:09:22
신체장애인은 신체만 장애이고 인지는 비장애인과 똑같다. 그러나 중증발달장애인은 인지가 0~3세 이다. 신체만 어른인 어린아이가 어떻게 자립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립하고 싶은 사람은 사람으로,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싶은 사람은 거주시설로. 정부는 거주권의 다양성을 확보하라!